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CBS서 하루 두 번 라디오 뉴스…지상파방송 3사 입사 목표로 공부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쓰는 ○○ 이야기'라는 코너가 있었다. 독자가 지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코너였다. 2012년 11월 1일 자에는 '후배 신용진이 쓰는 선배 박병진 이야기'가 게재됐다. 이 글은 박병진 씨 이야기 중심이었지만, 신용진(26·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씨 자신의 얘기도 중간중간 담겨있다. 당시 신용진 씨는 3급 심판으로 활동하면서 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고 있었다. 2년이 흐른 지금, 그 꿈을 이뤘을까?

그에 앞서 시간을 좀 더 이전으로 돌려보자. 신용진 씨는 부산이 고향이다. 학창 시절에는 줄곧 운동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만뒀습니다. 공부를 뒷전으로 했으니 따라가기 쉽지 않더라고요. 다시 운동에 눈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운동선수에 대한 비전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일반 학과에서 공부하다 이후 전과해서 체육지도자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신문방송학 공부를 하다 보니 스포츠중계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자신의 전공이면서 좋아하는 분야인 것이다. 이에 대한 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씩 준비해 나갔다. 지난해 축구 내셔널리그 명예 해설위원으로 1년 간 경험을 쌓았다. 그 사이 서울에서 아카데미 연수도 받았다. 그런데 스포츠캐스터 아닌 뉴스 아나운서 쪽에 마음이 가면서 아예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상파방송 3사에 들어가는 게 최종목표인 신용진 씨. 스스로 '현실적으로 이 꿈을 정말 이뤄낼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다./사진 신용진 씨 제공

고향이 경상도다 보니 아무래도 발음이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용진 씨는 비교적 잘 극복하고 있다.

"친구들 앞에서 서울말 쓰면 좀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사투리를 쓰면 교정하기 어렵고…. 그래서 친구들 앞에서는 되도록이면 말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런데 제가 환경에 좀 잘 적응하는 편입니다. 사투리를 고치려고 마음먹으니, 비교적 극복이 잘 되더라고요. 제 고향을 모르는 분들은 서울 사람 같다고 말씀하세요. 그 정도면 일단은 성공한 셈이죠. 물론 지금도 계속 노력 중입니다."

그는 지난해부터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지상파방송,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할 것 없이 넣을 수 있는 곳에는 서류를 다 넣었다. 하지만 서류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경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험 쌓을 기회들이 찾아왔다.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 구청 방송이 있는데, 학교 실습을 나갔다가 여기서 진행을 맡게 되었다. 이 방송을 발판 삼아 경남 CBS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올해 5월부터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하루 두 번 라디오 뉴스를 하고 있다.

경력이 조금씩 쌓이면서 이제 응시원서를 넣으면 서류에서는 통과되는 편이다. 카메라 테스트 과정까지는 올라가고 있다.

"제가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그래도 카메라 테스트 받을 때는 생각보다 그리 떨리지는 않더라고요. 제 스스로 '방송 체질이라서 그렇다'고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저기 응시하고 있지만, 최종 목표는 지상파방송 3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 '현실적으로 이 꿈을 정말 이뤄낼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포기할까도 싶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다. 기회가 되면 스포츠중계도 꼭 해 보고 싶은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경남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릴 때 운동을 했던 그는 여전히 축구를 인생에서 떼놓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해 자주는 아니지만 요즘도 초·중·고 경기 심판으로 뛴다. 2년 전 그는 선배 박병진 씨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꿈이 뚜렷하고, 정말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요즘은 그것이 곧 본인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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