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지만 잘 모르는 자영업이야기] (2) 81년생 자영업자 김지영
목돈 아니어도 살림 보탬 되려
음식 솜씨만 믿고 2년 전 개업
인건비 월세 등 만만치 않은데
매출은 생각만큼 오르지 않아
온라인 광고했지만 효과 미미
큰 마음 먹고 9월 업종 전환도
"장사 시작하니 접기 쉽지 않아
남편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해"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1982년생 평범한 여성의 삶에 담긴 성차별의 상흔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에 또 한 명의 김지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보단 한 살 많은 81년생 김지영은 2년 차 자영업자다. 영화에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당신과 나의 이야기'라는 카피가 등장한다. 81년생 김지영을 통해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자영업자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1981년생 닭띠 김지영(44) 씨는 자영업자 2년 차다.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서 '어맘포차'라는 가게를 하고 있다. 밥도 먹고 술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그녀는 어릴 적 창원으로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간호사를 시작했다. 부산과 김해, 창원의 병원에서 주로 근무했다. 지영 씨는 "어릴 적 꿈이 간호사였는데 일이 좋았다. 딸아이를 놓고 1년 쉰 거 빼고는 18년 넘게 간호사로 살아왔다"고 했다. 병원 일이 적성에는 맞았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주로 수술실 근무가 많았는데 아픈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같이 우울해지는 날도 많았다. 마흔 살이 넘어서부터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꿈도 소박했다. 큰돈을 투자해 목돈을 벌겠다는 목표는 애초에 없었다. 그냥 열심히 일한 만큼 벌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정도였다.
평소에 '튀김이나 전 가게를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했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술상을 거하게 차려낼 정도로 음식에 일가견도 있었다. 자신의 장기만 믿고 음식 장사를 해보기로 했다. 2022년 연말쯤이었다. 지인이 소개한 자리는 식자재 유통용 냉동창고였다. 인근에 짬뽕으로 유명한 가게도 있고 해서 목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월세도 60만 원으로 비싸지 않았다.
2023년 2월에 계약을 했다. 식당을 하기에는 깡통 같은 건물이었다. 철거와 리모델링에만 5000만 원 가까이 들었다. 2월 17일 오픈했다. 가게 이름은 '어맘'으로 지영 씨가 직접 지었다. 엄마라는 느낌이 들고 싶어 비슷한 어감으로 지었다. 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다행히 손님들은 대부분 '엄마 마음'으로 이해해줬다. 메뉴는 김밥과 라면 등 분식 위주였다. 재료 손질부터 손이 많이 가는 업종 특성상 직원도 1명 고용했다. 인건비만 270만 원을 줬다.
오전 8시 출근해서 준비했다. 9시 30분부터 열려면 이 시간도 빠듯했다. 브레이크타임(오후 3~5시)에 직원은 쉬었지만, 사장인 그는 쉬지 못했다.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고 싶은 욕심에 문을 닫지 못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맛있다'고 했지만, 매출은 늘지 않았다. 홍보가 덜 돼서 그렇다 싶어 네이버플레이스나 배달의 민족에 수십만 원을 들여 광고를 노출했지만, 기대만큼 효과는 없었다. 배민에 깃발도 5개까지 꽂아봤다. 깃발(광고)은 1개당 월 8만 8000원(부가세 포함)을 내면 소비자에게 가게가 노출되는 방식이다. 돈을 많이 내면 낼수록 노출 지역이 넓어진다. 지영 씨는 "40만~50만 원을 들여 온라인 광고를 냈지만, 분식은 워낙 가게가 많아 변별력이 없었다. 다른 곳도 그 정도 광고는 하기에 특별히 우리 가게가 주목받진 못했다"고 했다.
호기 있게 덤볐지만 자영업은 만만하지 않았다. 인건비에 월세, 각종 요금 등 고정 지출이 생각보다 많았다. 수입이 늘지 않으면서 수지타산이 안 맞는 달이 늘었다.하루 매출이 10만 원일 때도 있었다. 차라리 직원이랑 함께 내가 쉬는 게 나았다. 그렇지만, 손님을 기다리는 게 일인데, 문을 닫기는 더욱 겁이 났다. 그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수만 번은 한 거 같다. 하지만, 막상 장사를 시작하고 보니 놓기도 쉽지 않더라. 장사를 안 해도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이 있어 하루라도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연간 단위로 계약한 포스(결제 및 매출 관리 시스템) 임차료, 인터넷(tv), 정수기 이용료도 합치면 10만 원 남짓이지만 장사가 잘되지 않는 달엔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꼬박 1년 4개월이 지났다. 아니 버텼다. 손에 든 건 직장 다닐 때보다 적었다. 괜히 미안해졌다. 가게를 반대했던 남편에게도, 식당을 핑계로 버려두다시피한 아이들에게도 죄인이 된 거 같았다. 그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니 염증이 느껴졌어요. 고생해서 돈을 벌어 신발이라도 한 번 사고 해야 흥이 나잖아요, 직장 다닐 땐 월급날이면 애들 데리고 외식도 하고 백화점도 갔는데, 장사를 시작하고는 카드 값 나가는 날이 공포스러웠다"고 했다.
주위에선 '처음부터 흥한 가게는 없다. 욕심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해봐라'고 조언했다. 맞은편 맛집 사장님도 '우리도 2년간은 월세며, 음식자잿값이 밀린 적이 있다'고 했다. 진심 어린 충고였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동산을 찾아가 가게를 내놓았다. 거기서 주류를 팔 수 있는 상가주택으로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맘때쯤 맘 카페에 가게가 '맛집'으로 올라와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 다시 고민에 빠졌다. 며칠 생각하다 세무서에 용도 변경을 신청해 주류를 팔 수 있는 포차로 업종을 바꿨다. 올해 7~8월 두 달간 쉬면서 배달 전문 가게와 중앙동 이름난 포차에서 아름 요리를 배웠다. 9월 '어맘포차'를 시작했다. 3일과 8일 진해 경화시장, 4일과 9일에는 창원 상남시장에서 재료 준비를 한다. 마트보다는 싱싱하고 가격도 싸기 때문이다.
손님으로 왔다 친해진 분이 아르바이트를 해주기로 했다. 시급 1만 원이라 이전보다 인건비도 확실히 줄였다. 술을 팔기 시작하면서 매출은 이전보다 확실히 늘었다. 배달앱 광고 대신 그 비용을 손님들에게 음식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안주 2개를 시키면 양을 더 주거나 다른 음식을 서비스하는 식이다.
그동안 명함을 받은 손님 100명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문자를 보내 '이달의 메뉴'를 홍보한다. '생고기 김치전골,얼큰한 알탕 준비됩니다' 이런 식이다. 이걸 보고 손님들이 예약하는 비율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지영 씨는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12월 초 매장 가득 손님이 들어찬 모습이었다. 한 운동모임에서 단체 회식을 했는데, 37명이 왔다고 자랑했다. 가게 문을 연 이후 최다 인원 신기록이었다.
인터뷰는 2024년 12월 24일 진행했다. 지영 씨는 25일 아이들과 몇 년 만에 가족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다. "내가 쉴 팔자가 아닌데, 못 간다고 하면 애들 원성을 감당하지 못할 거 같아 어쩔 수 없이 가기로 했어요. 1월에는 진짜 열심히 해야죠"
여행을 앞둔 설렘은커녕 문을 닫았는데 찾아올 손님 걱정에 웃지 못하는 자영업자의 민낯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주찬우 기자 joo@idomin.com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