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유권자 정책·이슈 등에 민감하게 반응…'장밋빛 허위 공약' 안 통해

최근 몇 년 새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을 해석하는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행동하는 무당층(중도층)'의 등장이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특정 이념에 치우침이 없이 유연한 정치적 선택을 한다. 이념·정당 요인보다 후보나 정책이슈 같은 단기적이고, 가변적인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이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몇몇 선거 결과를 떠올려보면 된다. 이들은 새누리당의 아성이라는 경남지역에서 야권의 김두관을 도지사로 만들거나, 오랫동안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깜짝' 출마한 박원순을 서울시장에 당선시키는 그런 계층이다.

당연히 반대 사례도 존재한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에 '심판'을 내리고, 불과 두 달여 뒤 재보궐선거에서 장상(서울 은평을) 등 구시대 인물을 공천한 민주당에 참패를 안긴 중심에는 바로 행동하는 무당층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유권자 중에는, 10여 년 전 이른바 '노풍'을 불러일으키며 노무현 정부 집권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사람이 상당수(약 30%로 추정)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경향이 모든 선거, 모든 지역에 같은 정도로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교훈은 분명하다. 앞서 정한울 부소장의 말처럼 '단기적이고 가변적인 요인'의 영향력 증대, 즉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거나 그냥 앉아서 당선증만 받아 먹던 시대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진해시되찾기 시민연대가 주민 의사를 무시한 강제통합을 무효화하고 통합 창원시를 3개시로 분리 환원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지난 2010년 동시지방선거 진해구의 경우를 보자. 새누리당이 거의 싹쓸이를 해왔던 시의원선거에서 총 13명 중 무려 7명의 야권·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이 주도한 마산·창원·진해 통합의 후폭풍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진해에 통합신청사가 올 것"이라는 등 온갖 지키지 못할 헛공약으로 시민들을 현혹한 데 대한 분노의 심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춘모 진해시민포럼 집행위원장은 이 선거 결과와 관련해 "이제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더 이상 아날로그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고 디지털시대를 넘어 트위터로 소통하는 시대라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라며 "다수의 국민이 정치하는 사람들과 더욱 솔직하고 상식이 통하는 소통을 바라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예의 당시 통합을 이끈 국회의원들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새누리당 이주영(마산 갑) 의원 측은 "청사 문제가 꼬여 있긴 하지만 재정 인센티브 확대 등 통합의 긍정적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런데도 아예 성과가 없는 것처럼 말하며 모든 책임을 국회의원에게 돌리는 태도는 사실상 정치공세"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비단 행정통합뿐만이 아닐 것이다. 곧 있을 총선에서 경남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하는 쇄신 바람이 설득력을 얻으면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그만큼 더 높아질 것이고, 반대로 야권 후보들이 공정하고 미래지향적인 경쟁 속에서 감동의 연대를 이루어낸다면 또 다른 이변이 연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창당 직후 한때 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을 크게 앞섰던 민주통합당이 최근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다. 현역 국회의원·구시대 인물뿐 아니라 비리 연루 인사, 친MB 성향 인사 등이 대거 공천장을 받은 데 따른 실망의 결과로 풀이된다.

물론 유권자의 선택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다. 불법선거자금을 뿌리다 현장에서 적발된 후보를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결국 2년 뒤 재선거를 치르게 만든 주역도 유권자였고, 최근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박희태(양산·새누리당) 전 국회의장을 숱한 부패 논란 속에서도 6선까지 시켜준 장본인 또한 바로 유권자였다.

이른바 '747 공약'(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 2007년 대선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조짐, 부동산 거품론, 고용없는 성장 등을 근거로 허무맹랑한 공약이라고 이구동성 지적했다. 하지만 '경제활성화'를 절실히 원했던 다수의 유권자들은 주저없이 투표장으로 향했고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이번 총선, 그리고 대선에서도 이런 장밋빛 공약이 쏟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의 선택은 어떨까? 또다시 '또 다른 이명박·박희태'에게 몰표를 던질까? 전문가들은 그러나 '민주·진보 정권' '서민 대통령' '보수 정권' '부자·경제 대통령' 모두를 다 겪어보며 실망과 좌절을 반복한 유권자들이 더 이상 속수무책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747 공약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안될 줄 빤히 알면서도 국민들에게, 유권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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