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내란 수괴 옹호 발언에 한숨만
민주주의 억압에 저항한 야성 잊었나
취재 때문에 만난 어르신은 기자 초년생에게 대뜸 출신부터 물었다.
"부산입니다. 마산은 입사하면서 처음 왔습니다."
바로 '전국 7대 도시' 예찬이 시작됐다. 연말 창동 인파, 자유무역지역 호황 등 다른 어르신에게도 이미 들었던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살면서 수없이 반복했을 같은 이야기는 막히는 대목이 없었다. 대한민국 제2도시 출신에게 7대가 어떤 의미인지 같은 문제는 아주 사소했다.
말투 중간에 얼추 마무리에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듣는 쪽에서 반기고 말하는 쪽에서는 불안한 그 지점에서 어르신은 기어이 한 가지 자랑을 짜냈다. 3.15 의거! 지역 사랑이 애틋한 어르신이 빼놓을 수 없는 마지막 자산은 '3.15 정신', '민주성지 마산'이었다. 벌써 20여 년 전 기억이다.
3.15-4.19-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역사는 대한민국 것이면서 마산 것이기도 하다. "마산이 일어나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말은 과장이면서 사실이다. 은은하게 깔린 정서는 1970·1980년대 민주주의를 짓누르려는 세력에 저항하는 야성을 벼린 저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하면서 이 도시는 일어나는 법을 잊은 듯하다. 마산은 어떤 정치적 변수에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등 국민의힘 계열 정당을 지지했다. 12.3 내란 이후 첫 선거인 4.2재보궐선거에서도 그랬다.
국민의힘 이장우 전 도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도의원직을 잃으면서 마산회원구에 해당하는 창원12선거구 도의원을 다시 뽑게 됐다. 원인을 제공한 도의원 소속도,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 소속도 국민의힘이다. 선거 결과는 국민의힘 정희성 후보가 67.32%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박현주 후보(32.67%)를 누르고 당선됐다.
2022년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마산회원구에서 62.34%, 마산합포구에서 64.69% 득표율을 기록했다. 창원 성산(55.28%), 창원 의창(58.55%), 진해(56.28%)와 비교해도 마산은 유난하다. 수치만 놓고 보면 마산회원구 유권자는 12.3 내란 이후 국민의힘을 더 지지했다. 다른 지역이 일어나도 마산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3.15 정신, 민주성지 마산 결기는 기이한 방식으로 터져 나온다. 최근 3.15의거 이름을 내건 관련 단체 인사들 발언은 가관이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내란이니 뭐니 하면서 파면할 일이 아니었다. 경제가 잘될 수 있도록 대통령을 풀어주는 게 맞았다."(오무선 3.15의거희생자유족회장)
"대통령이 자기 이익을 생각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파면 자체는 잘못됐다. 너무 법적으로 제재하기보다 한 걸음 양보했다면 좋았을 것이다."(김영달 3.15의거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
"계엄령 선포에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잘했다고 본다. 의회 독재가 잘못인데 파면 결정을 내리다니 헌법재판소는 빨갱이 집단이다."(변승기 3.15의거부상자회장)
"대통령이 집권 기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굉장히 애를 많이 썼다. 국가원수로서 계엄령을 충분히 내릴 수도 있는 건데 그걸로 내란이다, 파면이다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이우태 3.15의거학생동지회장)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말한다. 안녕 3.15, 안녕 마산.
/이승환 자치행정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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