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진주 꽃바람공방 강선녀 대표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마스크를 쓰고 큰 철판을 앞에 두고 용접을 한다. 그라인더로 나무를 다듬기도 하고 자르기도 하고 망치로 두드려 끼워 맞추고….

"10월 1일 남강유등축제 퍼레이드 소품들이에요."

잠시 용접기를 끄고 마스크를 벗었다. 얼굴은 땀투성이다. 진주시 판문동 '꽃바람공방' 강선녀(38·사진) 대표. 작업장 주변에는 불새, 흰 돛을 단 배, 곡괭이 등 이미 만들어진 작품들이 도열하듯 서 있다.

"유등축제에 작가로 참여한 게 9년 되네요. 매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픈데…. 단순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창작스토리예요. 진주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농민들이 곡괭이, 삽 등을 들고 맞서요. 두 마리의 불새가 나타나고, 흰 돛단배를 탄 현자가 나타나고…. 뭐 그런 이야기예요. 순전히 허구예요. 그럴듯한 소품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퍼레이드'를 생각했어요. 작업 동기나 과정이 더욱 구체적으로 되니까요."

선녀 씨는 늘 바쁘다. 그이는 하는 일이 많다. 조각·설치 작업을 하는 미술가, 생활가구 '꽃바람공방' 대표, 진주 망경동 남강변 '커피포트' 대표 등이 그이의 직함이다. 거기에다 연극무대 설치작업은 기본이고, 연극 기획과 극본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극본 <부케받는 남자>는 그이의 작품이다.

   

"인도에서 돌아와서는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네요. 이거다 싶은 거는 일단 다 하고 봤어요. 고민은, 답은 하면서 찾으면 되니까. 하고픈 일은 해야지요."

대학 졸업 후 무작정 갔던 인도에서 돌아온 지 벌써 9년. 선녀 씨는 그동안 어디든 한 군데 붙어있지 아니했고 꼭 미술이라는 한 가지 영역에서만의 작업을 고집하지 않았다.

선녀 씨는 1999년 조각 미술공부를 하러 인도로 떠났다가 거기서 꼬박 5년을 지냈다.

"원래 이탈리아로 가려고 했으나 당시 집안 사정이 안 좋아졌어요. 학비가 비교적 싼 인도에 갔지요. 대학 2학년 때 배낭여행을 갔던 적도 있고…. 여름 방학때 2~3개월 들어와서 과외 해서 돈 모이면 다시 인도 들어가고. 졸업 후에도 1년은 노래 배우고 춤 배우면서 눌러 앉았어요. 인도는 문화선진국이라 악기, 무용을 배우려면 선생도 많고 레슨비도 쌌습니다. 그 후에도 2년 동안은 인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어요."

고향 진주로 돌아와 그이는 개인 전시회를 2번 열었고, 창원아시아미술제 등 다양한 미술제에 참여하며 작가로 활동을 넓혀왔고, '골목길페스티벌', '남강유등축제' 시민참여제작 등 총괄 9년, 마을 만들기 사업 대형작품 설치 등 지역과 연계해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이는 개인 작업보다 장르를 뛰어넘으며, 여럿이 함께 하는 작업을 즐겼다. 그이의 주위에 연극, 음악, 미술, 건축, 시민단체 등 직종불문, 나이불문의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이의 가장 큰 동력은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람과 소통하겠다는 '진정'이었다.

그이는 4~5년 전부터 '꽃바람공방'에서 생활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틈틈이 자신의 미술세계를 침대, 탁자, 의자 등 가구에 응용·제작해 알음알음으로 판매를 시도했다. 최근에는 선녀 씨의 독창적이고 자연친화적인 가구풍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났다. 그이만이 가지고 있는 색채감, 그이만의 상상력은 어느새 자신만의 독창적인 콘텐츠가 된 것이다.

그런데 선녀 씨, 어느새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시간적으로 허락된다면 제일 하고픈 게 글을 쓰는 겁니다. 거창한 이유나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쓰고 싶습니다."

그이는 자신이 하고픈 걸 하는, 그래서 '그 다음이 더욱 궁금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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