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희소성·상징성·역사적 가치 뛰어나
삼국~조선후기 성곽 축조 기술 변천과정 확인돼
11월 11일 거제시에서 사적 지정 기념행사 마련

거제수정산성 전경. /국가유산청
거제수정산성 전경. /국가유산청

외세 침입에 대비해 거제도민 힘만으로 쌓은 것으로 알려진 ‘거제 수정산성’이 사적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거제 수정산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에 국가유산청과 거제시가 내달 11일 오후 2시 거제시농업개발원에서 사적 지정 기념행사를 연다.

수정산성은 해발 143m 정상에 쌓은 산성 유적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성곽 축조기술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정산성은 서문 밖 큰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동치십이년계유삼월일설’이라는 명문을 통해 ‘옥산금성’이라 불린 기록이 있다. <통제영계록>과 <거제군읍지> 등 문헌에는 ‘수정산성’으로 기록된 점을 고려해 이번에 ‘거제 수정산성’으로 지정됐다.

성벽 전체 둘레는 약 450m이며, 11차례 시·발굴 조사에서 삼국시대 신라 초축 성벽에 고려·조선 시대 수·개축 흔적이 확인됐다.

‘수정산성축성기’ 비석을 통해 가장 마지막으로 성벽이 축성된 것은 고종 10년(1873년)임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축성 관련 기록이 1871년 김해 분산성을 끝으로 더는 등장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늦은 시기의 산성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시 외세 침입에 대비해 조정의 지원 없이 거제부사 송희승과 거제도민들 힘만으로 쌓았다는 점에서 희소성과 상징성,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밝혔다.

성내에서 조사된 건물지와 동서문지의 잔존 양상은 조선후기 성곽 구조와 축조 수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1호 건물지는 온돌이 확인되지 않고 장식기와가 사용돼 관사 등 특수목적 건물로 보이며, 영남지역에 석회 산지가 없었음에도 당시 고급 재료였던 석회가 다량 사용된 점으로 미뤄 중요한 건물로 추정된다.

수정산성 초축 성벽에서 확인되는 성돌(세장방형 가공 ), 성벽(바른층쌓기 ), 성문과 기저부, 층단식 원형집수시설 등 축성기법을 통해 최초 축성 시기를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로 국가유산청은 추정했다.

국가유산청은 “당시 신라가 남해 지역으로 진출해 방어체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과 그 시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국가유산청은 “11월 11일 사적 지정 기념행사는 사적 가치를 지역 주민에게 널리 알리고, 유산의 보존·관리와 활용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마련했다”며 “수정산성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거제시와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봉화 기자

거제수정산성 전경. /국가유산청
거제수정산성 전경.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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