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 최유리 현대음악 작곡가

불협화음, 새로운 소리에 이끌려
독일로 유학, 현대음악 공부 매진
고향 진주서 함께 할 음악가 모아
“소리 본질 끊임없이 탐구할 것”

지난달 24일 열린 최유리 현대음악 작곡가의 발표회 <소리, 그 경게를 넘어서>에서 최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인사하고 있다. /최유리
지난달 24일 열린 최유리 현대음악 작곡가의 발표회 <소리, 그 경게를 넘어서>에서 최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인사하고 있다. /최유리

지난달 24일 진주 해봄아트홀. 무대에서 ‘삑삑이’ 닭 장난감이 억눌린 감정을 터트리듯 소리를 냈다. 최유리(34) 현대음악 작곡가의 발표회 <소리, 그 경계를 넘어서> 연주회에서 난 소리였다.

최유리는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을 위한 Shrilling Chicken(쉴링 치킨)>이란 곡으로 현대사회를 해학과 풍자로 표현하고 싶었다. 곡에 들어간 닭 장난감 소리는 불안한 현실에 서 있는 현대인, 즉 ‘지금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가 들려준 음악은 소리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관객도 낯섦과 발견 사이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소리의 확산을 표현하는 음악

이날 선보인 작품은 5곡으로 모두 처음 관객에게 공개됐다. 먼저 ‘튜바(with 디저리두)와 호른을 위한 디저리모포시스(DidgeriMorphosis)’는 호주 원주민이 쓰던 관악기 디저리두(didgeridoo)와 튜바, 호른 등 울림통이 큰 관악기가 등장한다. 디저리두의 원초적인 소리가 호른과 튜바를 거쳐 확장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그렸다.

두 번째 곡은 ‘오보에 솔로를 위한 n=1→∞’이다. 오보에의 숨소리로 시작해 단일 음으로 모아진다. 그 음을 단선 악기에서 여러 음을 내는 주법인 멀티포닉, 음색 변화, 배음 변주로 확장한다. 출발점은 하나의 음(n=1)이다. 연주 과정에서 그것은 무수한 음색 변형을 거치면서 모든 음역과 모든 소리의 가능성(∞)으로 뻗어나간다.

세 번째 곡은 앞서 소개한 ‘쉴링 치킨’이었다. 네 번째 곡은 ‘첼로 솔로를 위한 디스로케이션 인 플럭스(Dislocation in Flus)’인데 최유리는 이 음악으로 고정된 형상에 머무르지 않는 생성과 과정을 탐구한다. 여기에 드러나는 것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스스로 겹치고 변화시키며 끝없이 생겨나는 움직임이다.

마지막 곡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튜바,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디퓨전(Diffusion)’에는 가장 많은 악기가 등장한다. 디퓨전은 퍼짐, 확산을 뜻한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확장하듯 바람의 숨결과 파도의 움직임이 서서히 스며들면서 만드는 끝없는 확산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자연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소멸하는 움직임의 본질, 거대한 에너지의 순환을 탐구한다.

최유리 작곡가의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을 위한 Shrilling Chicken(쉴링 치킨)>’을 연주하는 모습. /최유리
최유리 작곡가의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을 위한 Shrilling Chicken(쉴링 치킨)>’을 연주하는 모습. /최유리

소리로 시대와 사회를 말하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며 음악과 친숙하게 지냈다. 중학교 3학년 때쯤 음악을 깊이 있게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도 작곡에 매료됐다. 어쩌면 그는 음악에 이유를 댈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음악은 그저 당연했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여러 음악회를 접한 그는 화음을 쌓아가는 조성 음악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불협화음을 좋아하고, 새로운 소리를 찾는 걸 원했다. 그가 보기에 특히 독일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음악을 구조적이고 철학적으로 대하며 소리로 사유하고, 음악 안에서 논리를 만들어갔다. 그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다고 생각해 독일 유학을 택했다.

그는 독일 뷔르츠부르크 국립음악대학에서 석사·최고 과정을 거치며 현대음악에 매진했다. 유학 초기에는 새로운 소리를 발견해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스승인 안드레아스 도멘 교수는 단호했다. 스승에게서 아이디어를 소리로 만드는 구체적인 현대음악 작곡을 배웠다. 2023년 독일비텐현대음악제에서 데뷔하면서 본격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활동했다.

최유리와 대화하며 조성 음악과 현대음악을 비교해야 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그가 하는 음악은 조성 음악의 기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중이 조성 음악에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다. 그 또한 간극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음악이 어렵고 낯선 예술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감각과 생각을 담는 예술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이가 듣길 바라며 작곡하지만, 청중이 낯설어하는 반응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때 그는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쓴 ‘봄의 제전’을 예로 들었다. 초연 당시 스트라빈스키는 청중의 찬사보다 야유를 들었고 이후 그의 노래는 찬반 소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후대는 ‘봄의 제전’을 그의 대표작이라고 평한다.

독일에서도 ‘왜 현대음악을 해야 하느냐’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으며 생각을 다듬었다. 그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내가 낼 목소리는 무엇인지 떠올렸고, 현실을 담는 곡을 쓰는 예술가가 있어야 한다”며 “작곡가는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소리로 시대와 사회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예술가와 사회가 가까워지고, 청중이 현대음악을 경험하고 공감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유리 현대음악 작곡가가 자신의 작업 방식과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최유리 현대음악 작곡가가 자신의 작업 방식과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그의 음악

최유리는 현대음악 악보 표기법은 조성 음악에 비해 정해진 게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최 작곡가는 음표(♩)에 검은색 동그라미 대신에 마름모 그러니까 다이아몬드(◇)를 그려 넣는다. 음이 있고 공기 소리를 내야 함을 뜻한다.

최유리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치밀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소리를 계산해서 하나씩 구체화하고, 다이아몬드 음표로 도식화한다. 그는 “건물을 지을 때 도면을 그리는 것처럼, 현대음악도 마찬가지”라면서 “쉽게 낼 수 없는 소리를 상상하며 작곡을 이어간다”라고 말했다. 이는 조성 음악 작곡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새로운 소리를 연주자와 실험하고 맞추는 과정이 길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최유리는 현대음악 작곡가와 연주자가 같이 양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주는 현대음악을 하는 이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최유리는 이 갈증을 해소하고자 ‘앙상블 노이에(Ensemble neue)’을 창단했다. 노이에(neue)는 독일어로 ‘새로운’을 뜻한다. 최유리를 포함한 현대음악 연주자 7명이 몸담고 있고, 내년 창단 연주회를 할 예정이다.

최유리는 지역에서 음악이 가진 실험성과 철학적 깊이가 사람들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앙상블 노이에 외에도 진주여류작곡가회 사무국장, 진주사랑한국작곡가회 사무국장을 지내며 음악간 교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또 모교인 경북대학교 음악학과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또 자신의 고향인 진주에 대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소리의 본질과 그 경계를 탐구하는 작곡가로 남고 싶다”면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것을 넘어서 소리가 공간과 시간, 인간의 감각 속에서 어떤 의미를 만드는지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이 악보에서 빛나듯, 최유리 또한 지역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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