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세월호 유탄 맞은 고성 조선소 '천해지'

차분했다. 세월호 선주사인 청해진해운의 모회사로 알려지면서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았으며 이후 유동성 악화로 법정관리까지 이른 회사로 보이진 않았다.

지난 23일 고성군 동해면 천해지 조선소를 찾았다. 납품처에서 들어오는 대형 트럭들이 쉼 없이 드나들었고, 폭 35m 길이 55m의 대형 T-블록(1만 8000TEU급 배에 들어가는 중간 막)이 26만1157㎡(7만 9000 평)에 이르는 조선소 일대에 제법 알차게 들어서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수습을 위해 이곳으로 왔는데, 아주 어수선했다." 장도선(55) 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조선소장으로 온 그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직후 두 명의 집행임원 중 한 명으로 소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7월 14일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나고 온 임재협 법정관리인도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분위기 쇄신이었다고 기억한다. "처음 왔을 때 대부분 직원들이 불안한 모습이었다. 당시엔 천해지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임금삭감이나 구조조정 없이 회사의 체질을 바꿔야 했다. 접대성 비용을 비롯한 각종 비용을 과감히 줄였고 부서도 통폐합 했다."

장도선 소장도 매일 아침 비를 들고 청소부터 했다. 처음엔 시큰둥했던 협력사 임직원들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천해지의 회생은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회사 분위기가 바뀌면서 상황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상반기 적자의 주요 원인이었던 신조사업(배를 만드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주력 종목인 블록에 집중할 계획이다. 천해지가 만드는 블록은 트랜스벌크헤드(T벌크헤드, T블록 혹은 T-BHD로 불리기도 한다)로 이쪽 분야에선 독보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거제의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천해지가 만드는 T블록이 상당한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T블록은 그 크기가 엄청나서 기본적으로 공간이 작은 곳에선 만들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천해지는 처음부터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고 그 조건 덕에 오랜 시간 T블록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광양 등지에서도 만들지만 천해지가 앞서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의 대주주라는 이미지는 아직도 부담이다. 2012년 영업이익 44억, 2013년 영업이익 54억 원을 낸 천해지 입장에선 덧 씌워진 이미지가 부담스럽다. 사업 외부 조건으로 법정관리까지 오게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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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해지라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것도 숙제다. 그래서 현재 천해지는 사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장도선 소장은 "청해진과의 문제가 터지기 전에도 겉보기엔 연결고리가 거의 없었다. 일부 임원들이 그럴 수는 있었겠지만 유병언이나 청해진이 회사에 관여한 적은 없었다. 지금은 그쪽과 관련한 특수관계사들과 관계를 모두 정리했다"고 밝혔다.

천해지는 정상화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보다 조선사업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삼성·대우·현대 등에 T블록을 납품하고 있는 천해지 입장에선 호재다.

조선업계 전망도 이와 비슷하다. 지역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북미 등지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셰일가스(Shale gas) 생산이 해양플랜트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육지에서 생산 가능한 셰일가스를 두고 굳이 높은 비용을 들여 가스나 석유 시추를 위한 해양플랜트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며 국내 조선업계 동향을 설명했다.

때문에 천해지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법정관리 중인 천해지는 회생을 통한 매각 과정을 걷게 될 것인데, 자산가치를 최대화한 후에 매각하는 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숙제다. 천해지가 납품하는 빅3(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중 한 관계자는 "천해지라는 이미지 때문에 물량을 줄인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법정관리 중인 회사가 불확실성이 높은 것이 판단 근거가 될 수는 있다"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25년 전부터 고성군 동해면에 터를 잡은 천해지는 고성의 향토기업이다. 인근 거제, 통영과 달리 천해지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주소지가 고성이다. 천해지가 흔들릴 경우 고성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협력사를 합해 1300여 명 노동자가 일하고 그들 가족까지 합하면 4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측한다. 고성군도 사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군이 기업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천해지 회생 과정에 군민들 여론을 모으고 이미지를 개선하는 작업은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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