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클래식 이야기 <거미집>
영화 '거미집' (2023)
주연: 송강호
마음에 드는 대사가 있어 먼저 소개한다.
"평론은 창작에 실패한 인간들의 복수야."
통쾌한 대사다. 이런저런 평들을 잔소리처럼 늘어놓으며 작품성뿐 아니라 흥행마저 좌지우지하는 평론가라는 작자들에게 영화의 대사로 한 방 먹일 요량이었다면 제대로다. '깊이가 없다'는 한마디로 장래가 유망한 예술가의 목숨마저도 빼앗는 이들이 평론가다.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더 콘서트>, <위대한 쇼맨> 등 예술가가 주인공인 영화 속 등장하는 평론가들은 대체로 빌런이며 나중에야 감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포장해 준다. 영화 <거미집>은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하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테고 이러한 대사가 들어간 걸 보아 어지간히 당했었나 보다. 어쩌다 이리되었을까 묻는다면 영화의 대사처럼 복수하는 평론가의 탓으로 돌리겠다.
"그냥 하던 거 하세요."
예술을 지향하고픈 영화감독에게 이처럼 모욕적인 말이 있을까? 영화를 다시 찍겠다는 김 감독에게 던진 백 회장의 말이다. 이미 다 찍어 놓은 영화의 장면들이 며칠째 꿈속에 나타나며 김 감독을 괴롭힌다. 데뷔작의 성공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어놓지 못한 그이다. 하니 걸작을 위하여 다시 촬영하겠다는 말이 미더울 수 없고 배우들의 스케줄 조정, 검열 등 거쳐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으니 제작자인 백 회장으로서는 당연히 뱉을 만한 말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포기할 수 없다. 꿈속의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여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탄생',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모멸감을 지울 수 있으니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절실했고 그런 그의 열정에 감정이 동한 미도(제작사의 후계자)의 도움으로 결국 재촬영이 시작된다.
"다 찍은 영화를 왜 다시 찍는데?"
다시 불려 온 배우들은 불만이다. 검열 담당자는 술에 취해 잠이 들었고 대본은 방금 주어졌으며 어느 배역은 촬영 거부로 김 감독이 대신 역할을 맡았다. 이렇듯 모든 것이 뒤죽박죽. 하지만, 촬영을 멈출 수는 없다. 걸작이 탄생한다지 않는가.
모든 일이 엉망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김 감독은 지쳤고 회의감에 빠졌다. '과연 걸작이 탄생할까, 아니 내가 그런 걸 만들 재능은 있는가.' 그러던 중 신 감독이 환영으로 등장해 말을 건넨다. 자신의 멘토였던 영화감독이 건네는 예술을 향한 열정에 대한 찬사요 이를 지키라는 격려다. 이처럼 현실인지도 모호한 장면, 애절한 가락이 흘러 장면의 몽환을 더한다. 왠지 김 감독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구슬픈 선율. 바로 이탈리아의 작곡가 '푸치니'(Giacomo Puccini·1858~1924)가 남긴 대표작, 오페라 <나비 부인>(Madama Butterfly) 중 2막과 3막을 이어주던 '입을 닫고 부르는 합창'(Coro a bocca chiusa), 소위 '허밍 코러스'다.
오페라의 배경인 일본의 나가사키에는 귀화한 스코틀랜드인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 그리고 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어느 여인의 동상이 있어 일본 전통 의상에다 한 아이를 데린 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섰다. 바로 비극의 주인공 '초초'상으로 분한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다. 과거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임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개항의 중심이 나가사키였으며 새로운 문명과의 교류는 발전을 불러왔다. 하지만, 문제 또한 생기기 마련, 점령자 마인드를 지닌 이들이 현지 여인들을 농락했다. 매춘은 물론이거니와 거짓 결혼까지.
1900년의 어느 날, 오페라 상연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푸치니는 연극으로 <나비부인>을 접한다. 미국의 작가 '존 롱'의 소설을 바탕으로 '벨라스코'가 희곡으로 옮긴 것으로 당시 꽤 인기가 높았다. 연극이 끝나자 푸치니는 서둘러 벨라스코를 찾았다. 대본을 중요시하며 흥행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이 연극을 오페라로 만든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대본은 '주세페 자코사'와 '루이지 일리카'에게 맡겼다. 이전의 성공작들을 이끌어 낸 주역들이었다.
1막
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일본식 집이 분주하다. 미군의 해군 장교 핑커턴과 초초상의 결혼식. 무도가였던 아버지의 할복으로 가문이 몰락한 초초상은 게이샤가 되었고 이 결혼에 진지하다. 반면 핑커턴에게는 한낱 스쳐가는 인연일 뿐 '우리 양키는 온 세상을 누비며 이윤과 쾌락을 취하지. 어디든 마음 내키는 대로 닻을 내린다네'라며 볼썽사나운 노래를 부른다. 이 여인을 사랑하며 뿌리를 내릴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초초상은 그저 그의 사랑을 갈구하여 개종마저 해 친척들의 반감을 산다. 이 일로 결혼식은 엉망이 되었고 슬픈 초초상을 위로하며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지만 다가올 비극이 그려질 뿐이다.
2막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날마다 기다리지만 돌아오겠단 약속을 남기고 본국으로 돌아간 남편은 소식이 없다. 하녀 스즈키는 '외국인 남편이 돌아온 경우를 본 적이 없다'며 단념하라 권하지만 반드시 돌아오리란 초초상의 믿음을 꺾지 못한다. 이때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유명한 '어느 갠 날'(Un bel di vedremo)이다.
"어느 갠 날에 수평선 너머로 한 줄기 연기가 솟고 배가 나타나겠지… 나는 그를 맞으러 가지 않을 거야. 저쪽 언덕 끝에서 기다려야지.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힘들지 않아…저기쯤 멀리서 그가 '나비 부인'하고 부르겠지.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을 거야. 짓궂은 장난이지…나는 그렇게 믿고 기다리겠어."
그러던 어느 날, 핑커턴이 탄 군함이 항구에 도착한다. 이미 다른 여인과 결혼했다는 소식도 전해지지 못했고 뚜쟁이가 데려온 남자의 청혼도 '어떻게 결혼한 여자에게 청혼을 하느냐'며 거절한 후이다. 감격에 겨운 초초는 집안을 꽃으로 꾸며('꽃의 이중창', 손안에 가득히(Gettiamo a mani)) 밤이 깊도록 기다린다.
이처럼 애절한 장면에서 흐르는 곡이 바로 영화에 등장한 '허밍 코러스'로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을 간절히 바라는 자의 가여움이 선율에 담겼다. 초초상의 기다림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그녀를 향한 핑커턴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으니 어찌 가진단 말인가? 김 감독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쥐려 하니 막연하고 처량하다. 그에게 걸작이란 없다. 열정에 미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능이다. 첫 작품의 성공도 훔쳐 가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빚은 자괴감이 거미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헤어날 수 없는 집착이란 거미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3막
초초가 잠시 눈을 붙인 사이 핑커턴과 그의 미국인 아내 케이트가 아이를 데려가려 한다. 핑커턴은 꽃으로 가득한 집을 살피다 그녀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확인, 죄책감에 숨어버리고 케이트는 초초에게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사랑도 부질없어졌고 사랑하는 아이마저 떠나보내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초초상은 30분 후 핑커턴이 직접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라고 한다. 그리고 그사이, 초초는 세상을 내려놓는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아이의 눈을 가린 채였다. 핑커턴이 돌아와 '버터플라이'를 절규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은 후다.
/심광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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