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여전히 지식 전달·암기에 초점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은 질문과 책임

전화기를 맡겨두고 세상과 격리되는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꼭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인터넷 검색이 허용되지만, 사실상 신문과 TV만이 세상과 연결되는 수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하는 이 일을 아직은 챗지피티(GPT)가 못 하지만,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유명 대학에서 시험 중 챗지피티를 쓴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되었고, 시험이 전면 무효가 되어 재시험을 치르게 됐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재시험을 치르게 된다면 정직하게 응시한 학생들도 피해를 볼 것입니다. 하지만, 곧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몇몇 학생의 억울함이나 부정행위를 넘어 지금 우리가 치르는 시험이 이미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식은 검색 몇 번이면 바로 확인되고, 인공지능은 그 지식을 해석하고 조직해 결과물까지 만들어 줍니다. 이런 시대에 여전히 지식을 암기해 쓰게 하는 시험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챗지피티는 더 이상 지식을 외재화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 지식을 ‘외주화’합니다. “아동의 연령은 몇 살까지야?”라고 물으면 국내 법령과 국제기준을 정리하고, 심지어 “연구 목적에 맞춘 기준을 정리해 드리겠다”고 제안까지 합니다. 몇 초 걸리지도 않습니다. 과거라면 책을 찾고 인터넷을 검색해 가면서 몇 시간은 걸렸을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강력한 도구의 존재를 부정한 채 시험에서는 사용을 금지합니다. 물론 지식을 익히고 내재화해야 그걸 바탕으로 응용도 하고 탐구도 할 수 있고 인공지능에게 질문도 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몇 건의 부정행위가 아닙니다. 교육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빠르게 변하는데, 제도와 평가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식을 통합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닙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 부분에서도 이미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대학은 여전히 지식 전달과 암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도구를 붙잡고 있으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겠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디지털 휴머니즘’ 수업에서도 변화는 분명합니다. 학생들 손에서 공책과 연필은 사라진 지 오래고, 노트북과 태블릿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챗지피티를 모르던 학생들이 이제는 발표 자료 구성부터 토론 준비까지 인공지능에게 맡깁니다. 그래서 저는 인공지능을 금지하기보다 오히려 활용해 보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인공지능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답변을 비교하게 하고, 평가도 지필시험 대신 구술, 발표, 상호평가로 바꾸었습니다. 아직 인공지능이 만든 발표 자료는 완성도가 낮아 티가 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않겠지요. 그때도 부정행위라는 기준으로 접근한다면, 교육의 본질은 흐려질 것입니다.

이제 교육에서 중요한 질문은 “인공지능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책임 있게 사용할 것인가”입니다. 윤리적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학습과 연구 과정 속에서 공유하며, 기술의 힘을 인간의 성찰로 제어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번 대학 시험 부정행위 논란은 인공지능이 교육 현장을 향해 쏜, 교육 방식 전체를 다시 묻는 화살입니다. 교육이 시대에 뒤처져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질문이고, 정답이 아니라 책임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권희경 국립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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