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나의 경제는 어땠나] (4) 8년째 가계부 쓰는 주부 김채이 씨

주부 김채이(가명·36·창원시 진해구 마천동) 씨는 결혼 전부터 2013년 현재까지(결혼 8년 차) 하루도 빠짐없이 가계부를 쓰고 있다. 일부 정리하고 2008년부터 모아뒀다는 가계부 네 권에서는 물가 상승 폭을 읽을 수가 없다.

채이 씨는 "우리 집만 물가 상승 영향을 비켜간 게 아니라 안 사고 덜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투잡'하는 주부 = 채이 씨 남편(41)은 고성에 있는 한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월급은 280만 원이다. 일 년에 명절 때 두 번 140만 원을 더 받는다. 채이 씨는 남편 월급이 조금씩 오르긴 하지만 5·7살 두 딸을 키우기에 빠듯하다고 느껴 늘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년부터는 집 장만하느라 빌린 은행대출 원금과 이자만 꼬박꼬박 월 100만 원 더 지출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시간인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는 이모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보조 일을 한다. 60만~70만 원 사이의 월급을 받는다. 그리고 3시 이후부터 8시까지는 조카 2명을 봐주고 언니로부터 월 30만 원을 받는다. 채이 씨는 자신이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가계부는 늘 적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김채이 씨가 모아둔 네 권의 가계부. /이혜영 기자

◇"영화 관람은 내게 사치" = 조카를 포함해 4명의 아이를 돌보는 채이 씨는 주중에는 외출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영화라도 한 편 보려면 차로 10~20분 걸리는 롯데마트 진해점까지 가야 하니 포기한 지 오래다. 웅동 5일장에서 장을 보거나 집 앞 하나로마트를 이용하는 등 생활권이 동네로 한정돼 있다 보니 버스나 택시 탈 일이 없어 택시요금 인상은 생활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전기료 인상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채이 씨는 "요즘 마트에 가서 아이들 과잣값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잦다. 밀가루 값 인상으로 과자 두세 개만 잡아도 5000원이 넘는다. 식비 쪽은 브로콜리가 비싸면 안 먹으면 되고 양송이버섯이 비싸면 새송이 버섯으로 대체하면 된다. 과잣값도 줄일 수 있다. 우리 집은 외식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기, 수도, 가스료는 이미 줄여놓은 상태에서 더는 줄일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도 충분히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더 오르니 다른 쪽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이 씨네는 무박으로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다. 남편이 회사 숙소에서 지내다 주말에만 아이들과 만나기 때문에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다양한 경험으로 채워주고 싶은 욕심에서다. 먹을거리는 집에서 준비하고 기름 값만 들여 아침 일찍 출발해 저녁 늦게 돌아오는 당일 여행이다. 그래서 매월 기름 값은 20만 원 정도다. 휘발유 값 인상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오를 때는 100원 단위로 오르고 내릴 때는 10원 단위로 내려 늘 불만인 채이 씨다.

매일 지출 내역을 꼼꼼히 정리했다. /이혜영 기자

◇고민은 큰아이 사교육비 = 채이 씨의 큰딸은 내년에 초등학생이 된다. 지금은 유치원에서 오후 3시까지 보내고, 일주일에 선생님이 한 번 방문하는 학습지를 세 과목 하고 있다. 작은딸이 하는 학습지 두 과목을 포함해 매월 13만 4000원이 든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계속 '투잡'을 할 생각인 채이 씨는 큰딸이 초등학생이 되어 오전에 마치게 되면 오후 3시까지는 학원으로 보낼 생각이다. 학습지도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채이 씨는 "같이 지내는 조카도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데 언니네는 맞벌이기 때문에 사교육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조카는 학원 보내고 딸은 안가면 욕심 많은 딸이 나는 왜 학원 안 보내주느냐 원망할 것 같다. 피아노, 미술, 태권도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 내년 임금이 안 오르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한숨을 쉰다.

◇"2013년과 다른 2014년이 되길" = 요즘 유행하는 말로 채이 씨는 2013년 안녕했을까? 시어머니가 대학병원에 3주간 입원하게 되어 생각지도 못하게 100만 원 지출이 생긴 한 달을 빼고는 가계부에 적힌 숫자는 매월 비슷하다. 소득에 맞게 살려고 지출을 줄인 결과다. 큰 위기 없이 안녕했다는 말이다.

채이 씨는 학창시절 큰 꿈은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한 동네만 왔다갔다하는 틀에 박힌 삶을 원한 건 아니었다. 자유롭고 여유롭게 사는 삶을 꿈꿨다. 채이 씨는 남편 수입이 월 400만 원만 되어준다면 투잡하며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내년에는 11년 된 차를 새 차로 바꾸고 헌차라도 채이 씨가 몰고 다닐 계획이다. 채이 씨는 내년엔 그저 '안녕했다'는 말로 압축되지 않는 한 해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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