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36.5] 창원 방상환 미술 작가
객관화·차별화 고민한 시기
막막했던 원 무늬에 천착
작품 세계 구축하고 확장

방상환(33) 작가는 양산 통도사 인근에서 나고 자랐다. 창원대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하면서 창원에 살게 됐다. 그는 창원이란 도시가 그의 성격에 잘 맞다고 한다. 사람과 차가 많긴 하지만, 숨 쉴 구멍이 적당히 있기 때문이다. 생활 환경이 변하는 건 별로지만, 작업에 있어서는 늘 변화를 고민한다.

방 작가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던 이유도 올해 마산현대미술관 레지던시(작가가 정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지원받는 사업)에 참여하면서 그의 그림이 바뀐 것에 호기심이 일어서였다. 방 작가는 "일부러 변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맞닥뜨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했다. 방 작가는 그림 앞에서 냉정할 정도로 솔직하다. 자기 객관화일 수도 있지만, 그림에 대한 책임감으로 여겨졌다. 

작업실에서 특유의 도형을 그리는 방상환 작가. /김구연 기자   
작업실에서 특유의 도형을 그리는 방상환 작가. /김구연 기자   

막막했던 길 열어준 검은 펜 = 방 작가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잘했다. 고등학생 때는 양산에 살면서도 부산에 있는 미술 입시 학원에 다녔다. 멀었지만 좋아하는 미술을 할 수 있었기에 다닐만했다. 창원대 미술학과 입학 후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무엇을 그려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펜으로 그릴 수 있는 건 다 그려보자 싶었다. 전지를 펜으로 채워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틀이 될 원 7~8개를 그렸다. 그리고 아주 섬세한 무늬로 그 원을 채워갔다. 이렇게 완성된 그의 그림은 힌두교나 불교에서 흔히 보는 만다라 도형과 비슷한데, 이후 그를 대표하는 작업이 된다. 물론 방 작가는 만다라가 아니라 그저 자기 식으로 그린 무늬일 뿐이라고 말한다.

펜화라고 하면 펜촉의 섬세함을 이용해서 정물, 풍경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방 작가는 그런 소재로는 차별화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하루에 8~9시간씩 이 작업에 몰두했다. 작가는 당시를 '아주 절박했던 때'라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방상환'은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를 정립해야 했기에 다른 것을 보거나 들을 여력도 없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열병을 앓고 나니 그림 세계가 자리 잡혔다.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방상환 작가. /김구연 기자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방상환 작가. /김구연 기자 
만다라를 연상하게 하는 방상환 작가의 작품. /방상환 
만다라를 연상하게 하는 방상환 작가의 작품. /방상환 

그러다 3년 전 문득 '그림을 왜 그리나?' 하는 생각이 찾아왔다. 

"결국 (그림을) 좋아서 하는 거였는데, 그 말을 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요. 그림을 좋아서 한다는 것으로 대답이 부족해 보여서 이런저런 단어를 갖다 쓰고 이어 붙여봤는데,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니까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결국 나중에는 받아들였어요. '그림을 좋아서 그린다'는 걸요. 이후엔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후 그림을 앞에 두고 솔직하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자 그림이 더 좋아졌다.

올해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기간 방 작가가 속한 지역 청년 미술 모임 '사림153'이 비평 활동을 했다. 시민들 앞에서 다른 작가와 자신의 그림에 대해 말했다. 다들 남이나 자신의 그림을 평가할 때 조심조심 말했는데, 방 작가는 자기 작품을 두고 '너무 잘 그렸더라'고 말해 좌중이 폭소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기 작업에 확신과 애정이 있다는 뜻이다.

"저는 제 그림을 좋아해요. 물론 부족한 점도 보이죠. 그래서 그림 그리고 전시할 때 최선을 다해요. 그렇게 작업한 그림을 보면 마음에 들어요. 좋아요."

전자 회로를 연상하게 하는 방상환 작가의 작품. /방상환 
전자 회로를 연상하게 하는 방상환 작가의 작품. /방상환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 = 방 작가가 다른 작가와 공동으로 쓰는 작업실을 찾았다. 작업대 위에는 8자루짜리 검정 잉크 펜 세트가 있다. 미쓰비시 연필에서 내놓은 유니볼 시리즈 중 시그노(signo)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해서 선택했다. 그가 쓰는 굵기는 0.5㎜다. 0.38㎜를 쓰던 때도 있었는데 그림이 필요 이상으로 정교해져 0.5㎜로 정착했다. 그가 펜을 고집하는 이유는 실은 더 복잡하다. 그는 물감의 물성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여긴다. 물감을 쓰다 보면 숙련도야 높아지겠지만, 자신이 완전하게 농도나 색채를 조절하는 건 어렵다고 봤다. 대신 펜을 쓰니 캔버스처럼 평면 미술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기구와 재료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5월 1일에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단초전〉, 왼쪽에 걸린 그림이 방상환 작가의 작품이다. /주성희 기자
5월 1일에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단초전〉, 왼쪽에 걸린 그림이 방상환 작가의 작품이다. /주성희 기자

방 작가는 올해 5월 1일부터 6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 1전시실에서 열린 사림153 단체전 〈단초전〉에서는 종이가 아닌 투명한 재질, 필름지에 그림을 인쇄하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여전히 만다라를 연상하게 했지만, 펜 작업의 단조로움을 피해 다양한 시도로 변화를 모색한 것이다. 그의 의도가 통한 것일까? 그의 작품을 본 관람객은 그의 작품을 펜으로 그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디지털 그래픽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7월 그랜드머큐어앰배서더창원에서 열린 '호텔 아트쇼'에 참가했을 때도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는지 묻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그만의 독특한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호텔 아트쇼'에서 선보인 작품을 크게 확장한 것이 올해 5~10월 마산현대미술관 레지던시에서 한 작업들이다. 당시 작가 작업실과 작품을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를 찾았는데, 그의 그림은 그동안 만다라 모양이나 전기 회로 같은 모양에서 벗어나 있었다. 종이에 새겨진 무늬들은 더욱 단순해졌고, 물결치는 듯, 용틀임하는 듯했다.

10월 30일 마산현대미술관에서 레지던시 결과 보고전에서 방상환 작가 모습. /주성희 기자
10월 30일 마산현대미술관에서 레지던시 결과 보고전에서 방상환 작가 모습. /주성희 기자

그동안 그의 작업은 음악적인 요소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때 작품을 토대로 창원에서 소리와 음악으로 작업을 하는 변현우 작가와 협업해 실제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변 작가는 복사기가 광선으로 복사할 것들을 훑고 지나가는 원리를 이용해 동그라미, 굵은 선마다 소리를 만들었다. 가상의 수직선이 방 작가의 그림을 훑으면 변 작가가 만든 음정이 순서대로 소리를 내도록 했는데, 마치 명상 음악 같기도 하고, 현대 클래식 음악 같기도 했다. 

방 작가는 26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창원시 성산구 갤러리 '프로젝트 아이'에서 개인전 〈그리드 밖으로〉를 열고 있다. 지난 9월 문을 연 이 전시 공간은 지역 작가를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전시를 계속 열고 있다. 공간 운영자 임소진 씨가 이번 전시 주인공으로 방 작가를 선택한 이유도 단단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임 씨는 "'호텔 아트쇼' 이후로 그의 그림이 틀(그리드)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져 전시명을 〈그리드 밖으로〉라고 지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이 담긴 그의 작품을 시민들과 공유해 전시 공간이 추구하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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