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용소방대, 생업 미루고 진화 힘 보태
적십자사 등 단체, 이재민 음식 제공 등 역할
이웃 지자체·금융기관 등 온정의 손길 이어져
"산불을 끄는 데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우리 고향 마을은 우리가 열심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빨리 끝나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이준호 하동군 옥종면 의용소방대원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이 씨가 진화작업을 한 지 벌써 나흘째다. 첫날 두방마을에서 시작한 작업은 날마다 장소가 바뀌면서 25일에는 차량으로 15㎞ 정도 거리의 위태마을로 왔다. 내일은 또 어디로 산불이 번질지 몰라 노심초사다.
이 씨는 "불을 끈 곳도 잔불 정리를 철저히 해야 강풍이 불어도 다시 불이 살아나지 않는다"면서 "봄바람이 이렇게 야속할 수 없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라고 하소연했다.
의용소방대는 소방관이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돼 소방관서 업무를 보조하는 조직이다. 30명으로 구성된 옥종면 의용소방대는 자체적으로 구입한 소방차(트럭에 물탱크를 실어 개조)로 매일 불을 끄고 있다. 생업도 뒤로 미루고 진화에 구슬땀을 흘린다.
이 씨는 "어젯밤에는 갑자기 마을 축사 뒤까지 불길이 번져 밤낮으로 긴장상태가 이어져서 쉴 틈이 없는 지경"이라며 "대원들이 나흘째 경사가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고 피곤이 쌓여 점점 지쳐가고 있다. 비 예보가 있는 목요일 비가 많이 내리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옥종사랑후원회 회원 120여 명은 이재민 식사를 준비한다. 대피소 인근 식당에서 끼니마다 밥과 반찬, 국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50대 한 회원은 "이재민 대부분이 어르신이라 마음이 많이 아프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많은데 따뜻한 식사라도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정성으로 밥을 짓고 있다"면서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식사를 남기는 분들을 보면 내 부모님 같아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산불 피해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8곳에 마련된 하동군 옥종면 대피소에는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구호 물품 정리와 전달 등 역할을 한다.
산불이 시작된 산청군 시천면에는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가 긴급재난구호대책본부를 마련해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1일부터 직원과 봉사원 등 200여 명이 파견돼 이동급식 차량을 운영하면서 이재민을 돕고 있다.
50대 봉사자는 "무서운 산불을 끄느라 위험한 곳에서 애쓰는 진화대원을 생각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힘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역 단체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산청군 자율방범대 회원들은 피해 현장 주요 도로 교차로에서 원활한 차량흐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지역 부녀회원들은 진화 작업에 지친 소방대원들의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고 제공한다. 또 이재민들의 옷 세탁을 돕고, 건강 상태를 살피면서 말벗이 되어 준다. 청년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는 화마가 지나간 마을을 찾아 이재민들의 망가진 생활 터전을 복구하는 데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산청군 관계자는 "우리 지역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방법이 무엇인지,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전화가 많이 온다"며 "목요일 비가 오면 산불이 꺼진다는 생각에 이번 주말에 복구를 도우러 오겠다는 기업의 문의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웃 진주시는 광역진화대 1개조와 대규모 자원봉사단을 산청군에 보냈다. 대한적십자봉사회 진주시협의회는 단성중학교 등 대피소에서 음식 제공을 도왔고, 진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도 대피소 일에 힘을 보탰다.
온정의 손길도 이어져 창원시는 2000만 원 상당의 이재민 구호물품을 산청군에 전달했다. 진주시도 빵과 컵라면, 음료 등을 지원했다. BNK경남은행은 50여 명의 임직원이 대피소를 찾아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재난 대응작업을 하는 직원들에게 식사를 지원했다. 경남농협도 산청과 하동, 김해 등 도내 산불 피해지역을 찾아 구호물품 500여 상자를 지원했다. 유통·식품업계도 식음료와 성금을 맡기며 빠른 피해복구를 기원했다.
/이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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