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을 찾아서] (29) 이병호 진주 알찬수출영농조합 대표

특별한 딸기가 있다. 100m에 60만 원이나 하는 네덜란드 수입 배지에서 자란다. 그날 날씨에 따라 물과 영양분을 과학적으로 따져 공급받는다. 가운과 위생 모자를 쓴 50명의 선별 직원이 장갑 낀 손으로 한알 한알 상자에 포장한다. 이 딸기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과 동남아시아로 간다. 이렇게 호사스러운 대우를 받는 딸기가 진주시 수곡면에서 자라고 있다.

진주시 수곡면 알찬수출영농조합법인 이병호(52) 대표 등은 2002년부터 작목반을 결성해 딸기를 일본에 수출했다.

"딸기는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수출이 쉽지 않습니다. 일본 바이어가 다른 지자체에서 시도하다가 실패했지요. 그러다 우연히 바이어가 진주시에 찾아와서 접촉했는데, 당시 공무원들이 한번 해보자고 의뢰하기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힘들었다. 다른 곳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딸기는 농산물이지만, 수출하려면 공산품화 해야 합니다. 바이어가 원하는 규격, 원하는 수량을 그때그때 맞춰줘야 합니다. 그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특정한 날짜에 특정한 사이즈를 특정한 수량만큼 납품해야 하는데, 규격과 수량을 농가에서 예측해서 만드는 게 쉽지 않죠. 농작물은 하늘이 키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병호 진주 수곡 알찬수출영농조합 대표가 수출을 위해 포장하고 있는 딸기를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하지만, 수출에서 미래를 봤다. 지속적으로 거래하면 미래에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약속한 수량을 맞추려고 조합원들이 한밤중에 플래시를 들고 딸기를 땄다. 그렇게 신뢰를 쌓은 것이 10년. 이제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바이어 측에서 이해해준다. 법인은 점점 수출이 확대되면서 규모화하려는 취지로 지난 2008년 설립했다.

수출용 딸기는 전부 비행기로 보낸다. 또, 저장성을 고려해 선택한 품종이 '매향'. '매향'은 단단하고 고유의 향이 짙지만, 수확량이 적고 크기가 작으며 뿌리가 약해 키우기가 쉽지 않다. 이 대표는 매향 딸기를 "마치 잘 삐치는 예쁜 여자 같다"고 비유했다. 50명의 선별 직원들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수출을 위해 포장하고 있는 딸기는 매우 단단하고 옹골지게 보였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선뜻 품종 전환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체 면적의 10% 정도만 매향을 키우다가 점차 확대했습니다. 조금씩 비전을 보며 지금까지 오는 데 10년이 걸렸네요. 처음에는 40여 농가가 함께 했으나, 지금은 15농가가 조합원으로 남았습니다. 이제 이들은 국내 가격 변동에 연연하지 않고 생산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하우스에선 딸기를 어른 허리 높이 정도의 배지에서 고슬재배로 키운다.

15농가 10만㎡(3만 평)에서 지난해 300t의 딸기를 생산, 3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딸기는 50%가량은 수출하고, 사이즈 등이 맞지 않는 나머지 50%는 내수용이다. 하지만, 시중 마트 등에서 유통되지는 않는다. 파리바게뜨, 샤니, 삼립식품, 파리크라상, 비알코리아 등의 계열사가 있는 SPC그룹에 공급하고 있다.

수곡에서 태어나 객지 생활을 하던 이 대표는 15년 전 귀향했다. 자동화기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다 IMF 외환위기로 연쇄 부도를 맞은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막상 직접 농사를 지으려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몇 걸음 걸을 필요도 없는 30평 작은 사무실 안에서만 움직이던 생활이 100m 이상 걸으면서 몸으로 일해야 하는 생활로 바뀌었다.

"밑천도 없이 맨주먹뿐이었습니다. 농협과 정부에서 지원하는 시설자금 등을 대출받아 일을 시작해 조금씩 확대했습니다. 수곡은 일교차가 심하고 자연재해가 적어 30년 전부터 딸기 농사를 도입한 지역입니다. 딸기는 다른 농작물에 비해 일거리가 아주 많지만, 내가 할 일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작은 밭에서 시작한 일이 지금은 딸기 1만 ㎡(3000평), 토마토 5000㎡(1500평) 규모로 확대됐다.

