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범위 확대, 파업노동자 손배 청구 제한
배달호 열사, 쌍용차와 한화오션 하청노조 점화
재계, 파업 빈번화 우려에 노동계 “오히려 줄 것”
제도 명문화 그쳐선 안 되고 실질적 현장 변화 필요
“교섭창구 단일화 등으로 유명무실화 경계해야”
배달호 열사, 쌍용자동차,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
노동계는 20년 염원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국회 통과에 올바른 노사 문화 정착을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특수고용직 노동자 추정 조항’ 등 추후 제도 보완 필요성도 강조했다.
◇노동계 20년 넘게 이어온 염원 = 2002년 배달호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노동자는 65억 원 손배소, 임금 53억 원 가압류 등 노조 탄압에 저항하다 이듬해 1월 분신 사망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파업 투쟁 이후 100억 원 손배소에 시달렸다. 법원이 청구를 인용하면서 노동자들은 생존권과 노동 3권을 침해당했다. 이에 시민들이 노동자들을 돕고자 노란봉투에 돈을 담아 보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이때부터 노란봉투법으로 불리게 됐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도 2022년 51일간 파업 이후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470억 원 손배소를 당했다. 이 소송은 현재 취하 수순을 밟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노동자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 노동자에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 내용은 △사용자 정의 확대 △노동쟁의 대상 확대 △손해배상 청구 제한 △노동조합 정의 확대 등이다.
사용자는 기존 ‘사업주, 경영 담당자, 근로자를 위해 행위하는 자’에서 ‘노동자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모두 사용자’로 확대됐다. 원청이 하청에 직접적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게 돼 원하청이 상호 교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사용자가 정리해고, 사업부 매각, 인수합병 등을 했을 때 노조에서 노동쟁의를 하면 쟁의행위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번 법안 통과로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된다.
노동자 쟁의행위에 사용자의 손배 청구 실효성도 약화한다. 이에 이전과 같은 ‘손해배상 폭탄’에 따른 노조 활동 위축은 덜 수 있게 됐다.
조선하청지회는 노란봉투법 통과 직후 성명을 내고 “무법천지 조선소에서 포기하지 않고 노동조합이라는 희망을 일궈온 조합원들과 누구보다 먼저 이 소식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온전한 노동삼권 여전한 과제 = 재계를 비롯한 보수 진영은 노란봉투법에 크게 저항해왔다. 재계는 노사 갈등 조장, 파업 빈번 발생으로 기업 국내 철수 우려 등을 거론했다. 노동계는 과한 해석이라며 오히려 노사 갈등 없이 대화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반박했다.
심상완 국립창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노란봉투법 통과는 헌법상으로 이미 선언돼있던 노동자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정상화 과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청은 그간 하청 노동자와 교섭할 의무가 없다며 교섭을 미뤘고, 그 이유로 오히려 노사 갈등을 키웠다”며 “원청과 하청은 이번에 새롭게 마련된 제도로 교섭을 통해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종철 공공운수노조 경남지역본부 조직국장은 “사실상 국내 하청노조 조직률이 굉장히 낮아 실제로 원청-하청 교섭을 적용할 수 있는 조직은 많지 않다”며 “원청은 국내 철수설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이제는 사용자답게 교섭에 응하면서 노동 조건 개선에 역할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통과에 환영하면서도 명문화된 제도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제도 변화가 노동 현장에 실질적 개선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심 교수는 “제도가 사용자의 하청 노동자 사용자성을 강조한 만큼, 원청은 하청 노동자를 관리하는 주체라는 의식 속에서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야 한다”며 “노동자 또한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경영 여건 등을 의식하면서 서로 상생할 수 있도록 건강한 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은 이번 노란봉투법에 ‘특수고용직 노동자 추정 조항’을 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한 사업장에 정규직·하청 노조 등이 따로 있는 경우, 노란봉투법을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복수노조 사업장 내 교섭 단일화라는 기존 제도 탓에 하청 노조의 실질적 교섭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배 조직국장은 “통과된 노란봉투법 내용을 보면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내용이 빠졌기에 앞으로 법 보완 등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하청노조와 교섭을 유명무실로 만들 수 있다는 허점도 있다”며 “이를 개선하려면 기업별 교섭이 아닌 산업·업종별로 교섭 범위를 확대해 모든 노동자에 일괄적인 단협을 제공하는 등의 교섭 형태로 개선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선하청지회는 “노동자 정의가 확대되지 않아 수많은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삼권은 계속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며 “헌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부여한 노동삼권을 현장에서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노동조합법 개정 싸움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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