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장례지도사 하형정 씨

호리호리한 체형에 예쁘장한 이목구비. 그리고 깔끔하게 묶은 머리와 격식을 갖춘 옷차림. 여느 20대 여성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이답지 않게 몸에 밴 신중함 정도. 해를 넘겨 26살이 된 하형정 씨의 직업은 장례지도사다.

형정 씨는 고등학교 졸업 즈음 TV를 통해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뷰티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었는데 이를 계기로 스스로 큰 거부감 없이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동부산대학교 장례지도학과를 나왔어요. 특별한 일이다 보니 장례지도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대부분 장례지도사가 되지는 않아요.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형정 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치렀던 장례를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이전에 실습을 했던 것도 아니어서 두려웠어요. 저도 인간이라. 고인을 뵐 게 두려웠다기보다 고인이 안치된 냉동고를 봤을 때 두려웠어요. 어둑어둑한 공간에 빨간 불이 들어 온 냉동고를 보는데 마치 공포영화 속 한 장면처럼 무서웠어요. 그런데 막상 그 냉동고를 열고 고인을 뵈니 무섭지가 않더라고요. 그냥, 정말 주무시는 것 같았거든요."

형정 씨는 그 날을 이야기하며 자신은 운이 좋은 경우였다고 몇 번 강조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어도 계속 이 일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이 생겨요. 처음부터 자살이나 사고사로 마모된 시신을 보거나 하면…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1년도 못 버티고 그만두는 분들도 많이 봤어요. 그에 비하면 전 고인들이 도와주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차츰 그런 시신들을 보게 됐죠. 저 역시 처음부터 마모가 심한 시신을 봤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임종 후 유족으로부터 접수가 들어오면 법적 절차를 점검하고 장례에 필요한 각종 용품부터 장례식장· 일정· 비용 등을 논의한 뒤 준비하며 염습· 입관 등도 진행해야 하는 장례지도사. 건장한 남성도 육체적으로 힘들 법한데 형정 씨는 육체적으로는 괜찮다고 했다.

"빡빡한 일정이긴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익숙해지니 많이 힘들지는 않아요. 오히려 정신적으로 힘든 때가 많아요. 비교적 젊고 게다가 여자다 보니 겪는 일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가끔 어르신 중에 여자가 장례를 진행한다고 하니 '어디 감히, 여자가'라며 무시하시고 심지어 쫓아내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집안 가풍도 장례과정 중 일부라 늘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조금 섭섭하긴 하죠. 실제로 주변 여성 장례지도사 분들 중에서 이런 일로 일을 그만두는 분들도 더러 있고요."

하지만 이내 여자라서 좋은 점도 있다고 말하는 형정 씨.

"도내에는 여성 장례지도사가 몇 없어요. 그런데 특별히 저희를 찾는 유족들이 간간이 있어요. 여성분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에 '그래도 우리 어머니도 여자인데 여자가 염 등 과정을 진행해줬음 좋겠다'라면서요."

특수한 직업인 만큼 오해도 많은 것이 장례지도사. 형정 씨는 웃으며 오해를 풀어주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장례지도사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 생각하시잖아요. 하지만 요즘은 상조업계가 워낙 커지고 장례지도사도 많아져서 그렇게 고소득은 아니예요. 언제 일이 있을지 몰라 휴대전화를 붙들고 24시간 대기하는 것에 비하면 많이 버는 것도 아니죠. 일반적인 회사원들과 비슷한 수준이거든요."

형정 씨가 처음 장례지도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당시 그녀의 집안은 사정이 좋지 못했다. 부모님 두 분, 특히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고 게다가 어린 동생까지 있었던 터라 형정 씨는 비교적 벌이가 좋은 장례지도사가 되기로 했다. 왜 험한 일을 하려 하느냐며 부모님도, 주변 사람들도 많이 말렸지만 형정 씨는 이 길을 택했고 여기까지 왔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죽음에 관해 생각을 하게 돼요.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 어김없이 부모님이 생각나요. 오늘 출근하면서 뵌 부모님 얼굴이 마지막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장례지도사가 된 뒤 그래서 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어서 그런 표현은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젠 알겠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다 전하기엔 부족한 게 인생이란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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