딸기는 10월께 다음 해 모종을 확보할 모주를 준비해서 키운다. 3월에 모주 포기를 정식하면 넝쿨이 나온다. 그 넝쿨의 군데군데에서 뿌리를 내리는데, 이것이 딸기 모종이 된다. 이를 9월께 정식하고 11월부터 다음 해 5월 말까지 수확한다.

"즉 딸기는 1년 가까이 모종을 키우므로, 한쪽에서는 수확을, 한쪽에서는 모종 키우기를 병행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일손이 2배로 든다고 할 수 있죠. 또 딸기 수확은 기계화가 안 됩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따서 포장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합니다. 그만큼 딸기 재배가 힘들어 재배면적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으므로 가격이 안정적인 편입니다."

이 대표의 딸기 하우스를 방문했는데, 여느 딸기 하우스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인근 다른 농가만 해도 보통의 하우스와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KBS의 <1박 2일>에서 딸기 하우스를 찾았을 때 은지원이 "상추 아니냐"고 했던 모습처럼 밭에서 나지막하게 잎이 돋아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대표의 하우스에서는 어른 허리 높이에 설치한 배지에서 자란다. 즉 토경 재배가 아니라 양액 재배를 한다. 높은 곳에서 키운다고 해서 '고슬 재배'라고 부른다. 법인 조합원 농가에서는 50%가량이 고슬 재배를 하고 있다.

"그때그때 광량, 온도, 습도 등에 맞춰 물과 비료 등을 줍니다. 토양 재배에 비해 까다롭습니다. 땅은 완충력이 있어서 내버려둬도 땅이 어느 정도 작물을 키우지만, 양액 재배는 필요한 양을 매일 공급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죠. 10년 전부터 공부했지만, 실제 도입한 것은 4~5년밖에 안 됐습니다."

토경 재배를 하려니 엎드려서 일해야 하는 등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양액 재배에 눈을 돌렸다. 여러 해를 공부하고 시험했지만, 계속되는 실패. 국산 왕겨와 모래 등을 배지로 이용해 딸기를 키웠지만 자라지 못했다. 네덜란드에 교육받으러 갔다가 물이끼의 일종인 피트모스를 주 원료로 하는 'BC2'라는 배지를 보게 됐다. 100m에 60만 원.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과감히 도입했다.

"처음에는 왜 안 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시험하고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네덜란드에서 선진 영농을 도입하고 피트모스 배지를 이용한 결과 서서히 성공하게 됐죠. 지금은 개인 농가들이 코코 슬래브 배지 등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시험 중입니다."

과학적으로 키우니까 생산성도 1.5배가량 늘어나고 병도 적다. 환경도 깨끗하고 허리 굽혀 일하지 않으니 작업 여건도 한결 수월하다. 이제는 국내 다른 단체에서 수곡면으로 견학 온다.

3년 내 조합원 재배 면적 100%를 고슬 재배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법인에 생산·유통은 물론 가공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신선 농산물 출하 품질을 고급화하면 그만큼 나머지 수량(로스)이 많이 생깁니다. 지금은 수출용 조건에 맞지 않는 딸기를 아주 싼 값에 가공업체에 넘기는데, 이를 직접 가공하면 아주 신선한 상태에서 상품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산지에서 직접 가공하는 만큼 양질의 상품이 되죠. 지난해 연구 개발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것들을 상품화할 수 있는 공장을 계획 중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조합원들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고, 전체 매출도 증가시킬 수 있을 겁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올려진 딸기 중 진주 수곡면에서 자란 '콧대 높은' 딸기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천이유>

△김웅규 경상남도농업기술원 미디어홍보담당 = 알찬영농조합법인 이병호 대표는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 고품질과 노동력·경영비 절감에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을 뿐 아니라 딸기·토마토를 새로운 재배기술로 연중 생산해 농업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내 주요 기업와 제과점에 신선농산물 직거래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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