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세월 고스란히… "시장은 시장 같아야제∼"

시내 곳곳에 대형마트가 산재해 있는 요즘 전통시장은 그야말로 퇴물로 취급받고 있다.

서민들은 대형마트의 깨끗한 실내쇼핑공간에서 안내원들의 친절하고 상냥한 인사를 받으면 자신이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에 취해 만족감과 우월감을 느낀다. 하지만, 정형적이고 가식적인 인사와 웃음, 가격이라는 수치를 이용해 고객을 속이는 교묘한 마케팅 등 인간미가 없는 대형마트에 사람들은 싫증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전통시장의 푸근한 인상과 가식 없는 모습, 순박함을 사람들은 잊지 못한다. 비록 깨끗하고 안락한 쇼핑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넉넉한 인심과 사람살이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기에 아직 많은 이들은 전통시장을 애용하고 있다. 지난 6일 토요일 오후 마산 산호시장을 거닐며 그 풍경을 들여다봤다.

현대화 시설 없이 전통시장 모습 간직

산호시장은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른 전통시장들이 세월과 소비성향의 변화 탓에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쇼핑 편의를 위한 카트를 갖추었지만, 산호시장은 세월의 변화를 느낄만한 구조물과 시설이 거의 없다. 그래서 30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으며 전통시장다운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길가에 늘어선 건물 1층에는 채소, 과일, 생선가게와 정육점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좌판에는 신선한 농·수산물이 진열되어 있다. 물건을 파는 이들은 대부분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들이다.

갓 들여온 배추를 칼을 이용해 이리저리 돌려가며 다듬기도 하고, 과일을 정성스럽게 닦아 좌판에 진열한다. 고기 장사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지 정육점 주인아주머니는 뽀얗게 우려낸 곰국을 떠서 한 봉지, 한 봉지 포장한다.

정다운 우리네 어머니·할머니들 장사

식사를 하던 채소가게 아주머니가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을 맞고 있다. /김두천 기자 kcd87@idomin.com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주변에 함께 장사하는 아주머니들끼리 모여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 안부를 묻거나 여기저기서 들은 소문을 확인하기도 하고, 출가한 자녀나 손자이야기가 질펀하게 이어진다. 한창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면 인기있는 TV 연속극 이야기에 함박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토요일인지라 주말연속극 이야기가 화제다. "요즘에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어디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안부 인사할 시간도 없다고 대드는기 말이 되나.", "요새 며느리들은 다 그런다 안카요." 잘 들어보니 KBS 주말연속극 <수상한 삼형제>이야기다.

한창 수다가 이어지는데 손님이 배추 가격을 물어온다.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앞치마에 손을 쓱싹 훔치고는 물건 흥정을 한다.

파전, 튀김 등을 파는 분식집에는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 두 사람이 앉아있다. 상에는 파전 한 접시와 막걸리 한 통이 놓여 있다. 발그스름하게 취기가 오른 두 사람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커져 있다.

인근 돼지국밥 집만 7곳, 유난히 많아

걸음을 옮긴다. 산호시장 주변에는 유난히 돼지국밥 집이 많다. 250여m 거리에 국밥집 5곳이 성업 중이다. 조금 외따로 떨어진 곳에 두 곳의 국밥집이 더 있다. 손님이 뜸한 국밥집 한쪽에 자리를 잡고 국밥 한 그릇을 주문한다. 주변 테이블에 한 중소기업 작업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셋이 국밥과 수육을 시켜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회사 얘기가 주를 이루더니 시기가 시기인 만큼 어느새 지역 정치 이야기로 넘어간다. 신문에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이 실린지라 경남도지사 선거가 이슈인 모양이다.

"이달곤이가 어데, 창원 사람이라 캤나?"

"하므요, 서울대 교수했다지 아마."

"이달고(곤)이나 이방호나 다 친이곈데 한나라당 골치 아프게 됐네."

"뭐 이명박이는 이달고(곤)이를 더 맘에 두고 있는 거 같드만 거의 사표 내고 내리가라고 압박을 했다는거 같던데"… 이후 박완수, 황철곤 등등의 예비후보 등 통합 창원시 예비후보 이름이 거론되면서 각 후보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각론이 이어진다.

삼삼오오 모이면 지역 정치 이야기

다시 자리를 옮긴다. 바다가 인접한 탓인지 작은 시장 안에 횟집이 많다. 유난히 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횟집에 눈길이 간다. 형제는 횟감을 다듬으면서 연방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작은 작업공간 안에서 무료함을 덜고자 라디오를 켜 놓고,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콧가락을 같이 실어 담는다. 엉덩이도 함께 흔들흔들, 어깨는 들썩들썩한다.

작업 도마 뒤에는 소주병과 약간의 회가 썰어져 있다. 추운 겨울날 야외 매대에서 겨울바람을 맞고, 차가운 물에 손을 넣어 생명을 다뤄야(?) 하는 직업 특성상 알코올이 약간 필요하단다.

다양한 사람, 순박한 얼굴, 넉넉한 인심 비록 전통시장은 세월의 무게를 못 이기고 점점 퇴락해 가고 있지만, 그 안에 남은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는 그대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