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수 문화곳간 만개 문화기획자
철학 전공 후 문화기획자의 길로
창원시 성호생활문화센터서 부대끼며
사람에 관한 이해도 더 높아져
※ [주파수 36.5]는 문화체육부 기자들이 36.5도 생기 가득한 지역민의 삶에 주파수를 맞추고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창원시 성산구 용지동 가로수길 옆에 있는 경남도민의집에서는 연중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미술 전시가 열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아카데미가 진행되기도 한다. 19일 올해 마지막 아카데미가 야외에서 펼쳐졌다.
이날 행사는 ‘소리의 집-맘속 소리를 풍경과 음악에 담다’를 제목으로 의식주, 일, 휴식, 자연 등에서 만나는 다양한 소리를 주제로 삼았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한 아카데미는 수요일마다 이어졌고, 이날 작은 음악회를 열면서 끝맺었다. 실내에서 조용하게 음악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햇볕을 쬐고 대나무 숲에서 잎사귀가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 새들이 잠시 와 머무는 소리가 음악과 어우러지니 더욱 훌륭한 음악회가 됐다.
행사를 기획한 권형수(32) 문화곳간 만개 문화기획자는 바쁜 이들에게 쉼을 주고, 자신에게도 힘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주민과 함께 하며 성장한 시간들
참여자들도 그 의도를 알아챘던 모양이다. 음악회 중간중간에 그림을 그리도록 도구를 나누어주었는데 그곳에 내게 전하는 위로 문구를 썼다. “사랑해, 괜찮아, 대단해.” 대상자가 이를 입 밖으로 꺼내자 다른 이들도 잠시 자기에게 위로를 건네는 말을 해보았다.
음악으로 그림으로 내 감정, 타인, 자연과 연결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문화예술로 사람과 사람이, 지역과 사람이 연결된 것을 확인하면 권 기획자는 뿌듯함을 넘어선 짜릿함을 느낀다. 이 짜릿함으로 권 기획자는 지금까지 기획자로서 일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권 기획자는 2020년 창원청년비전센터에서 진행한 문화기획자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창원청년페스티벌에도 참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 경험이라도 해보자며 시작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오랫동안 일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취업 준비를 하던 그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생활문화센터 기획자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3년 동안 성호생활문화센터에서 일하면서 문화 기획의 가능성을 실감했다. 권 기획자는 “센터에서 일하면서 문화예술로 모여서 자기 얘기를 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만나 연결된다는 것, 문화예술로 마을 공동체가 살아나는 걸 지켜봤다”라고 말했다.
성호생활문화센터에서 일하기 전에 그는 그저 ‘무해한’ 인간이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는 생각이었고, 남이 내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었다. 고집스럽고, 남의 말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센터에서 일하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생활문화센터에서는 매달 주민을 대상으로 행사를 연다. 주민이 주인공으로 무대 위에 서고,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전시하기도 한다. 주민들이 물건을 내놓는 벼룩시장도 진행한다. 인근 창동예술촌 작가들에게 재능 기부를 받아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고, 공예 작품 체험하는 공간도 마련한다.
달마다 주민들을 모으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답은 언제나 지역, 공동체 안에 있었다. 그는 “경찰관이 민요를 부르고, 문방구 사장이 난생처음 무대에 오르는 걸 지켜보면서 숨은 고수들이 많음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이렇게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값지다고 했다. 그가 중장년층과 공동체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권 기획자는 “주민들이 우울증을 앓는 이야기, 힘든 일들,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야기 등을 그림을 그리다가도, 같이 밥을 먹다가도 말하는 걸 보면서 문화예술을 직선이 아닌 곡선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곡선은 문화예술이 뒤를 돌아보며 사람들을 품에 안아준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문화예술에 부드러운 힘이 있다고 믿는다.
“문화예술로 자신을 간접적으로, 징검다리 삼아서 표현하는데 그 감정이 내게 다가오는 모습이 흥미롭고 신기했다.”
사람과 사람을 문화로 이어내고자
그는 이후 사람 자체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이제 권 기획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문화예술을 개체로 삼아 이어주는 연결자가 되기로 했다. 그 또한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품을 내어주고 싶다.
“현대사회는 뭐든지 혼자서 하는 시대가 됐다. 혼자서 밥을 먹고, 퇴근하고 혼자서 스마트폰만 보면서 사는 데 이럴 때일수록 문화예술이 빛나야 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사회는 미덕 아닌 미덕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간격과 장벽을 넘나들고 연결해 주는 게 문화예술의 힘이고 내 역할이라 본다.”
문화기획 일을 하다 보면 한 번씩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말들이 있다. 그가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장자의 말이다. ‘유용지물이 무용지물, 무용지물이 유용지물.’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게 때론 무용하고, 무용하다고 봤던 게 유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내게 좋은 기획일지라도 대상자에게 안 좋은 기획이 될 수 있고, 내게 안 좋은 기획이라도 대상자에게 좋은 기획일 수 있다는 걸 자주 떠올리곤 한다.”
일을 하다보면 기획뿐 아니라 행정, 회계 업무도 맡게 되는데 그때 수치와 수치 사이에 숨어있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인문학적 특성이 콘텐츠에 녹아들어 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물론 힘든 일도 많다. 기획자는 실행하기 전 아이디어를 기획서에 담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일과 함께 행정, 회계 같은 일도 맡아야 하고 현장도 관리해야 한다. 행사는 하나부터 백까지 그의 손을 거치며, 그가 모든 책임도 져야 한다. 오죽하면 ‘연결을 경험해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 빼고 다 힘들다’라고 농담을 할 정도다. 특히 그가 지닌 진정성이 가려지고 의도가 왜곡되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문화기획은 애초에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슬기롭게 이를 풀어나간다.
그는 앞으로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고자 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우리 지역사회에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예술인과 지역민을 연결하고, 예술가와 대상자(관객)가 눈높이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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