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이 술술] 마산 쇠퇴 과정과 원인 연구
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2024년 논문
〈산업도시 마산의 쇠퇴 : 국가와 자본의 공간 선택성〉
"자본·국가 권력 주도하는 한 지방 도시 쇠퇴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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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산은 쇠퇴했다. 1960년대 마산은 수출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한일합섬을 중심으로 한 섬유 산업과 마산수출자유지역 등이 성장의 기반이었다. 1980년대 후반 섬유 사업이 몰락하고, 조선·철강 산업은 지역을 떠났다. 지주형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 <산업도시 마산의 쇠퇴 : 국가와 자본의 공간 선택성>을 통해 마산의 쇠퇴 이유를 분석했다. 그는 쇠퇴가 시작된 1990년부터 행정단위인 마산시가 소멸한 2010년까지를 살펴 발전주의와 신자유주의 국가가 주도한 한국 산업도시 한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논문 〈산업도시 마산의 쇠퇴〉(2024)을 쓴 지주형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백솔빈 기자
논문 〈산업도시 마산의 쇠퇴〉(2024)을 쓴 지주형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백솔빈 기자

부흥과 쇠퇴, 토건 도시로 = 마산은 외부 기업 유치와 마산수출자유지역을 발판 삼아 산업 도시로 성장했다. 1966년 양덕동 7만 평 부지에 한일합섬 공장이 들어선다. 1967년 한국철강이 해운동 5만 평 매립지에 건설됐다. 1972년엔 코리아타코마조선공업이 설립됐다. 1976년에는 경남모직 공장이 마산으로 이전했다. 1970년 마산 해변을 따라 수출자유지역도 생겼다. 여기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여러 기득권의 의지가 한몫했다. 1969년 1월 2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이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수출자유지역 설립을 요청한다. 지역 출신 정치인들도 수출자유지역 설립을 호소했다. 1970년대 마산의 수출량은 경남 전체 수출량 중 44%를 차지한다. 1980년대엔 인구수 전국 7위를 기록한 대도시가 된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20년간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마산 재정자립도는 2000년부터 2010년을 기준으로 전국 84개 주요 도시 중에서 63위로 조사된다. 쇠퇴 순위는 2위였다. 2009년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경남 20개 시군 중 꼴찌를 기록한다. 인구도 줄었다. 1989년 50만 5614명이던 게 1994년에는 37만 8072명으로 12만 명 이상이 감소한다. 2020년 마산 인구는 1989년 인구 중 46.9%에 그친다. 또, 주거와 도시환경이 열악하다. 구체적으로 △협소한 도로 △영세한 필지 규모 △과밀한 주택 △빈곤기에 만들어진 건축물 등이다. 지금 마산은 토건 도시가 됐다. 대표적인 예는 2004년 통과된 마산서항 해양신도시와 가포지구 일대 매립계획이다. 토건화는 도시 쇠퇴 마지막 단계이다.

1999년 6월 12일 당시 한일합섬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1999년 6월 12일 당시 한일합섬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1977년 마산수출자유지역 2공구 조성 공사 모습. /창원시
1977년 마산수출자유지역 2공구 조성 공사 모습. /창원시

이어서 지 교수는 마산이 기운 원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짚었다. 첫째, 땅이 부족해서 도시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다. 토지가 작아서 공업화로 늘어난 인구를 수용할 주택 수가 모자랐고, 공장 확장도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실제 마산시는 그간 아파트와 산업단지 건설에 주력했다. 하지만, 지 교수는 반대로 무분별한 주택 건설이 부족한 도시 산업역량을 증명한다고 봤다. 둘째, 섬유·조선 산업 자체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기에 마산이 쇠퇴했다는 견해다. 지 교수는 세계적인 산업 고도화가 마산 쇠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대기업 중심적이었던 마산 산업 구조와 지자체가 산업 고도화를 추진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봤다. 

자본과 국가 주도 한계, 내적 역량 길렀어야 = 지 교수는 "마산 지역 산업 발전이 정말 지역을 위한 것이었는지, 지역 산업 역량의 밑바탕을 키워줬는지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를 전략관계론에서 제시된 공간 선택성 개념으로 뒷받침했다. 공간 선택성은 자본을 쌓는 과정이나 국가 권력이 행사될 때, 특정한 관계·공간·실천·전략에 유리하게 작동되는 걸 가리킨다. 쉽게 말해 어떤 정책을 펼치더라도 누군가에겐 이익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손해가 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자본과 정책이 지닌 편향성은 지역 간 불균등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주도한 산업 도시 마산은 자본에 편향됐고, 지역 자체의 성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1976년 마산수출자유지역공단 한국실리콘 공장. /국가기록원
1976년 마산수출자유지역공단 한국실리콘 공장. /국가기록원
1998년 경남 마산시 양덕동(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일합섬 사수 결의대회 행사장에서 촬영한 사진. /김구연 기자
1998년 경남 마산시 양덕동(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일합섬 사수 결의대회 행사장에서 촬영한 사진. /김구연 기자

따라서 마산은 지역 내에서 성장할 수 있는 산업 역량을 키우는 데 실패했다. 대기업과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의존해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산은 외부 자본이 끌어들인 고용 인구로 토목·건설 사업, 임대업, 유통업을 운영해서 먹고살았다. 아무리 공단을 지어도 산업이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다. 한일합섬, 수출자유지역 산업은 국가 주도하에 자본을 불리기 좋은 조건으로 마산에 들어왔다. 한일합섬은 한국 수출주도 경제발전을 이끌었고, 마산수출자유지역은 초국적 기업이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나 구조개혁으로 인한 정부 지원 축소, 경영난이 닥치자 쉽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위기가 닥치자 미련 없이 공장용지를 매각했다. 그 자리는 부동산 개발로 대치됐다. 지 교수는 "자본을 떠나게 만든 정책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지자체 대응 역량도 부족했다고 평가한다. 중앙 정부 주도산업 정책은 그 자체로 지자체 산업정책 역량을 제한한다. 산업통상부 산하에 있던 수출자유지역은 마산시 권한 밖이었다. 마산시는 지방자치단체 산업정책 수단 부족으로 새로운 공단 조성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대신 고용량을 쉽게 늘릴 수 있는 토건 사업을 선택했다. 이 와중에 부패한 지역 정치는 토건 세력과 밀착했다. 2001년 김인규 전 마산시장은 한일합섬 뇌물수수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10년 뒤, 황철곤 전 마산시장도 건설업체로부터 불법 선거 자금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지 교수는 지역에서 산업적 발전을 이끌 역량을 강화하고, 토건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지역 정치와 자본 그리고 국가의 공간 선택성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 교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공간 선택성이 계속 작동하는 한, 앞으로도 지방 도시 쇠퇴와 지역 간 양극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결국 "문제는 정치에 있다"라고 말했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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