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외교? 외란!
대통령 부부 띄우고 치적 포장에 외교적 결례
미국·일본에 관대, 중국·러시아 홀대 대가 치러
조기 대선을 맞아 지금 상황을 만든 윤석열 정부 1060일을 되짚습니다. 내란은 무모한 권력자가 한순간 판단 착오로 저지른 실수가 아닙니다. 그런 판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누적된 비합리와 부조리가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유난히 외교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주 나갔고 많이 만났다. 성과나 실리가 분명하지 않은데도 늘 '역대급 치적'으로 포장하곤 했다. 종종 드러난 외교적 결례나 의전 문제 등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라 밖에서 배우자 김건희 씨는 외교적 논란에 구설을 보탰다. 대통령실은 국가 사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조율 과정보다 대통령 부부 포장에 더 공을 들이는 듯했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예전보다 존중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역대 최고 수준 동맹'이라던 미국은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했다. 돌이켜보면 지금 외교 상황을 예고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바이든-날리면'에서 드러난 태도 = 2022년 9월 1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유엔총회에서 한미·한일 정상회담을 예고했다. 주요 외교 현안으로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 제외 △한미 통화 스와프 등이 언급됐다.
하지만, 22일까지 예정된 미국 뉴욕 일정에서 정상회담은 없었다. 윤 전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만남은 21일(현지 시각)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이뤄진다. 논란이 됐던 '48초 회담'이다. 정부는 초 단위 정책 협의가 있었던 것처럼 의미를 두려 했지만 물리적으로 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더 큰 논란은 현장에서 나오며 박진 외교부 장관과 대화 중 발언에서 터진다.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논란이다. 대통령으로서 처신과 발언 자체로 부적절했고 외교에 임하는 태도까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후 '전 국민 듣기평가'라는 별칭이 나올 정도로 논란이 번졌으나 윤 전 대통령은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외교는 물론 앞으로 국정 태도에 대한 암시는 윤석열 정부 초기에 이미 나왔다.
◇'2030 세계박람회' 유치에서 드러난 실력 = '바이든-날리면' 논란이 대통령 처신과 태도 문제라면 '2030 세계박람회' 유치 무산은 실력에 해당한다.
2023년 11월 28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선정됐다. 리야드는 165개 회원국 가운데 119표를 얻었다. 유치 경쟁에 나섰던 부산은 29표로 탈락했다.
결과보다 충격적인 것은 상황 인식이다. 정부는 투표 당일까지도 역전 가능성을 언급했다. 과반 득표 국가 없이 1차 투표를 넘기고 2차 투표에서 역전한다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밀렸다. 취약한 외교력과 정보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유치 실패 결과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실력 부족이었다.
◇강대국 균형외교 외면, 미·일 올인 = 앞선 정부에서 외교 방향은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 유지였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사이에서 한·미·일 공조를 중심으로 중국·러시아와 외교·시장 균형을 유지하는 게 늘 과제였다. 그 과제를 잘 풀어낼 때 북한과 긴장은 완화됐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전통적인 외교 문법을 시작작부터 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대중 외교는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소재로 유용했다. 문재인 정부 대북·대중정책을 '굴욕적 외교'로 몰아붙였다.
취임 직후 2022년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서는 "20년간 누렸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났다"며 아예 '탈중국'을 선언해버렸다. 호언은 곧 무역 수치로 나타난다.
1990년 수교 이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던 러시아도 윤석열 정부 이후 불편해졌다. 특히 관계가 나빠진 결정적인 계기는 윤 전 대통령 인터뷰다.
2023년 4월 미국 방문을 앞둔 윤 전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등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고 러시아는 즉시 반응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무기 전달도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인 적대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며 "한국이 이런 행동을 하면 한반도에 대한 우리 접근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 긴장은 러시아와 북한 사이 동맹 강화로 이어졌다.
외교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홀대했다면 일본과 미국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했다. 특히 대일 외교는 말 그대로 '퍼주기'라고 할만하다. 일본 쪽 손이 닿지 않는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간 최대 쟁점이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책으로 '제3자 변제안'을 들고 나온다. 이를 향한 국내 비판에는 일본 정부보다 적극적으로 일본을 옹호했다.
원전 오염수 방출 때도 침묵했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정부 주도로 오염수 방출 피해가 없다는 홍보 영상을 제작해 유포하기도 했다. 일본이 곤란할 때마다 일본 정부보다 먼저 해결사를 자처했다. 그렇게 내어주고 받아내는 것이 없다는 비판이 일자 유명한 답이 나온다.
2023년 3월 박진 외교부 장관은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 찼으며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호응에 따라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024년 8월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말로 공감하기 어려운 돈독함을 과시했다.
◇지난 5년 미·중·일·러 무역 = 2020년 한국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4개국과 무역에서 156억 4883만 달러 흑자를 기록한다. 2021년은 150억 1587만 달러 흑자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일군 단단한 성장세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2년 4개국과 무역은 34억 64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다. 2023년 49억 7024만 달러 흑자로 돌아서고 2024년 284억 3136만 달러 흑자로 이어지나 이 기간 흑자는 수출이 줄고 수입이 더 줄어서 생기는 이른바 '불황형 흑자' 구간에 해당한다. 외교 문제를 무역 수치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려우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나타난 극적인 수치 변화는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수치에서 큰 변수는 중국과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2020년 236억 808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던 중국과 무역수지는 2021년 242억 8484만 달러 흑자를 기록한다. 하지만 2022년 12억 1307만 달러 흑자로 규모가 대폭 줄어들더니 2023년 180억 3965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다. 2024년 역시 68억 6709만 달러 적자가 이어진다.
러시아는 2022년 84억 8918만 달러 적자로 고점을 찍고 2023년 27억 5855만 달러, 2024년 23억 4394만 달러 적자로 폭을 줄여나간다. 하지만, 원자재 수입이 많은 러시아에 수입 규모가 줄면서 생긴 적자 감소인 만큼 '불황형'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외교 놓지 않은 탄핵 정부 = 윤석열 정부 보기에 중국은 국내 선거에도 개입하는 '몹쓸 국가'이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틀어진 러시아와 관계는 아직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여전히 물컵의 반을 채우고 있지 않으며 미국은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했다. 게다가 '관세 전쟁'을 일으키는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지렛대로 삼을 움직임이다.
이 와중에 탄핵 정부 대통령 권한 대행은 직접 대미 외교에 나서겠다며 '초당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덕수 권한 대행이 밝힌 전략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겠다'이다.
/이승환 기자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