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 중태리·외공리 산불 피해 커
주택 감나무밭 양봉장 등 소실
주민들 "먹고 살 길 없어 막막"
“삶의 터전이 다 타버렸다. 곧 농번기인데 새까맣게 탄 집, 감나무밭, 지리산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산청군 시천면 중태리에서 감 농사·양봉을 하는 김병욱(65) 씨는 그을린 산을 응시한 채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21일 산청군 시천면 야산에서 발생한 불이 대형산불로 번지면서 특히 중태마을·외공마을은 큰 피해를 봤다. 집이 불탄 주민들은 당장 지낼 곳뿐만 아니라 먹고 살 걱정에 암담해하고 있다.
◇집·농장 모두 잃고 망연자실 = 김 씨는 급박했던 21일 오후를 떠올렸다. 연기와 함께 벌건 산불이 비탈을 타고 중태마을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경찰·소방이 대피해야 한다고 다그치자 김 씨는 몸만 나와 대피소로 향했다. 한시간 후 김 씨는 다시 집에 돌아왔지만 집은 전소돼 반쯤 쓰러져 있었다. 김 씨는 주거뿐만 아니라 생업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김 씨는 “집이 전소된 것도 문제지만, 감나무 밭과 양봉장 전소로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며 “감나무 밭과 양봉장에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는데, 대피소에서 거리가 멀어 상당히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집에서 이재민 대피소가 있는 단성중학교는 차량으로 30여 분 거리인 17㎞ 떨어져 있다. 기상 상황에 따라 수시로 관리해야 하는 김 씨는 대피소 생활을 할 수 없자 하는 수 없이 불타지 않은 동네 주민 집에 얹혀 지내며 감나무밭과 양봉장을 수습하고 있다.
김 씨는 “양봉장에 있던 벌통은 120통에서 15통가량 줄었다. 집 뒤 감나무 밭도 전부 그을려 피해가 막심하다”며 “주민들이 생업에 다시 종사할 수 있게, 불 탄 집을 얼른 치워주고 컨테이너라도 넣어달라”고 하소연했다.
중태리 주민 정문영(67) 씨는 밭에서 검게 그을린 감나무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집이나 자재 창고를 잃은 주민에 비할 바 아니나 생계 수단인 감나무가 30% 탔다”며 “그을린 자국이 없어도 새순이 올라오지 않으면 과실을 맺지 못할 텐데 올해 농사가 심히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정 씨는 “밑동만 남기고 벤 감나무는 과실을 맺을 때까지 4~5년이 걸린다”며 “산청·하동 일대에서 감나무 농사를 안 짓는 사람이 없는데, 감나무 밭이 이 모양이 되면 우린 뭘 먹고살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산불이 마을을 덮치기 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대피소로 향했다. 낯선 환경에 치매 기운이 있는 아버지는 ‘날 어디로 데려온 거냐’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대피소에서 숙식은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아픈 아버지를 돌볼 간호 체계까지는 마련돼 있지 않다. 결국 정 씨는 감나무 밭을 챙기고 아버지를 집에서 보살피고자 화마가 덮친 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정신적인 충격을 입은 주민들이 어떻게 이 동네에서 다시 살아갈지 걱정된다“며 “터전을 잃은 이들을 세세히 지원하지 않으면 산불 현장을 벗어나 이주할 테고, 중태마을은 산불에 삼켜진 유령마을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상 복귀 대책 절실 = 시천면 외공마을은 입구부터 진한 탄내가 진동했다. 비탈을 올라가니 자원봉사자들이 엉망이 된 마을을 정돈하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지내다 집으로 막 돌아온 이윤정(84) 씨와 장명수(77) 씨가 형체 없이 타버린 이웃집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이 씨는 “집이 불탄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마을로 복귀했는데 동네가 엉망이다. 정성껏 가꾼 밭도 까맣게 탔는데 앞으로 뭐 해먹고 살려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오전부터 단성중학교에 있던 이재민 중 집이 그나마 괜찮은 이들은 동네로, 집이 불 타 오갈 데 없는 이들은 선비문화연구원으로 흩어졌다.
이 씨는 “뒷산에 고사리 밭이 하나 있었는데 오늘 가서 보니 홀랑 다 타버렸더라”며 “가축을 기르거나 과수원을 하는 사람들은 피해가 크다”고 전했다.
장 씨는 마을에서 흑염소를 기르고 있다. 다행히 집과 흑염소 축사는 무사했다. 장 씨는 흑염소 축사 옆 잿더미가 된 산림을 가리키며 “동네 사람들은 착한 일 해서 천운이 따른 거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며 “축사가 불타고 흑염소까지 폐사했으면 살아갈 길이 막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30일 오후 산청군 시천면 산불통합지휘본부에서 산불 피해 3면 주민에 긴급재난지원금 3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총 30억 원 도비가 투입되며 지원 대상은 주민 1만여 명이다.
주택 피해 가구에는 한국선비문화연구원과 임시조립주택을 통해 임시 주거지를 제공한다.
생계유지가 어려운 가구에는 정부의 긴급복지지원과 경남도의 희망지원금을 통해 생계비, 의료비, 주거비, 난방비 등을 차등 지원한다.
/안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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