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만난 운명 같은 사람…노총각 딱지 떼어준 날개없는 천사

창원시 성산구에 사는 김두열(55)·전경련(48) 부부는 결혼한 지 23년 됐다. 두열 씨는 "노총각 딱지를 떼주고, 위기 때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도와준 아내는 내 소중한 보물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 마음을 직접 글에 담았다. 표현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다.

만추의 낙엽이 지고 나면 어김없이 새잎이 돋아나듯 결혼 운명은 숙명처럼 나에게도 찾아왔다. 1989년, 나는 서른 살 넘긴 노총각이었다. 당시 남자 나이 서른 넘으면 정말 결혼하기 쉽지 않았다.

군에서 제대하고 농협에 복직해 당시 처음 출시한 은행 신용카드 업무를 봤다. 그러면서 친구 부인 소개로 여교사 몇 명을 만났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내 자존심에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이별이라는 쓴잔만 마셨다. 매우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었다. 위기가 기회가 되어 젊고 멋진 여성,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아내와 만남은 우연히 찾아왔다. 청춘이면 누구나 설레는 크리스마스…. 1990년 그해 크리스마스, 거리 캐럴송과 함께 그녀는 운명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운 어릴 적 친구가 한 은행 창립 멤버로 전직해 마산지점 책임자로 발령났다. 내가 살던 창원시 반림동 쪽으로 이사를 와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행운이었을까? 그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했다. 그 친구는 "너 아직 총각이지"라면서 내 외로운 신세를 공감하며 기꺼이 만나주었다.

둘이 만나 맥주를 한잔 할 즈음, 친구가 나에게 신붓감을 소개해 준다며 여행원 합숙소에 전화를 했고, 화사한 여성 두 명이 자리에 나왔다. 누구를 선택하기 어려울 정도로 둘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했고, 친구는 지금 아내와 맺어주려 노력했다. 이후 함께 바다에 놀러도 다니면서 사람을 확인했다. 20대 중반인 젊고 젊은 아내는 나보다 충분히 나은 사람에게 갈 수 있는 처지였지만, 상처투성이인 나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자연스럽게 받아 주었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했던 복병이 다가와 우리 만남에도 위기가 있었다.

지금의 바로 손위 동서도 당시 한 은행 창원지점에 근무했다.

그는 같은 은행에 근무하던 동료 여직원이었던 처형과 결혼해 처제인 아내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동료가 동서 집 집들이에서 처형의 미모(?)에 놀라며, 여동생(아내)을 소개해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이후 그 친구는 아내 직장으로 전화를 하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만남을 청했고, 아내는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그때 아내가 생각해 낸 것이 있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같이 나왔던 동료 여행원을 대타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대성공이었다. 이후 둘은 결혼까지 해서 지금도 알콩달콩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행히 나를 선택해준 아내와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오고가며 양가에 인사를 드렸다. 처남의 1차 면접에서는 노총각의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합격했고, 처가댁 전체 2차 면접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마침내 노총각이 꿈에 그리던 결혼식 당일이었다. 친구 아버님이자 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주례 선생님을 직접 차에 모시고 이동하는 바람에 결혼식이 30분이나 지연되기도 했다.

여하튼 마산 한우예식장에서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해병대에서 같이 복무했던 군 동료들과 함께 부산 해운대로 가서 파티까지 했다. 그리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부에게는 상당히 미안한 결례였다.

50대 중반이 된 지금 '아내는 조상님이 보내준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젊은 시절 노총각 딱지를 떼주고,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목숨을 건 스포츠를 함께 즐기고, 친구를 무척 좋아했던 나를 늘 이해하고…. 이런 아내를 위해 여생은 더욱 양보하고 아끼며 사랑할 것이다.

흔히들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은 언급해야만 할 것 같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위기 순간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도와주며 기쁨·슬픔을 함께한 아내는 나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특히 IMF 외환위기 때에는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따서 어려운 시기 가족을 위해 준비하는 책임감도 보여 주었다.

나는 지점장 승진 이후 10년 동안 주경야독으로 학부 및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있다. 갓 스무 살에 입사해 36년을 근무한 지금 직장의 정년도 몇 년 남지 않았다.

요즘은 간간이 지나가는 말로 정년 후 노후를 걱정한다. 그럴 때마다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됩니다"라고 하는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퇴직 후에는 아내를 위해 우선 요리부터 배우고 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지면을 빌려 소중한 당신과 우리를 아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여보,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이 세상 끝까지 내가 지켜줄게!" 

/김두열 남창원농협 가음정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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