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곁 떠났으나 혼선 '미미'
일부 병원 수술 일정 뒤로 미뤄
환자들 '사직' 의료진에 불만 토로
"제 밥그릇 챙기기 멈춰야" 비판도
병원들 비상 근무체계 돌입
도 24시간 응급상황실 운영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고 환자 곁을 떠난 첫날, 경남 도내 주요 진료 현장에서는 다행히 큰 혼란이 빚어지지 않았다.
20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성창원병원에서는 오전 9시 기준 전공의 99명 가운데 71명이 사직서를 내고 대부분 출근하지 않았다. 이 여파로 흉부외과 등 환자 2명이 수술을 받지 못했다. 수술 일정은 집단 이탈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무기한 연기됐다. 그 외 진료 지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오전 내과 진료차 삼성창원병원을 찾은 남준호(63·창원시 의창구) 씨는 “평소와 비교하면 다행히 진료가 늦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걸 잘 알면서도 의사들이 사직서를 낸 상황이니 좋게 보이지 않는다”며 “의사들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고 사직서를 낸 만큼 그 책임을 물어 사직서를 낸 사람들의 의사 면허를 반드시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안군 군북면에서 온 한 환자(65)는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멀리 오가는 것도 힘들어서 지역 병원을 찾고 있는데 의사들이 병원에 없어 불만스럽다”며 “자꾸 폐에 염증이 생겨 암이 있는지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오늘 와서 보니 암 진단검사 예약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앞서 병명도 안 나오고 치료할 약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상황이 장기화해서 검진을 아예 못 받게 될까 봐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삼성창원병원과 마찬가지로 도내 주요 병원 전공의 상당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다행히 큰 차질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95.1%)·진주 경상국립대병원(82.9%)·창원경상국립대병원(59.0%)·창원파티마병원(75.9%)은 병원별로 최소 절반 이상 전공의가 출근하지 않았으나 수술 일정이 미뤄진 사례는 없었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전체 전공의 163명 가운데 156명이 사직서를 내고 이날 오전 6시부터 대부분 근무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남에서 전공의 수가 가장 많은 양산부산대병원은 95%에 달하는 전공의가 집단 사직했지만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외래진료 창구에는 환자들이 북적거렸고 수술실 역시 큰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응급실에서도 큰 혼란은 없었다.
환자들은 전공의 집단행동에 우려를 나타냈다.
창원경상국립대병원에서 신장 투석 치료를 받는 김효진(54·김해시) 씨는 “CT(컴퓨터단층촬영) 찍고 혈액 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는데 진료 일정은 미뤄진 게 없다”면서 “정부와 의사들이 자기 손익 관계를 따지다가 우리 같은 환자들에게 피해가 생길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도를 개선해야 해결되는 것인데, 서로 일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장모의 건강검진차 병원을 찾은 이영진(40·진주시) 씨는 “자기 편의를 위한 집단행동은 국민의 생명을 가지고 조롱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종양내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온 정점순(50·창원시 성산구) 씨는 “환자를 볼모로 삼는 것은 상식 밖이고, 의사 의무를 저버리는 행동”이라며 “나 같은 중증 환자는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다”라고 토로했다.
비상 상황에 돌입한 주요 병원들은 중증 환자, 응급 환자를 중심으로 24시간 진료 기능을 유지하는 대책을 구축해 대응 중이다.
진주 경상국립대병원 측은 “응급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24시간 진료 기능 유지를 위한 비상진료대책을 마련해 대응하고 있으며, 수술 연기와 입원일 조정, 외래진료 변경 등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산부산대병원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중증·응급 환자 위주로 의료진을 배치하고, 경증 환자는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받도록 안내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또한 의료진 부족에 대비해 비상대응편성반을 운영하고 예약·수술 환자 일정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경남도, 양산시와 함께 이날 양산부산대병원 현장조사에 나서 사직서 제출 현황과 출근 여부 등을 파악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전공의 복귀 여부도 확인했다. 이 가운데 일부 전공의는 현장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도는 응급의료상황실을 24시간 운영하며 다른 권역 응급의료기관, 국방부 소속 공공의료기관과 협력해 응급환자 병원 선정과 전원 조정에 차질이 없도록 도내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도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오늘은 의료공백 문제가 보고된 사례가 없지만, 문제가 없도록 지속해서 대응할 계획”이라며 “병원 사정을 살펴 경증 환자는 중소병원으로, 중증 환자는 상급 병원으로 가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최석환 정종엽 김종현 이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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