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지속되자 트라우마 우려되는 주민들
불안과 불면, 두통 호소하는 이들 늘어
강릉 산불 사레 고령층 트라우마 '심각'
연기 마신 주민들 호흡기 증상 호소
닷새째 산불이 이어지며 산청군 시천면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불안과 불면, 두통 등을 호소하는 이부터 연기로 말미암은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이도 늘고 있다.
대피소에서 만난 80대 ㄱ 씨는 "마을까지 불이 번지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며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냥 누워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원봉사자들이 매 끼니를 잘 챙겨줘 고마운데 밥을 먹기도 힘들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다"고 했다.
60대 ㄴ 씨는 계속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바쁜 농사철을 앞두고 잿더미가 된 논밭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며 "이재민 신세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계속 불안하다"고 했다.
경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산청군보건소, 적십자사 등이 대피소에서 심리 상담 등 주민 건강을 챙기고 있다. 영남권트라우마센터는 고위험군 심리 지원, 사망한 창녕군 소속 산불진화대원과 공무원 유족을 대상으로 지원한다.
산불이 꺼지지 않은 상황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주민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시천면 덕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ㄷ 씨는 가족 중 2명이 산불 현장에 나가 진화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틈틈이 매장 밖으로 나가 산불 상황을 확인한다. 친지와 이웃들 안부를 확인하는 것도 일상이 됐다. 그는 가슴이 답답한 증상과 두통, 소화불량 등을 호소했다. 특히, 진화 현장에서 인명사고까지 난 터라 계속해 가족들 상황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덕산마을 식당에서 만난 ㄹ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밤이 되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며 철수했는데도 헬기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명이 계속된다고 했다. 덕산약초시장 앞에서 만난 ㅂ 씨는 재난문자만 오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며 바람 방향이 바뀌어 농장까지 불이 번지지 않을까 걱정돼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2023년 큰 피해가 났던 강원도 강릉 산불 사례를 보면 이재민 200명 중 60명이 심각 수준의 트라우마(재해를 당한 후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 증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명 중 9명이 고령층으로 조사됐다. 산불 이후에도 증상이 이어져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산불 같은 재난으로 주민들이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며 심리 상담 지원과 체계적인 상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대원이나 공무원 등도 장기간 진화 활동으로 호흡기 등 신체적 피해를 볼 수 있어 체계적인 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상연 경상국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위급한 상황을 장시간 느끼기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 수준을 초과해서 경험한다. 그러면 우리 몸의 시스템이 고장 난다. 정상적으로 원래 상태로 회복이 안 되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피소 주민들은 보상이나 경제적인 부분 등 현실적인 걱정이 많을 것이고,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도 심각해질 수 있어서 심리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별로 느끼는 스트레스의 회복 수준이 차이가 있어서 그 회복 수준에 따라 심리 상담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특히 "수도권 등에서는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자들을 위한 체계적인 대응이 잘 갖춰져 있다"면서 "기후 변화 등으로 산불 같은 대규모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역에서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닷새째 연기가 온 마을 뒤덮자 호흡기 증상도 늘고 있다. 시천면 일대 주민들은 메케한 연기에 호흡 곤란과 두통, 메스꺼움 증상을 호소했다. 하동 옥종면 주민들도 코로나19 때 사용하던 방역 마스크를 찾아 쓰고 있을 정도다.
진화대원도 지속적으로 연기를 마셔 메스껍고 목이 따가운 증상을 앓고 있다. 연기가 걷힌 25일 낮 12시 기준 산청군 시천면 시천천 일대 미세먼지는 101㎍/m, 초미세먼지는 56㎍/m 나쁨 수준을 보였다.
정종환 경상국립대병원 호흡기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산불 연기는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초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이 포함된 복합 유해 물질의 혼합이라서 인후통과 기침 등 급성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특히 천식이나 폐질환을 앓은 사람은 악화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화 투입 때는 반드시 일반 마스크가 아닌 'N95(에어로졸을 포함하는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는 0.3㎛ 미세입자를 95% 이상 차단)' 또는 필터가 장착된 마스크를 사용해야 한다. 진화 후에는 흡착된 유해 물질 재노출을 막도록 보호복 등 장비를 깨끗이 세척하거나 모두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진화대원이나 호흡기 질환를 앓은 주민들은 호흡기 관련 증상 악화가 있을 수 있어서 흉부 엑스레이, 폐 기능 검사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섭 허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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