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촌면 등 4곳 천연기념물 지정
2곳은 지질유산 관리 1등급
보존 방식 놓고 지역사회 시끌
관리 소홀 탓 도굴·침식 현상도
보존·관리·활용 수장시설 절실
국립지질유산센터 건립 등 주목
최근 몇 년 사이 진주와 사천 등 경남 서부지역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특히 2019년 진주시 뿌리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세계 최다 육식공룡 발자국을 비롯해 1만여 개의 중생대 백악기 발자국 화석이 잘 보존된 상태로 발굴돼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남해, 하동, 고성, 함안 지역에도 공룡과 새 등 대규모 화석산지가 존재한다.
이에 이들 화석산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경남도민일보>는 이번 총 8회에 걸친 기획을 통해 이들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 화석 중요성과 현황, 유럽 대표적인 공룡 화석산지인 독일의 선진적 관리와 관광자원화 등을 살펴보고 국가지질공원 지정 추진에 따른 관광자원화를 제안하려고 한다.
2009년 시작된 진주혁신도시 공사 현장. 여기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은 2500여 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규모를 자랑한다. 진주는 중생대 백악기 '익룡의 땅'으로 불린다. 이 일대는 약 1억 1000만 년 전 호수 가장자리 환경에서 퇴적된 층으로 해석된다. 물가 주변에 서식하는 익룡뿐만 아니라 새·공룡 발자국, 희귀한 도마뱀과 세계에서 가장 작은 랩터, 캥거루쥐와 악어 발자국까지 함께 발견됐다.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10월 14일 천연기념물 제534호 '진주 충무공동 익룡·새·공룡발자국 화석산지'로 지정됐다.
이어 수많은 생명 흔적이 화석으로 잘 남아 있는 실제 화석산지에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이 건립돼 2019년 11월 정식 개관했다. 발굴된 화석들이 전시된 2개 전시실과 수장고, 현장 그대로 보존한 2개 보호각이 만들어졌다.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나라 진주 = 현재 진주시에는 충무공동 익룡·새·공룡발자국 화석산지를 비롯해 정촌면 백악기 공룡·익룡발자국 화석산지와 가진리 새발자국과 공룡발자국 화석산지, 유수리 백악기 하성퇴적층 등 4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정촌 화석산지는 육식공룡 발자국, 충무공동은 익룡 발자국, 가진리는 새 발자국 화석이 각각 세계 최다로 산출된 곳이다. 유수리에서는 조개 화석과 100여 점의 공룡 뼈가 국내 최다로 출토됐다.
이 밖에 집현면 신당리 도로공사 현장, 정촌면 국가항공산업단지 조성공사 현장에서도 잇따라 화석산지가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진주는 중생대 백악기 지층이 고루 분포하고 있어 많은 화석이 발견되고 앞으로도 발견될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진주지역은 대규모 화석산지를 뜻하는 독일어 '라거슈타테'로 학계에서 평가받는다. 특히 천연기념물 4곳 중 2곳(정촌면, 유수리)은 세계급 보호 대상인 지질유산관리 1등급이다.
2019년 9월 진주교육대학교 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소장 과학교육과 김경수 교수)는 진주혁신도시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 백악기 도마뱀 발자국 화석에 대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 자매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했다.
당시 이 연구는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마틴 로클리(Martin Lockley) 교수, 스페인 아스트리아주 쥐라기 박물관 라우라 피누엘라(Laura Pinuela) 박사 등 세계적인 화석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로 수행됐다.
김경수 교수는 "이번 발견으로 진주층에서 발견된 백악기 척추동물 발자국은 익룡·새·공룡·포유류·거북·악어·개구리에 이어서 도마뱀류가 추가됐고, 이는 진주층이 백악기에 살았던 척추동물 다양성을 보여주는 매우 훌륭한 지질학적 창(geological window)이자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한 발자국 화석을 품은 라거슈타테임을 입증한 것에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보존 위태로운 진주 화석산지 = 문화재청은 정촌면 화석산지를 '단일 지역에서 공룡과 익룡 발자국 화석을 비롯해 다양한 척추동물 발자국 화석이 밀집돼 산출된 드문 사례로, 우리나라 백악기 척추동물 발자국 화석을 대표할 만한 산지'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2017년 11월 발견된 후 2019년 8월 현지 보존이 결정되고 2021년 9월 천연기념물 제566호로 지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곳은 진주시가 뿌리산업단지 터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공룡·익룡·새·악어·거북 발자국과 도마뱀 골격·어류·곤충 등 척추동물 화석 1만여 점이 발견됐고, 화석 밀집도와 보존 상태도 뛰어났다. 하지만 화석 보존비용 부담 등 문제를 두고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지속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진주시와 산단 시행사는 이전 보존을 요구했으며, 애초 문화재청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정촌면 화석산지 현지 보존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20여 개 단체가 진주시민모임을 결성해 기자회견과 시위를 하고 진주시의회 등에서도 현지 보존 요구가 잇따르자 태도를 바꿨다.
