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PO전 리뷰

혼전을 거듭하던 2004~05프로농구가 드디어 TG 삼보와 KCC의 리턴매치로 그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올 시즌 나란히 정규리그 1, 2위를 차지한 두 팀은 4강 PO에서 각각 서장훈의 삼성과 단테 존스가 버틴 SBS를 제압하고 결승에 도달했다. 지난 시즌 정규시즌 최다승(40승)을 거두고도 결승전에서 KCC에 3승 4패로 역전패한 TG로서는 1년을 기다린 설욕무대다. 반면 디펜딩 챔피언 KCC는 5번째 파이널 진출이 말해주듯 최고의 명문팀으로 손색이 없다. 주전들의 노쇠화와 체력부담이라는 난제를 극복하고 다시 결승에 오른 KCC의 저력은 경험에서 나오는 위기관리 능력에 있다.

△경기를 압도한 고공농구의 위력 - TG 대 삼성

TG의 우세는 자명해보였지만 이 정도로 일방적인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토종센터의 자존심인 김주성과 서장훈의 맞대결을 비롯하여 모든 포지션에서 매치 업이 이루어지는 양 팀의 대결은 싱겁게도 TG의 압도적인 3연승으로 끝났다. TG가 1차전에서 42점차(105-63)의 대승을 거두었을 때 사실상 시리즈의 운명은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TG는 정규리그를 평정한 고공농구의 위력을 PO에서도 그대로 이어갔다. 쟈밀 왓킨스와 김주성이 버틴 골밑은 부상에 시달리던 서장훈과 들쭉날쭉한 활약을 보인 모슬리로서는 넘보기 어려운 철옹성이었다.

정규리그에서 TG의 강점은 공격보다는 수비에서 평가되곤 했는데, 이번 시리즈에서 삼성은 70점대를 기록하던 TG를 상대로 평균 100점대에 육박하는 대량실점을 허용하며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매 경기 팀 내 리딩 스코어러가 바뀔 만큼 5명의 선수가 고른 득점을 올려준 TG의 폭발력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체력에서 일찍 한계를 드러낸 삼성 선수들이 TG의 스피드를 따라잡기에는 발이 무거웠다.

시즌 내내 별다른 위기 없이 선두를 질주하며 4강에 직행한 TG에 비하여 막판까지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 살얼음 승부를 펼쳐야했던 삼성은 체력저하와 주전들의 부상으로 정상적인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에, 포인트가드 대결에서 삼성의 주희정이 TG의 신기성에게 완전히 압도를 당하면서 삼성은 시리즈 내내 경기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외곽슛 대결에서도 TG의 양경민과 신기성이 고비마다 고감도 3점포를 꽂아 넣었고, 아비 스토리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코트 곳곳을 누빈데 반하여, 삼성은 이규섭, 주희정에 서장훈까지 외곽 경쟁에 가세했으나, 문경은(현 전자랜드)이후 확실한 슈터를 가지지 못한 약점을 다시금 그대로 노출했다.

삼성은 알렉스 스케일만이 그런대로 제몫을 다했지만, 결국 외곽슛, 리바운드, 속공 등 모든 면에서 뚜렷한 열세를 드러내며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서 무기력하게 시리즈를 내주어야 했다.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삼성은 팀의 능력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우승을 위해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며 서장훈을 영입한 이래, 팀은 매 시즌 야심차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아직 우승은커녕 파이널에도 한 차례 오르지 못했다. 플레이오프에는 꾸준히 이름을 올렸으나 팀이 원하는 기대치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

올 시즌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잦은 부상과 수준급 용병들과의 대결에서 고전했던 서장훈은 이제 우승의 보증수표로 불리기에는 조금씩 전성기가 지나는 느낌이다. 팀 체제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삼성의 정상도전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의 차이- KCC 대 SBS

‘단테 열풍'을 잠재운 것은 역시 KCC의 노련미였다. 올해 정규시즌 최다 연승(15)신기록을 세우며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른 SBS이었지만, 신화를 완성시키기에는 경험이 부족했다.

뛰어난 용병의 활약보다 감독의 전술적 승리가 승부를 갈랐다. KCC의 신선우 감독은 1대1로는 막기 힘든 단테 존스를 상대로 무리한 강압수비를 펼치기보다 그에게 줄 점수는 주되, 단테 존스를 지원해주는 SBS의 외곽슈터들을 철저하게 봉쇄하는 작전을 세웠다.

6강전에서 맹활약했던 양희승과 김성철은 이번 시리즈에서 1차전을 제외하고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득점부담이 가중된 존스는 포스트를 지키기보다 무리한 외곽 슛과 개인플레이를 남발하며 팀워크를 해쳤다. 설상가상으로 후반에는 체력저하로 에이스다운 경기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신선우 감독의 용병술은 적절한 선수교체 타이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시리즈를 앞두고 팀의 아킬레스건은 역시 평균 30대를 훌쩍 넘긴 노장들의 체력 문제, 그러나 최승태,표명일 같은 백업멤버들의 적재적소 운용이 주전들의 휴식시간을 잘 메워줬고, 힘을 비축한 조성원과 추승균은 고비에서 3점슛과 적절한 수비로 팀에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단테 존스와 주니어 버로의 중량감에 다소 밀린 듯하던 용병 대결에서도, 민렌드가 기복 없는 활약을 펼치고 제로드 워드가 기대이상의 팀 공헌도를 보여주며 SBS를 압도할 수 있었다.

KCC의 최대 강점은 상대의 템포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끌어나가는 능력에 있다. 1차전을 내주고도 SBS에 끌려 다니기보다, 적절한 템포 바스켓과 조직화된 수비로 젊은 팀 SBS의 부족한 끈기를 파고든 KCC의 노련미는 단연 돋보였다.

SBS는 올 시즌 후반 영입한 단테 존스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일약 프로농구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금 첫 파이널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전술과 체력이 최종 승부를 가른다

TG와 KCC의 리턴 매치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높이와 경험의 대결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양 팀 모두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고는 선수층에 큰 변화가 없고 같은 감독이 여전히 지휘봉을 잡고 있다.

TG는 여전히 포스트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KCC는 정통센터 R.F 바셋을 영입하며 대등한 골밑 승부를 펼칠 수 있었지만, 올 시즌에는 민렌드와 워드 정도로는 제공권을 장악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변수는 역시 단기전에 강한 팀의 경험에 있다. TG는 올 시즌 정규리그와 4강전을 거치며 이렇다 할 고전을 하지 않고 손쉽게 파이널까지 올라왔지만, 접전 경험이 적다는 것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KCC는 조성원과 이상민 등 30대를 넘긴 선수들이 전성기의 위력은 지난 상태지만, 적절한 체력 안배만 이루어진다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초반 TG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끌어나가지 못한다면, 접전 상황에서는 언제든 주도권이 KCC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KCC의 고민이 여전히 체력문제에 있다면, TG는 4강전에서 궂은일을 담당하며 일단 합격점을 받았던 아비 스토리가 파이널에서도 제 몫을 다해줄지가 변수다. TG가 매치 업에서 가장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매치업이 바로 스토리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수싸움에 능한 신선우 감독과 우직하게 선수들을 믿는 뚝심이 돋보이는 전창진 감독의 전술 운용에 따라 승부는 변할 수 있다. 양 팀을 지탱해주는 축이 돌발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면 승부는 다시금 6차전 이상의 장기전에 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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