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는 창원국가산업단지 50주년을 맞아 다가올 50년을 담은 청사진을 공개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초일류 제조혁신 생태계 조성 △탄소 중립 선도 산단 전환 △상시학습 플랫폼 구축 △문화·여가·관광 콘텐츠 확충 등이 있다. 창원국가산단 대개조를 예고한 홍남표 시장의 의지가 정책 방향에서도 느껴진다.
다만, 한 가지가 빠졌다. 기계 노후화를 비롯한 위험의 외주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산단의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전환할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 삶을 어떻게 개선할지 이번 청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와 최소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임금 보장은 디지털 대전환 못지않게 중요하다.
◇여전히 위험한 일터 =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가 파악한 바로는 1986~2022년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관내(창원·함안·의령)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2413명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1974~1985년 사망자는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제조사 현대비앤지스틸 창원공장에서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노동자 3명이 일하다 죽었다. 2022년 9월 크레인 점검을 하던 50대가 끼여 숨졌고 한 달 뒤에는 11t 대형 코일에 맞아 60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7월에는 50대 노동자가 약 400㎏에 달하는 철제 테이블에 깔려 현장에서 숨졌다.
노동자들은 장비가 노후화되며 기계 오작동 탓인 안전사고가 잦아졌다고 호소했다.
조재승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현대비앤지스틸지회장은 “미국에서 중고로 들여 온 장비도 여전히 많은데 얼마나 오래됐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며 “회사에서는 철강이 사양 산업이라는 이유로 투자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화된 기계가 시중에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노동자들이 직접 들어가 수작업하는 공정도 있다”며 “철강 산업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안전은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계획안에 노동 문제 사실상 배제
중대재해 반복되는 일터·하청 업체만 늘어
실제로 현대비앤지스틸 작업장에서는 중대재해 전후로 기계 노후화로 말미암은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지난해 3월 크레인 기계 오류로 대형 코일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같은 해 6월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17t 코일이 낙하한 바 있다.
기계 노후화는 생산 자체를 외주화하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원청은 오래된 기계를 새롭게 바꾸기보다는 관련 공정 전체를 다른 중소업체에 맡기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형기 금속노조 경남지부 효성중공업지회 사무장은 “남은 장비도 오래된 것들이 많지만 더 큰 문제는 생산 공정이 점차 외주화되는 것”이라며 “당장 원청이 직접 생산하는 물량이 전체 10%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장은 회사가 비용절감 목적으로 외주화를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국내 중소업체에 맡기던 공정을 최근 들어서는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 시장에 몰아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는 그동안 소리 없이 구조조정을 하던 셈”이라며 “대놓고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면 반발이 클 테니 기존 정규직들 임금과 고용은 보장해주면서도 자연 감소분에 대한 신규 채용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조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결국 자본이 자기 입맛대로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산단 내 사업장이라도 산업별 노조를 꾸려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자들이 그린 청사진 = 창원시와 경남도가 제시한 창원국가산단 미래 계획에는 노동자 목소리가 사실상 배제됐다. 창원시가 꾸린 ‘창원국가산단 50주년 발전협의회’에도 노동 전문가는 없다. 이에 금속노조는 경남지부는 창원국가산단 50년 기념행사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현장을 지킨 노동자들은 ‘탁상행정’을 멈추고 노동자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업화 움직임 두고 "땅 투기 부추겨" 비판
강소기업 살릴 지원책도 함께 고민해야
김명기 금속노조 경남지부 한화창원지회장은 “새로운 건물 몇 개 짓는다고 창원국가산단이 살아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장 공무원부터 자기 자식을 창원산단에 보내라고 하면 보낼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며 반문했다.
이어 김 지회장은 “젊은 세대는 판교 이남 대공장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며 “산단만 뜯어고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지역사회와 대학·지자체·국가까지 함께 고민할 문제”라고 밝혔다.
배성도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비정규직이 지금처럼 늘면 산업 자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배 위원장은 “비정규직이 산재도 더 많이 당하고 처우도 더 열악하다”며 “숙련공들은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산단을 떠나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숙련공이 떠난 자리는 지금 조선업처럼 이주 노동자로 채워지게 될 것”이라며 “이주 노동자 확대에 대한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는데 결국에는 산단 자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상환 금속노조 경남지부 정책기획국장은 창원시가 내놓은 미래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 국장은 “창원국가산단 50주년 행사 때 발표한 내용을 들어보면 우리 지역 계획이 아니라 꼭 수도권 발전 계획 같다”며 “직장과 주거를 같이 있도록 한다는데 창원이 수도권처럼 출퇴근에 한 시간씩 걸리는 것도 아닌데 좀 맞지 않는 정책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복합문화공간이나 데이터센터 조성을 계획 등을 두고는 ‘땅 투기’만 부추기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 건물 안에 공장도 짓고 지식산업센터 짓고 문화공간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공업 용지를 상업 용지로 바꾸겠다는 것”이라며 “그러면 지금 공단 내 유휴부지를 가진 사업주들만 좋은 거다. 상업 용지로 전환되면 누가 새로운 공장을 지으려고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공단을 공단답게 만들려면 대기업만으로 부족하다”며 “중소기업에 아침밥 지원사업 같은 작은 복지부터 강소기업 지원 등 지자체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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