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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건한 소스 속에 참맛은 없다

[초짜 애식가의 음식이야기] (6) 돈가스와 햄버그스테이크

고동우 기자 kdwoo@idomin.com 2012년 01월 20일 금요일

돈가스와 '함박'(햄버그)스테이크는 고기 요리라는 것 외에 별 공통점이 없는 음식이지만 과거 경양식집들은 이들을 함께 파는 경우가 많았다. 고기 종류(돼지와 소)도 구분되고 조리 방법(튀김과 구이) 역시 다른 이 둘이 왜 한 메뉴판에 오르게 되었을까?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일본 음식문화의 영향이다. 잘 알려진 대로 두 음식은 '일본화한 서양음식'의 대명사다. 돈가스는 유럽의 포크커틀릿에서, 함박 스테이크는 독일 함부르크의 함버그 스테이크에서 유래됐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모든 영역에서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메이지유신 이후인 19세기 후반 일본이 서양음식을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개발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한반도에도 어떤 식으로든 전파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직후 서양요리에 대한 변변한 지식도 메뉴도 없던 시절, 이 '익숙한' 일본 요리들은 경양식집으로서 뭔가 구색을 갖추는 데 유용한 대안이 되었을 것이다.

   
 
  튀김옷이 바삭하게 살아 있는 돈가스.  

또 다른 가능성은 바로 소스다. 두 음식 모두 이른바 '데미그라스 소스'라고 하는 진한 갈색 소스를 쓰는 공통점이 있다. 각종 야채와 고기, 고기뼈, 토마토페이스트, 향신료 등 상당히 많은 재료와 시간이 필요한 이 소스는 의외로 직접 만들기 까다로워, 예나 지금이나 기성 제품 혹은 그 제품을 활용해 만든 것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새콤달콤한 맛의 이 소스를 고기뿐 아니라 밥에 비벼 먹는 걸 좋아했는데, 음식점 입장에서는 한국식 '원 소스(sauce) 멀티 유즈'라고 할까, 돈가스, 햄버그스테이크, 오므라이스 등을 한데 모아놓는 게 좀 더 경제적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음식은 세월이 흐르면서 각기 전문화되었고 이제는 함께 파는 음식점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가스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의 '대공습'이 있었고, 어느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햄버그스테이크는 대형 패스트푸드 전문점의 햄버거 속 '패티'가 되었다.

   
 
  소스를 듬뿍 뿌린 햄버그스테이크·오므라이스·스파게티.  

사실 이전에 우리가 먹었던 방식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점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소스를 듬뿍 뿌린 얇고 편평한 돈가스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으나, 눅눅한 튀김옷, 씹는맛과 향이 증발된 돼지고기 등 이게 밀가루·소스 요리인지 고기 요리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소스의 경우 직접 만든 것도 아닌, 각종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저질의 '인스턴트 식품'과 다름없는데 말이다. 어떨 때는 오래된 냉동 고기나 냉동 완제품 등 부실한 내용물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 소스를 범벅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반면 질 좋은 냉장 등심이나 안심을 두툼하게 잘라 소금·후추, 밀가루, 계란, 빵가루 등을 묻히고 좋은 기름에 튀긴 돈가스는, 굳이 소스를 뿌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한 맛을 낸다. 사각사각 씹히는 바삭한 식감, 연한 육질과 흥건한 육즙, 향긋한 기름 내음, 그리고 여기에 아삭아삭 양배추와 밥 한 술, 된장국 한 모금까지. 지극히 단출한 상차림이지만 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야말로 최적의 만족감을 주는 조화로운 구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햄버그스테이크 역시 마찬가지다. 돈가스와 달리 햄버그스테이크는 제대로 하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든데, 과거 먹는 방식이나 현재의 패스트푸드점 햄버거 속 패티는 자극적 소스와 각종 야채에 진짜 그 맛이 '감춰진' 햄버그스테이크일 뿐이다. 일부 업체는 심지어 함량 미달의 고기 맛을 상쇄하기 위해 패티 자체에 돼지고기와 밀가루, 소스, 설탕, 화학첨가물 등을 다량 넣기도 한다.

햄버그스테이크는 그러나 미국의 한 유명 음식점 주인 말마따나 "또 다른 모양의 스테이크" 즉 고기 그 자체의 맛으로 먹는 음식이다.

굳이 밖에서 사먹을 이유도 없다. 이것저것 섞을 필요 없이 '오직' 소고기 등심이나 홍두깨살, 목심 등을 갈아 두툼한 두께·크기로 뭉쳐(흔히 하듯 치대지 않는다) 소금·후추를 뿌리고 스테이크 굽듯이 구워 보자.

이때 고기는 미리 갈아놓은 걸 구입하기보다는 핸드 블렌더 등을 이용해 직접 가는 것이 좋다. 소위 '다짐육'이란 이름으로 파는 고기는 공기 접촉면이 넓어 빨리 상할 뿐 아니라 언제, 어떤 고기를 간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가지 주의할 점만 잘 지키면서 그대로 따라한다면 패스트푸드점 햄버거에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될 것이다. 빵에 싸 먹을 때도 오래 볶은 양파와 씨겨자 약간 정도만, 이런저런 야채나 소스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미국·유럽·일본을 비롯한 국내 일부 햄버그스테이크 전문점에서는 스테이크와 똑같이 고기 속을 덜 익힌 '레어', '미디엄 레어' 햄버그스테이크를 내놓기도 한다. 보통 한우 구워 먹을 때도 핏물이 살아 있는 고기 맛이 더 좋다는 건 대부분 공감하는 바인데, 그러고 보면 모든 음식은 이렇게 국적과 문화를 넘어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도 한국식 '햄버그스테이크'가 있다. 이름하여 떡갈비. 함박스테이크, 햄버거, 그리고 떡갈비는 맛과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계통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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