현재 천연기념물을 보존할 보호각 설치는 지지부진하다. 진주시는 문화재 보존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만 게시했을 뿐 의도적인 훼손에 무방비 상태다.
지난해 10월 도로공사를 하던 집현면 신당리에서 또 한 번 백악기 개구리·악어·익룡발자국 화석산지가 발견됐다. 김경수 교수는 "개구리 발자국 화석은 미국과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돼 희소성이 매우 높고 이곳 화석산지에서 12종의 척추동물 발자국도 발견됐다"며 "여기 화석산지는 백악기 척추동물들 다양성을 매우 높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발자국 화석 세계 최고 수준 연구자 마틴 로클리 교수는 서한을 보내 보존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진주층은 최근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집현 개구리 발자국 화석산지는 진주층을 대표하는 화석산지로 보존 상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전 보존을 택했다. 발자국 다양성 가치는 높지만 규모가 작고 지반이 불안정하며 급격한 풍화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진주문화연구소는 이 결정이 이곳 화석의 종합적 가치를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악기 개구리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은 현재까지 미국 유타주(1개), 전남 신안군(21개), 진주시 충무공동(7개)이 전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룡뼈 화석 조각이 발견된 곳인 유수리 화석산지(가화천)는 199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관리 소홀 탓에 오랜 기간 도굴과 침식 현상으로 귀한 화석은 이미 사라지고 훼손된 상태다.
◇국립지질유산센터 진주 건립? = 진주익룡발자국전시관을 찾아 창원시에서 온 김경미 씨는 "우리 아이가 공룡을 너무 좋아해서 검색하다 보니 진주에 고성공룡박물관과 비슷한 곳이 있어서 왔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실망했다"면서 "진주가 공룡 발자국 화석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4곳 등 가치 높은 지질유산을 다수 보유한 진주시. 국가지질공원과 세계지질공원, 유네스코 자연유산도 가능한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게 그동안 전문가들 지적이다.
진주를 비롯해 경남지역에서 대규모 화석 문화재가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활용할 수장시설은 없다.
지난 4월 조규일 진주시장은 문화재청을 방문해 최응천 청장을 만나 '국립지질유산센터' 건립을 건의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인 정촌면에 화석역사공원 조성과 화석 문화재 수장시설 필요성·시급성을 언급하며 국립지질유산센터 진주 건립을 요청했다. 국립지질유산센터는 화석 전시와 보존·관리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진주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국립지질유산센터를 유치하면 화석 자연문화자원 보존과 활용에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경남과 남해안 권역에 집중된 공룡 발자국 등 중생대 화석 보관·관리·연구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촌면 화석산지에 문화재청과 국립지질유산센터 건립을 협의 중인데 국립자연유산원 분원 형식으로 설치하는 등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화석산지 옆 터를 사들이는 방안까지 추진해 내년부터 보호각 실시설계를 마친 후 설치와 동시에 센터 건립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진주시는 익룡발자국전시관 보호각 시설을 보완해 내년에 개방하는 등 화석산지를 연계한 진주만의 특화된 관광자원 개발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진성면에는 경상남도교육청이 운영하는 경남과학교육원이 있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395호로 지정된 화석 노두를 원형 그대로 전시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진주의 지질자원을 큰 틀에서 아우르는 체계적인 종합계획 수립이 요구된다.
진주문화연구소 정경우 이사장은 "진주를 이루는 암석 속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과거의 다양한 생물이 존재했던 흔적이 아주 풍부하게 남아 있다"며 "이를 보존하고 지키는 것은 진주의 역사·문화·경제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영호 기자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