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EBS 지배구조 개선, 공공성 강화
여당 추진, 대통령 공약, 명분·시기 모든 조건 맞아
정치·행정 현안을 시간선(timeline)을 따라 다양한 시선과 경남도민일보 관점으로 정리합니다.
공영방송(公營放送·Public broadcasting)은 정부와 기업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국가가 재정을 맡고 관리·통제하는 국영방송과 다릅니다. 이 같은 체제를 운영하는 목적은 공공성 확보입니다. 공영방송 운영에서 핵심은 정치적 독립입니다.
국내 대표적인 공영방송으로 KBS(한국방송공사), MBC(문화방송), EBS(한국교육방송공사)가 있습니다. 국가 기간방송인 KBS는 수신료를 재원으로 운영됩니다. 재난 방송 주관사 역할도 합니다. MBC는 방송문화진흥회가 대주주입니다.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지만 공익성을 추구하는 공영방송 성격도 있습니다. EBS는 교육·교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영방송입니다.
오랜 기간 논란이 쌓인 '방송 3법'은 바로 이 세 방송사 지배구조 문제를 다룹니다. 한마디로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논의 과정입니다.
◇방송을 놓지 못하는 권력 = 웬만해서는 방송 덕을 본다는 정치 세력은 없습니다. 실제 덕을 본다면 굳이 티를 낼 필요가 없고, 표현을 했다면 뭔가 섭섭한 게 있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표현은 정치 세력과 상황에 따라 사실이기도 하고 엄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정치권은 자기 세력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때 방송 환경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송사 지배구조 개선 주장은 대체로 야권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방송이 인사권을 쥔 권력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인식입니다. 그런 문제의식이 투철했던 야권조차 막상 권력을 쥐면 태도가 바뀝니다. 내용을 따지고 보면 아주 단순한 방송 3법 처리가 밀리고 밀려서 지금까지 논란으로 남은 배경입니다.
이런 과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17년 방송 3법 처리 무산입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방송 3법과 내용에서 별다를 게 없는 법안이며 문제의식도 같았습니다. 추진하는 주체도 같은데다 사회적 분위기까지 무르익은 때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영방송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 명분마저 어느 때보다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법안은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민주당 또한 강경한 태도를 늦추면서 처리가 미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방송 3법은 모두 폐기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리하지 못한 방송 3법은 윤석열 정부에서 더욱 외면받습니다. 야당이 되면서 새삼 절실해진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대치하면서 여러 차례 국회 통과를 시도했습니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 편법 운영 문제까지 쟁점화되면서 방송 3법은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개정안'까지 포함해 '방송 4법'으로 추진됩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의결 정족수를 상임위원 2인에서 4인으로 늘리는 내용입니다.
국민의힘 반대와 외면에도 다수 의석을 앞세운 야당은 방송 4법을 처리합니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야당이 제21대 국회에서 부결돼 이미 폐기됐던 방송 3법 개정안을 다시 강행 처리했다"며 "방송 공정성과 공익성을 훼손시키려는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대응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양이 스스로 방울 달 기회 = 방송 3법은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 3건입니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구조를 정치권에서 독립해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는 게 목적입니다.
방송법 개정안은 KBS 이사회 이사 정수를 13명으로 확대하도록 했습니다. 이사 추천 권한을 국회에 두되 다양한 사회단체가 고르게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또 사장 임명 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국민추천제와 시정차위원회 의견 반영도 제도로 보장했습니다.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MBC)과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EBS)도 같은 구조로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구조를 개선했습니다.
논의를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은 과반 의석 수를 가진 여당입니다. 거부권을 행사하던 행정부는 이제 이재명 정부로 바뀌었습니다. 막힐 게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속도 조절에 나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 처리 일정을 연기했습니다. 반대 견해를 밝힌 국민의힘과 논의를 조금 더 이어가겠다는 것인데 관련 단체에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한 전국 92개 언론·시민·사회단체는 11일 '방송 3법 개정,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들 단체는 "언론 개혁 핵심이자 이재명 정부 공약인 방송 3법 개정 추진이 어떤 과제보다 차질 없이 빠르게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요구한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공영방송 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하지 못해 윤석열 내란 정권 방송 장악의 빌미가 됐다는 경험을 고려하면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공영방송에 내란 세력이 남긴 방송 장악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동조세력도 여전하다는 점에서 방송 3법 개정은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급한 과제"라며 "광장을 지킨 시민 열망에 부응해 언론개혁에 흔들림 없이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방송 3법 처리를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황정아 대변인은 11일 최고위원회 직후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방송 3법 모두 다음 본회의가 열리면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선의 시선 = 권력이 늘 방송을 쥐고 흔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물론 방송 독립성이 구조나 체계가 아니라 '권력의 선의'로 보장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송 3법 처리가 시급한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권력에 장악되지 않은 방송에서 드러나는 프로그램 편성 특징은 몇 가지 짚어둘 만합니다.
먼저 탐사 취재 프로그램이 활기를 띱니다. 방송을 장악하려는 권력은 늘 탐사 취재 보도를 견제하거나 축소하고자 했습니다. 노골적으로 프로그램을 없애기도 하고 구성원을 해체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불편한 견제를 없애는 게 방송 장악 목적이자 효능일 것입니다. 방송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을 때 탐사 취재 보도는 활기를 띱니다.
사회적 쟁점을 펼쳐놓는 토론 프로그램도 다양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방송이 권력에 잡힐수록 토론 프로그램은 횟수도 줄고 방송 시각도 뒤로 밀리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영방송에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늘어납니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으나 공영방송이 권력에 장악되면 가장 빨리 자취를 감추는 영역 중 하나가 미디어 비평입니다.
날카로운 탐사 보도, 다층적이고 세련된 토론, 언론을 입체적으로 보는 시선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공영방송에서 곧 풍부하게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승환 기자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