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DVD방

1990년대 초·중반에 비디오방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그러면서 남녀 데이트 장소로 각광받았다. 중간에 인기가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DVD방이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영화 볼 수 있는 통로가 얼마든지 있는 마당에 DVD방 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찾는 이들이 있다.

토요일 저녁 창원시 중앙동 어느 DVD방. 일주일 가운데 가장 붐빌 시간이다. 홀에는 영화를 고르는 이들이 여럿 된다. 모두 남녀 커플이다. 혼자, 혹은 남자끼리, 여자끼리 온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이 한 편을 보면 조금 지난 프로는 1만 4000원, 최신프로는 1만 8000원이다. 극장에서는 1만 6000원(일반적인 가격), 특히 요즘 같이 이런저런 할인혜택을 받으면 1만 원으로도 본다. 이러한 것에 비교하면 DVD방 가격이 그리 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남녀에게는 둘만 있을 수 있는 이 공간이 장점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한 커플이 영화를 고르는데 열중하고 있다. 여자가 이래저래 영화를 골라 남자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남자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그러면서 "이왕 보는 건데 좀 제대로 골라서 보자"며 신중론을 편다. 여자는 짜증이 난 듯 "그럼 네가 골라봐"라고 한다. 남자는 최신영화 코너에서는 마음에 드는 게 없는지 옛날 영화 코너로 발걸음한다. 여자도 함께 따라간다. 하지만 여전히 어느 것 하나 고르지 못한다. 다시 최신영화 코너로 발걸음 한다. 결국, 하나를 골라 여자 앞에 내민다. 조금 전 여자가 추천했을 때 "별로"라고 말했던 영화다. 여자는 "어이구"라며 짜증을 내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이 원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돼, 싫지 않은 표정이다.

또 다른 커플도 영화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너무 오래 이러고 있으니까 눈치 보인다"라며 곧 하나를 선택한다. 하지만 카운터 직원 둘은 자기들 일로 바쁘다. 카운터 직원은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다. 여자 직원은 주로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일을, 남자 직원은 손님이 이용한 방을 재빨리 치우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커플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카운터로 향한다. 그리고 원하는 영화를 말하고서는 바로 방으로 향한다. 그런데 잠시 후 이 커플은 카운터로 되돌아온다. 작은방이라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카운터 직원이 "큰 방을 이용하려면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커플은 결국 기다리기로 한다. 직원이 조금 짜증 섞인 얼굴을 하자 남자 손님이 "미안하다"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이 업소에는 방이 30개가량 된다. 토요일 저녁에는 이렇게 빈방이 없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다.

20분을 기다리기로 한 커플은 대기번호를 들고선 먹을 것을 사려 한다. 매장에는 과자, 쥐포 같은 것을 판매한다. 여자는 이미 피자 한 판을 들고 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 싶은지 과자와 마실거리를 또 산다. 피자 포장지를 뜯지 않았지만, 매장에는 그 냄새가 조금씩 스며 나온다. 피자뿐만 아니라 각자 먹을 것을 사 와서 먹는 이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음료수와 과자를 산 커플은 대기실로 향한다. 이곳에는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만화책·잡지, 장기·오목판 같은 것을 비치해 두고 있다. 둘이 한창 오목 삼매경에 빠져 있을 무렵 카운터에서 '17번 손님 카운터로 오세요'라는 방송을 한다.

둘은 미로 같이 얽힌 복도를 따라 구석방에 들어간다. 방문에는 창이 있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게 되어있다. 방안엔 넓적한 소파, 쿠션 베개, 휴지, 그리고 재떨이로 사용할 수 있는 종이컵 하나가 있다. 카운터 옆에는 담요를 비치해 놓고 있어 치마 입은 여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영화가 시작된다. 둘 만의 2시간이 시작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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