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문화원 웅천도예 역사기행
도공 모신 도조·부산신사 참배

지난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웅천선조도공의 자취를 찾아'라는 일본 답사를 진해문화원에서 진행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웅천 도공들의 넋을 기리고 역사적 사실을 되새겨 보고자 진해문화원 회원 30명과 함께한 여정이었다.

진해 웅천이 도요지라는 사실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생활자기인 사발을 주로 만들어온 웅천도예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맥이 끊어졌다. 최근에 와서 웅천도예의 맥을 잇는 최웅택 사기장과 그 제자들이 있기는 하나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있어 어려움이 많다.

4월 16일 새벽 4시30분에 도착한 곳은 규슈 나가사키현의 히라도이다. 일본에 도착해서 처음 가마터를 만든 곳이다. 가마터 아래 작은 전시관에는 깨진 도자기와 발굴 사진들이 아주 단출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사발 모양의 다완을 만들기는 했지만 웅천 삼백토와 달리 히라도의 흙은 사기를 만들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50년간 히라도 생활을 접고 흙을 찾아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미카와치 마을로 이주한다. 답사 일행들도 이를 따라 이동했다.

사세보 미카와치에는 웅천도공을 모시는 도조신사와 부산신사가 있다. 도조신사에는 웅천 사기장 거관인 1대 도조에서 14대 도조까지 모셔져 있고, 부산신사는 19세 소녀로 끌려가 일본에서 도자기 기술을 익혀 자손을 번창시켰던 삼포할머니와 그 후손을 모시고 있다.

삼포할머니는 웅천 삼포마을에서 끌려간 소녀였다. 웅천 도공들과 함께 끌려가 일본 무사와 결혼을 강요당했고 남편과 사별 후에는 아들을 데리고 미카와치 마을로 옮겨서 나가하산에 가마를 차렸다. 나이 들어서는 고라이바바(조선에서 온 할머니란 뜻의 일본말)라 불렸으나 향토학자 고 황정덕 선생 저서에서는 '삼포할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의 기록 '히라도 도자기 연혁, 1672년'에는 삼포할머니의 유언이 적혀있다. "내가 죽으면 이 사당을 불태워라. 연기가 하늘로 오르면 조선으로 돌아가니 제사를 지내지 말고, 새로이 산신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어라. 만약 연기가 하늘로 오르지 않고 땅에 맴돌다가 사라지면 영원히 이 사당에 제사 지내어라."

실제로 할머니가 운명하고 나서 사당을 태우니 연기는 하늘로 오르지 않고 사라졌다. 그래서 자손들은 삼포할머니를 모시는 신사를 할머니가 '삼포'라고 이름붙인 곳에 세웠다.

현재는 '부산신사(釜山神社)'로 써져 있어 부산에서 끌려온 것으로 착각을 할 여지가 있으나 고 황정덕 선생은 '부'(釜)자도 도자기를 굽는 '가마' 요(窯) 자와 같이 쓰는 것으로 잘못 아는 이가 안내문을 잘못 쓴 것으로 추측했다.

답사 일행들은 두 신사를 모두 들러 참배했다. 신사로 오르는 마을 어귀에는 웅천 도공들의 넋이 잠들어있는 묘지가 있고 그 사이에 삼포할머니의 묘비가 있다. 일행은 묘지 중앙에 있는 제단 두 곳에 태극기를 펼쳐서 간단한 참배식과 함께 '헌다'를 했다. 진해문화원 우순기 원장이 제문과 함께 아래 글을 낭독했다.

"웅천 선조 도공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수백 년이 흐르고 흘러 천지가 다하여도 고향 산천 떠나온 그 아픔 그 원한 어찌 다 말로 할까. 선조 도공님 발자취 따라 진해문화원 30명 일행 숙연한 마음 담아 추모하고자 합니다. 지금도 구천을 맴도는 영혼이시여! 정성껏 우린 한 잔의 차를 도공님 영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올리오니 영혼이시여! 부디 흠향하소서."

/안호영 지역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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