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김인순 창원시자원봉사회장

누군가 '봉사왕'에 뽑혔다는 소식을 들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삶으로 빠져보겠다는 다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37년째 봉사활동을 해 온 '아지매'를 만났다. 지난 4일 창원종합운동장 만남의 광장에는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에 500여 명이 북적였다. 김치를 버무리는 빨간 고무장갑 손들은 바빴다.

회원 230여 명과 함께 김장을 하러 온 김인순(60) 창원시자원봉사회장은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벌써 4번째 김장행사 참가라고 했다.

봉사회 활동분야는 다양하다. 요양병원을 찾아다니며 어르신 목욕봉사와 말벗도 하고, 복지시설도 찾는다. 다문화가정과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창원시 행사 지원은 기본이다. 노래도 부르고, 어르신들 마사지도 하며 재능기부도 한다. 1년 내 가장 바쁜 시기가 5월과 김장철이다. 어버이날이 낀 5월에는 경로잔치도 하고 어르신들 모시고 나들이도 나간다.

회장을 맡은 지 7년째, 장기집권이냐고 하니 웃었다. "연임을 하고 끝났는데 지난 2010년 창원시가 통합되면서 떠밀려서 초대회장을 맡았어요. 내년 1월에는 물러납니다."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전남 무안이 고향인 김 회장은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아들 둘을 낳아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30여 년 전 큰 변을 당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글자가 2~3개로 보이는 거라. 안과 가니까 큰 병원에 가보라 해서 검사했는데 실명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왼쪽 눈도 그럴 수 있다고 의사가 그랬어요. 청천벽력이었죠."

7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다행히 완쾌됐다. 새 눈을 얻었다는 생각에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건강할 때 유익한 생활을 해야겠다 싶어 창원시청에 전화를 해서 봉사하고 싶다고 하니 명서2동사무소를 연결해줬어요."

창원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에서 만난 김인순 씨. /표세호 기자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30여 년 이어졌다. 김 회장은 지금은 아플 여가도 없다고 했다. 오랫동안 봉사 일을 하다 보니 가슴 아픈 사연도 많다. 20년 전쯤 4년 동안 홀로 사는 70세 이웃 할머니를 돌봤단다. 1주일 한 번씩 밑반찬을 준비해 가서 청소와 목욕을 시켜드렸단다.

"어느 날 할머니가 '애미가 나를 도와줄 일이 있다'면서 먹고 죽을 약을 구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달랬지요." 그런데 추석 지나서 가보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추석 때만 되면 그 일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6년 전부터 봉사회는 창원 지귀상가 앞에서 화요일마다 새벽에 일용노동자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새벽에 운동장에 일이 있어 갔는데 서너 명이 일거리를 못 찾아 소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건강하게 자라 모두 가정을 꾸려 손자가 4명이나 있고, 남편 건강하니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흔히 봉사는 '베풂'이라고 생각하는데 김 회장은 '배움'이라고 했다. "어르신들 씻기면서 건강하게 이렇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분들에게서 많이 배우죠."

만남의 광장에서 김치를 담그는 봉사자들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온 회원들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살림 달인에다 자진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봉사달인들이니까 잘합니다." 삼성테크윈, 경남도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이날 담근 김치 1만 포기는 창원지역 복지시설 58곳과 생활이 어려운 2000여 가정에 배달됐다.

김 회장은 가족들이 반대하면 봉사활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좋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의 마음이 한데 모여야 한다는 뜻이다. 김 회장 아들과 며느리도 따라나와 거들기도 하고, 남편은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김장을 집집이 나눠줄 때 운전사 역할도 한단다.

그는 봉사는 '마약과 같다'고 했다. "자기 생활에 도움이 되고 건강해지려면 봉사를 해보세요. 봉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잖아요. 봉사활동을 하면 보람도 얻고 즐거움도 찾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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