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 생각 한줌] 김해 화포천 체험과 이음교육

김해 화포천은 겨울인데도 그곳에 가면 풍경 아닌 것이 없다. 물과 흙과 생명이 숨을 쉬지, 이른 아침 습지에는 생명이 꿈틀거리고 물안개도 피어오르지, 숲을 걷어낸 나무 사이로 휘젓는 새들이 이리 고운 음색을 캐내지, 천변은 두 손 벌리고 걸어도 조금도 지루할 틈도 주지 않는 길이다. 화포천 어디를 둘러보아도 인위적 경계를 구획하지 않으며 요란한 겉멋이 없다.

길손이 온다는 것을 감지했을까. 큰 기러기 떼가 호기만발하게 겨울 들판을 꽉 메웠다. 종알거리던 아이들과 눈 맵시로 그윽해진 선생님들은 창가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북반구에서 날아온 진객은 상상이 피어오르는 아이들 마음을 녹여주려는지 날갯죽지를 펴고 동심원을 그린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이들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버스에서 차례차례 내렸다. 자연색 복장을 한 체험 해설 선생님들도 차량 앞에서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독수리 체험'을 하기 위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차가운 바람을 헤치며 걸었다. 2008년 고 노무현 대통령 귀향으로 화포천 습지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고, 2011년부터는 '독수리 먹이 주기'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화포천생태공원 독수리체험. /박영희
화포천생태공원 독수리체험. /박영희

화포천은 생명의 보고다. 수달, 삵,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솔개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23종을 포함한 야생생물 8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매년 겨울이면 몽골에서 날아온 철새가 좋아하는 볍씨를 뿌려두었다. 공생공존의 법칙은 단순하다.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몽골평원에서는 얼어 죽지 말아야 하고 개발 논리로 무장한 남쪽 나라에서는 굶어 죽지 말아야 한다. 겨울 철새가 그 계절을 난다는 것은 온정이 아니라 생존이 달린 엄혹한 서사다. 김해시의 화포천 생태 보존과 그에 수반하는 관리는 특별하다. 특히, 올해는 김해 화포천이 '람사르습지도시'로 국제 인증이 확정되었다. 습지 하나를 살린다는 것은, 아이들의 꿈 하나까지도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보증하고 있다.

화포천은 서서히 신비로 채워진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체험 안내 선생님의 이야기는 솔깃해진 아이들 귀를 열었다. 이산화탄소를 먹고사는 습지 식물과 땅에 사는 생물과 물에 사는 생물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지,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눈망울이 반짝였다. 다양한 식물과 곤충, 독수리와 철새들의 표본을 보면서 습지 보전이 지구 온난화를 늦추어 지구를 지키고 있다는 것까지 가르쳐주셨다. 

아이들도 바빴다. 손수 만든 독수리 마스크를 쓰고 독수리 형상의 종이 비행기를 날리려 야외 탐조대에 올라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제대로 날리지 못해 속상해하는 아이들 마음만큼은 기꺼이 자연과 한 몸이 되겠다는 소망이리라. 아이들은 습지에 서식하는 철새를 관찰하고자 망원경에 초점을 맞추었고 철새들은 먼발치에서 텃새 같은 아이들을 관찰하는지 먹이질 사이마다 고개를 돌리곤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철새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보았다. 어울려 사는 생명의 터전이란 '우리 함께'라는 공감에서 출발한다. 

독수리가 창공을 가르고 있었다. 기린 목을 한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겨울 햇살을 걷어 내고 있는 눈부신 하늘을 쳐다보았다. "두 손을 이마에 올려 햇빛을 가리지 말고, 두 팔을 뻗어 태양을 가려라"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큰 날개를 활짝 펼친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창공을 활공하고 있었다. 마음이 숭숭 뚫리고 가슴이 뛰고 경이로웠다. 높이 날아야 독수리다. 꿈이 여물어지는 아이는 벌써 더 높은 세계로 오를 것이다. 독수리를 닮아가는 천진난만한 아이는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비행할 준비를 할 것이다. 그랬다. 아이들은 제 각각의 꿈을 안고 날고 있다. 

체험 해설 선생님의 독수리 이야기는 들을수록 진득했다. 놀랍게도 '독수리'는 여린 본성을 지닌 존재라고 한다. 주로 동물 시체를 먹는 습성의 반대급부인 질병에 노출되지 않으려는 진화의 결과물이 얼마나 처절했을까. 젖은 날개를 쫙 펴고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통해 회복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면서 삶이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평범한 일상을 들러주었다. 독수리가 용감하게 하늘을 나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듯 아이들의 외견상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 때가 있다. 아이들은 숨어 있는 본성부터 제각각이다. 아이들의 여러 감정을 다독이고 풀어주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텃밭의 작물처럼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 우리 공동체의 책임감 아닐까.

종이놀이를 하는 아이들. /박영희
종이놀이를 하는 아이들. /박영희

어린이집에서는 2세에서 3세가 되면 유아반으로 진급한다. 6세가 되는 친구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한다. 아이들은 한 걸음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갈 숙성의 기간을 담금질하면서 '영-유 이음교육'과 '어-초 이음교육'을 체험한다. 이음은 '잇다'라는 의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에서는 '영-유 이음교육'으로 형, 언니와 동생이 '마니또'를 정해서 젓가락 사용법 배우기, 그림책 듣기, 함께 놀이하고 산책가기 등 유아가 되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다. 

얼마 전에 '어-초 이음교육'의 하나로 재학생과 졸업생의 만남 행사가 진행되었다. 선배 졸업생들과 부모님을 초대하여 예비 입학생과 부모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제법 큰 가방을 메고 들어오는 1학년 초등학생에게 예비 초등학생은 가방 속에 무엇이 있는지,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운동장에 혼자 나가도 되는지 등을 질문했다. 선배 졸업생은 가방 속 물건을 보여주면서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부모님들도 학교생활에서의 노하우도 전수하였다.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선물을 받는 순간 아이들의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영-유 이음교육에 참가한 아이들. /박영희
영-유 이음교육에 참가한 아이들. /박영희

매년 2월이면 어린이집을 떠나는 아이들과의 이별은 아쉽지만 자랑스럽고, 기쁘다. 정들면 떠난다는 격언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평소에 눈물이 건조한 필자도 뒤돌아설 때는 눈시울을 적신다. 어떤 아이는 진심으로 펑펑 운다. 아이들이 꿈을 이루어 가는 길에 함께 한다는 믿음을 떠올려 본다. 

계절마다 바뀌는 아름다운 화포천 습지의 풍경은 아이들의 마음에 감성 꽃을 피운다. 아이는 공동체에서 성장하고 사랑으로 열매를 단다. 아이가 화포천에서 두 손을 모으면 독수리와 나무들 모두는 친구가 되고 풍경이 된다. 그 친구와 풍경 모두는 '아이야. 날개를 펼쳐라.!' 그렇게 근사한 용기를 북돋는다고 필자는 믿는다.

박영희 시민기자(국공립장유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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