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1) 노현수 창원시청 레슬링부 감독

스포츠계에서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모든 지도자의 꿈은 명장(名將)으로 귀결된다.

명장의 조건은 단어가 주는 느낌만큼이나 까다롭다.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흐름을 읽는 안목을 지녀야 하고, 카리스마와 포용력으로 선수들을 이끌어야 한다.

도내에도 탁월한 용병술과 리더십으로 명장 반열에 오른 지도자가 많다. 이들이 써내려간 명장 스토리를 매주 금요일 연재한다.

이런저런 업적을 다 차치하더라도 레슬링 그랜드슬래머 김현우(삼성생명)를 키워냈으니 이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동계훈련이 한창이던 지난 12일 마산가포고 체육관에서 노현수(51) 감독을 만났다.

노현수 감독을 이야기하면 지난 2008년 광주 전국체전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7년 제88회 전국체전을 앞두고 국내 레슬링계의 관심은 온통 노 감독이 이끌던 경남대에 쏠렸다.

지난 12일 마산가포고체육관에서 선수들의 동계훈련이 한창인 가운데 창원시청 레슬링부 노현수 감독이 자신의 지도 철학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그해 각종 전국대회를 석권하며 승승장구하던 경남대가 과연 전국체전에서 얼마만큼의 성적을 낼지 스포트라이트가 향한 것이다.

사실 시·도 간의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되는 전국체전은 한 팀이 메달을 독식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다. 다른 팀의 견제가 심할뿐더러, 협회 내에서도 한 팀이 독주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서 경남대는 주위의 심한 견제 속에서도 대학부 그레코로만형에 걸린 8개 금메달 가운데 무려 7개를 따냈다.

경남대가 88회 전국체전에서 거둔 7체급 우승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레슬링의 전설로 남아 있다.

이 기록을 보유한 거장이 바로 노현수 감독이다. 당시 경남대를 지도했던 노 감독은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8년부터 현재까지 실업팀 창원시청을 이끌고 있다.

남해가 고향인 노 감독은 어릴 적 축구를 하다 고교 입학 후 늦깎이로 레슬링에 입문했다. 운동과 학업을 놓고 진로를 고민하다 진학의 타이밍을 놓쳐 그는 당시 보결로 마산삼진고(당시 삼진종고)에 입학했다.

평소 운동에 소질이 있던 그는 레슬링 유니폼을 입었고, 1년 만에 체급 정상에 오르며 레슬링 유망주로 성장했다.

48㎏ 경량급으로 레슬링을 시작한 그는 주니어플라이, 플라이, 밴텀, 페더 등 62㎏까지 14㎏의 차이가 나는 체급을 오가며 선수생활을 했다.

한때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합류할 정도로 기량도 뛰어났다. 경남대에 진학해서도 꾸준히 입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던 그는 1994년 LA올림픽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패해 올림픽 출전의 꿈이 좌절됐다.

실망감이 컸던 그는 곧바로 낙향했고, 그동안 미뤄왔던 허리수술을 하며 선수로서의 꿈을 미련없이 접었다.

노 감독은 현역 시절보다 지도자로 빛을 발한 경우다.

디스크 수술 후 선수로서 생명은 다했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꼼꼼하게 설계했다. 마산서중 코치를 시작으로 경남체고와 경남대에서 다년간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1997년과 98년에는 국가대표팀 코치로도 활약했다.

그는 2005년 경남대 감독을 시작으로 현재 창원시청까지 10년간 지도자생활을 하면서 70개가 넘는 금메달을 전국체전에서만 땄다. 전국대회를 포함하면 100개를 훌쩍 넘기는 대기록이다.

그동안 경남 레슬링이 강호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기본기에 충실한 레슬링'과 '우수 지도자 활약'을 꼽았다.

그는 고집스러울 만큼이나 기본기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레슬링의 기본기술이라 할 수 있는 '안아 넘기기'만큼은 전국에서 경남을 최고라 부른다.

한국조폐공사 진형균 감독도 "전통적으로 경남 레슬링은 기본기가 강하다. 김현우가 세계무대를 제패한 데는 대학시절 기본기부터 충실하게 가르쳤던 노 감독의 공이 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국가대표 출신의 지도자가 다수 포함된 것도 창원시청 레슬링부의 힘이다.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박명석 코치가 선수를 지도 중이며, 현재 국가대표팀 코치인 경남대 박치호 감독도 함께 훈련하며 대표팀에서 익힌 고급 기술을 선수들에게 전파 중이다.

노 감독은 "국가대표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는 게 창원시청의 큰 자산"이라며 "수준 높은 지도자가 있기에 전국 각지에서 우수 선수들이 창원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이 넘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길러낸 선수 가운데 레슬링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인 김현우와 도하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김형주를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로 꼽았다.

그는 "(김)현우는 고교시절 전관왕을 차지하는 등 누구나 인정하는 레슬링 유망주였다"며 "경남대 훈련이 다른 팀보다 강도가 센 편인데, 당시에도 군소리 없이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또, 노 감독은 "여자레슬링의 형주도 창원시청 입단 이후 출전한 모든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주는 등 연봉 이상의 활약을 해줬다"면서 "형주가 있어 여자팀의 기량이 일취월장했고, 여자 레슬링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노현수 감독의 시선은 전국체전을 넘어 세계무대로 향하고 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국내 남자레슬링은 삼성생명, 성신양회, 조폐공사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예산이나 지원 면에서 지자체 팀인 창원시청은 이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는 "3개의 거대 실업팀이 버티고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창원시청 소속으로 반드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를 키워보고 싶다"면서 "경남에도 좋은 자원이 많고 우수한 지도자도 곳곳에 포진해 있어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현수 감독은 지난 결과물을 넘어 앞으로 일궈나갈 커리어가 더 기대되는 인물이다. 오직 레슬링을 위해 그리고 더 좋은 레슬링을 가르치고자 끊임없이 고집하는 그의 외고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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