선수시절부터 독종으로 불린 승부사, '체력은 국력'철학 속 강도 높게 훈련…37연승·대통령기 4연패 등 명가 구축

아마농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삼천포여고 농구부 박정숙(52) 코치는 유명인사다.

경기 내내 벤치를 떠나 코트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은 어느새 박 코치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삼천포여고는 박 코치 부임 이후 한 해도 우승을 거른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히 여고농구 정상을 지키고 있다.

삼천포여고란 이름 앞에 '농구 명가'라는 타이틀이 붙기까지는 박 코치의 공이 컸다. 지난 1998년부터 17년째 모교인 삼천포여고에서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한 그녀의 지도 철학이 궁금했다.

◇선수시절부터 패배 싫어해 = 박 코치는 삼천포여고 농구부 1회 졸업생이다.

고교 졸업 후 국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그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그는 국민은행에서 조문주, 신기화, 공현자 등과 함께 뛰며 실업농구 시절 동방생명(현 삼성생명)과 더불어 실업 최강으로 군림하며 29연승의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난 20일 삼천포학생체육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삼천포여고 농구부 박정숙 코치.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그는 "당시 감독님과 코치 선생님께서 저를 '독종'이라 불렀어요. 승부욕이 강한 탓인지 패배라는 단어가 저는 참 싫었어요. 지금도 그런 성격이 고스란히 남아 승부욕이 남다르단 말을 듣는가 싶네요"라며 웃었다.

실제 박 코치의 승부욕은 대단했다. 자신의 실수는 물론 상대의 실책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아쉽게 경기에서 팀이 지기라도 한 날이면 분을 못 이겨 코트 위에서 부단히 땀을 흘렸고, 누워서도 당시 상황이 떠올라 쉽게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승리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인생을 바꿔놓은 전화 한 통 = 실업 선수를 은퇴한 이후 그는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마친 뒤 한동안 은행원으로 종사하기도 했지만, 뭔가 가슴 한쪽이 허전했다. 그는 곧바로 짐을 정리하고 고향인 삼천포로 내려왔다. 1997년의 일이다.

고향으로 온 뒤 그는 모교인 삼천포여고에서 아르바이트 삼아 후배들을 지도하기 시작했고, 1998년 1월 코치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처음부터 박 코치가 삼천포여고 지도자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도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농구를 떠나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고향으로 내려온 이후 그저 후배들 운동하는 모습이나 한 번 보러 오라는 말을 듣고 별뜻없이 체육관을 찾았다 뜻하지 않게 코치 인생을 살게 됐다.

박 코치는 "학교에서 숱하게 코치직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나는 지도자를 하고 싶지 않아 몇 번이고 고사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인생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1997년 학부모 한 명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와 따져물었다. '당신이 삼천포여고 선수들을 가르칠 능력이 되느냐'고.

그 얘길 전해들은 박 코치는 그 길로 학교를 찾아가 코치직에 사인을 했다. 그는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자부했는데, 그런 소릴 들으니까 참 서운하기도 하고 솔직히 오기가 발동했다"면서 "그 이후 전국 최강이라는 소릴 듣고자 항상 긴장의 끊을 놓지 않고 여태껏 달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도자 생활이 벌써 18년이나 흘렀다. 삼천포여고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37연승이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기록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통령기 대회에서도 4연패를 달성하는 등 박 코치 지도 아래 '명가'로 우뚝 섰다. 지금까지 그와 삼천포여고가 함께한 트로피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김이슬·박언주 등 수없이 배출 = 박 코치가 발굴해서 키운 선수만 해도 프로팀 한 팀은 거뜬히 꾸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현재 여자프로농구에는 삼천포여고 출신 선수가 즐비하다.

삼천포여고 출신은 김이슬, 강이슬(하나외환은행), 박언주, 박혜진(우리은행)을 비롯해 곽주영(신한은행), 홍아란(국민은행) 등 셀 수 없이 많다.

지난 18일 열린 여자프로농구 올스타전에는 삼천포여고 출신이 5명이나 올스타에 배출되기도 했다.

팀이 꾸준하게 성적을 내고 스타플레이어를 대거 배출하면서 삼천포여고 앞에는 '농구명가'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박 코치도 숱한 러브콜를 받았다. 그는 "대한농구협회에서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나를 키우려고 많은 주문을 한 적이 있는데 성격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팀을 운영하는 걸 좋아해 고사했다"고 전했다.

◇현역 군인도 힘들 법한 훈련 = 삼천포여고 하면 떠오른 이미지가 바로 엄청난 훈련량이다. 지금의 삼천포여고가 있기까지 박 코치는 많은 훈련으로 선수들의 기본기를 확실히 다지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박 코치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다름 팀보다 운동량이 훨씬 많다"면서 "지금 체육관에 붙어있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보다 예전에 쓰였던 '체력이 국력이다'는 말을 더 좋아하는 것도 내 지도철학과 맞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천포여고 농구부의 훈련은 아침과 저녁, 밤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남일대해수욕장에서 하는 훈련은 웬만한 현역 군인이 와도 힘들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다.

박 코치는 "제자 녀석 중 한 명이 프로에서 돈을 많이 벌어 남일대해수욕장을 모래가 아닌 옥돌이나 자갈로 바꾸고 싶다는 얘길 했다"며 "지금은 다소 수위가 낮아지긴 했지만, 정말 훈련량이 많을 땐 나도 솔직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코트 위에서 박 코치의 별명은 호랑이다.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때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선수들도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스트레칭 등 자발적인 훈련은 기본이고, 박 코치가 보지 않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슈팅 연습을 하는 게 선수들에겐 일상생활이 돼버렸다.

◇"전국체전 3위 이상 거두는 게 목표" = 박 코치의 올해 목표는 고교 최강으로 불리는 분당경영고를 제압하는 것과 함께 전국체전 입상이다.

삼천포여고는 지난 20일 막을 내린 총재배 대회에서 분당경영고에 50-69로 대패했다. 분당경영고에는 195㎝의 국가대표 장신 센터 박지수(2년)가 버티고 있어 앞으로 맞붙는 경기에서도 쉽지 않은 일전을 벌일 전망이다.

지난해 삼천포여고는 전국체전에서 3위에 올랐다. 올해도 전국체전에 출전해 지난해 이상의 성적을 바라고 있다.

17년째 모교를 정상에 올려놓느라 아직 미혼인 박 코치에게 결혼 계획에 대해 묻자 "성격이 모나서 받아줄 남자가 있겠냐"라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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