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해묵은 이은상 논란에 부치는 화두
어제 밤새 내린 봄비가 장맛비처럼 느껴진 건 왜일까? 마산역 앞 '가고파'시비 건립으로 시작된 해묵은 논란 때문일까. 아니면, 필자가 시인이란 스스로 부끄러운 얼굴을 가졌기 때문일까. 지난 4일로 돌아가자. 마산문인협회를 비롯한 창원지역 25개 문인단체 회원 40여 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마산역 광장에 세워진 시비에 대한 일부 시민단체의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노산을 '애국지사이며, 위대한 민족시인'이라고 주장했다.
독재 부역관련 행적과 3·15의거를 폄훼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면 부정했다. 이에 시비 철거대책위원회는 마산지역 문인의 역사관이 걱정되며 이를 바탕으로 무슨 글을 쓴다는 것인지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이은상이 부역을 했다는 정권은 당대에 국민에게 심판을 받았다. 독재라고, 쿠데타라고 심판받았다. 그런데 부역을 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 문인들의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며 "이런 역사관으로 글을 쓴다면 우리사회에 얼마나 해악을 미치겠느냐.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운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비판했다.
이쯤 되면 명색이 글을 써서 밥을 버는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얼굴이 부끄럽다는 말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속된 말로 '쪽팔리는'일 아닌가? 그래서 묻는다. 거창하게 마산문인협회를 비롯한 창원지역 25개 문인단체를 등에 업고 나선 회원 40여 명에게 기자회견을 하기 전 해당단체소속의 다른 회원들의 의사를 한번이라도 물어봤는지 말이다. 그랬다면 "이러한 역사관으로 글을 쓴다면 우리사회에 얼마나 해악을 미치겠느냐.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운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는 말을 들어도 조금은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하는 말이다.
철거대책위가 명색이 문인들에게 역사관을 들고 나오는 이쯤 되면 작가정신 같은 건 거지발싸개보다 못한 것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분노하라'다. 2010년 소책자 <분노하라>를 써 유럽과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분노 신드롬'에 빠뜨렸던 프랑스 작가 스테판 에셀이 지난달 26일 타계했다. 20여 쪽에 불과한 책에서 그는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만든 레지스탕스 정신을 젊은이들에게 전하며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버리고 인권을 위협하는 것에 "분노하라"고 다그쳤다. 에셀은 2011년 6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시민'이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마산의 시민은 마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마산을 살아가는 문인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
마산을 일컬어 민주의 성지라고 한다. 독재를 물리치고 이 나라 민주주의의 씨앗이 된 3·15의거와 부마항쟁의 '자유와 정의, 민주'의 정신과 혼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가고파라는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 작품이 아무리 위대하다할지언정 마산시민들의 정신, 나아가 이 나라 민주주의와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노산은 이승만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났던 3·15의거를 일컬어 '무모한 흥분으로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요,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폄훼한 인물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수립한 전두환 정권을 '특수한 상황에서는 강력한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 일반여론'이라며 권력에 아부했고, 박정희 추도가를 작시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아마도 해묵은 이념논쟁에 제일 큰 탓이 있겠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간이 여느 동물과 다른 수준으로 진화하면서 생겼다. 인간이 참된 생존이 아니라 권력에 빌붙는 탐욕스럽고 사치스러운 생존을 꾀하면서부터였다. 이쯤 되면 문인이 아니라 문학에 물어볼 수밖에 없다. 마산문인협회를 비롯한 창원지역 25개 문인단체 회원 40여 명에게 권하고 싶은 시 한 구절 앞세워, "…(중략)심심하면/그래도 심심하면/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긴 긴 장마"('장마'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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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시인은 시대의 호명에 따라 독재와 맞서 싸웠다. 학살의 피를 묻힌 손으로 권력을 잡은 독재자들이 시인을 수배자로 지목하고 붙잡으려고 공안당국은 혈안이 되곤 했다. 그 시절에는 잘 먹고 잘 사는 게 죄였다. 시인은 그 시절에 잘 못 먹고 잘 못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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