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잘 되면 고생도 행복이라 여긴 새
‘여성 차별’ 한국사회 불행 낳는 병폐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민속은 1950년대 우리나라 농촌에서 일어난 농지개혁으로 생겨난 믿기 어려운 일들을 상징적으로 지어낸 속담이다. 구조적 가난으로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던 농민의 자식들이 농지개혁으로 수확한 곡식을 모두 갖게되자 자식들이 학교에 가서 보고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 자식들은 농촌과 부모님의 어렵고 슬픈 처지를 잊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큰 도시 대학까지 가는 사람도 생겼다.

그들 가운데는 교사, 공무원, 고등고시 합격자들도 더러 나왔다. 이들은 도덕성과 정직성, 부지런함과 어려운 사람을 챙겨주는 매우 훌륭한 인성을 지닌 사람이 많았고, 이런 인성이 더 큰 힘을 가져서 시대적 지도자로 성장하며 당대의 청년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된 이들이 모두 농촌 출신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정녕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고, 지독한 가난과 신분차별의 모진 전통을 비폭력으로 극복해 낸 사람들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게 된 농민의 자식들은 더욱 분발했고, 농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헌신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행복했다. 행복은 아무리 작아도 보람있는 결과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농촌과 농민들의 희망이 조금씩 바뀌었다. 수 백년 동안 죽자살자 농사지어서 지주에게 다 뺏기고, 나라에 세금내고, 쌓인 빚 갚느라 절규했던 일에 비교하면 달라도 너무 다른 기적이자 은총이라 할만한 삶이었다.

그러나 너무 면적이 작은 토지에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식들 뒷바라지에는 모자랐다. 그래서 돼지와 송아지를 사서 키우거나 닭이며 오리를 키웠다. 큰 소 한 마리 값이 자식 대학 등록금과 맞먹었다. 자식들만 잘 된다면 부모 자신의 고생쯤은 얼마든지 감내하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의 이 같은 자식 사랑에는 깊고 오래된 질병이나 다름 없는 모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차별받고 소외된 채 생존의 역사 뒤안길에 가려져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애써 모른척 하고 있는 사람의 존재에 대한 문제였다. 그것은 여성들이었다. 할머니,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들의 존재였다. 그 시대 여성은 이름이 없는 사람처럼 여겼다. 호적에는 분명히 성과 이름이 있었으나, 남성들처럼 일반 생활 관계 속에서는 보여지지 않았다. 혼인한 여성들은 흔히 ‘○○댁’, ‘○○마누라’, ‘○○할머니’, ‘○○어머니’라 불렸다. 제사 때 자식이 읽은 축문에도 ‘유인경주김씨’라 적고 읽었다.

그리고 세월이 바뀌어서 농민의 자식들도 누구나 ‘국민학교’ 입학이 보편화 되었다. 그러나 학령기에 든 여자아이들 중에서 학교에 입학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따라서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소녀들을 보는 것은 어려웠다. 이 같은 여성 차별과 소외를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 않은 당시 한국사회의 지식 안에는, 장차 엄청난 질병처럼 만연하여 한국사회를 불행하게 할지도 모르는 오래된 병폐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다. 농촌사회가 도시보다 더 심했다.

이 같은 여성차별과 소외는 오래된 남성우월주의(가부장제도)의 거대한 적폐이자 불평등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이 모순이 농촌사회에서 더 오래되고, 뿌리가 깊으며, 불행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처럼 유지된 것은, 조선시대 오백년이 만들어 내고 강요한 유교이념의 유물인 ‘삼종지도’, ‘출가외인’, ‘칠거지악’ 등 제도였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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