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

창원시향 연주회 모습. /창원시향
창원시향 연주회 모습. /창원시향

지난 2일 창원시립교향악단(이하 창원시향)의 정기연주회를 다녀왔다. 3.15아트센터에서 열린 무대였으며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협주곡과 드뷔시, 그리고 시벨리우스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이날 국내 어느 오케스트라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멋진 연주가 울려왔다. 세계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방한에 열광하면서도 국내, 그것도 바로 곁에 있는 오케스트라에 무심했음을 다시 한번 반성했다. 하여 지면을 빌려 지난해 창원시향의 발자취를 돌아보려 한다.

◇ 연주실력,섭외력에 감탄 = 2023년 1월의 어느 날, 문득 이탈리아의 작곡가 '레스피기'의 로마 삼부작 중 가장 인기가 있다 할 '로마의 소나무'가 듣고 싶어졌다. 지휘자 '로린 마젤'(현 김건 상임지휘자를 발탁, 지도하였으며 '예술가 중 예술가'라 극찬하였다)이 빈필을 지휘한 음반을 꺼내 들었고 듣는 와중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아 이런 멋진 곡을 실황으로, 그것도 창원시향의 소리로 들어봤으면' 그러다 '라벨, R.슈트라우스와 더불어 관현악의 대가로 평가받는 작곡가의 작품이니 어려울 뿐 아니라 관악의 편성이 너무 커 힘들겠지'라는 생각에 포기하려는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창원시향의 1월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에 자리한 것이다. 감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날아온 안내라 혹 텔레파시가 닿았나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실황은 놀라웠다. 오케스트라보다 앞선 자리의 양옆으로 6명의 금관 주자들이 섰다. 곡의 위용은 더하여졌고 그 모습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순간이 연출됐다. 클래식 음악에 맞춰 제작된 애니메이션 <환타지아 2000>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곡이니 아이들과 함께 보며 들어도 좋겠다. 

2월은 구소련의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 1부에 자리했다. 이때 바이올린을 맡은 최송하 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녀의 국내 데뷔 무대였으며 지휘자가 직접 발굴했다고 한다. 지금은 국내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고 하며 이런 훌륭한 연주자를 먼저 접했다니 괜히 우쭐해진다. 놀랍게도 올해 2월의 공연에도 그녀가 등장했다. 연주가 끝나고 총총거리며 기뻐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그녀는 연주가 끝나고도 관객들을 기다려 사인을 해 주며 사진을 함께 찍었다. 자신을 알아봐 준 지휘자와 악단, 그리고 창원시민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연주는 어땠냐고? 역대급 환호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 음악적 소양 높이는 계기 = 3월의 공연에선 현재 클래식 음악계에서 주목받는 연주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유명 연주자를 직접 대하다니 시향의 섭외 능력에 감탄했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라벨의 '볼레로'였다. 같은 선율이 오랫동안 반복되며 각 악기의 실력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곡이다. 연주하기가 까다로운 곡으로 영화 <밀정>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이날 창원시향은 어느 악기군 하나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을 보여 주었다. 특히 트럼펫 주자에게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4월은 교향악 축제의 프리뷰 공연이었으며 이날도 쉽게 보기 어려운 악기가 등장했다. 마림바다. 새로운 악기의 등장에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의 관람이 평소보다 많아 보였다. 이동해 오는 데만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고 하니 귀한 경험을 선물 받았다. 교향악 축제에서 보여준 연주는 자랑스러웠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인터넷 중계의 댓글엔 창원시향을 향한 찬사가 이어졌다.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전곡이었으며 이 역시 국내의 공연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연주력뿐 아니라 레퍼토리 선정에서도 앞서갔던 것이다.

영화  스틸컷.
영화 스틸컷.

9월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 삽입되어 화제가 된 말러 교향곡 5번의 연주가 있었다. 이미 유명했지만 영화로 더 유명해진 4악장은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악장으로 현악기군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9월에는 정기공연 외로 특별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놀라움이었다. 실베스트로프, 슈니트케. 이름마저 생소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1부의 순서를 채웠다. '전쟁과 평화'라는 테마로 이루어졌으며 앞서 소개한 작곡가들은 전쟁의 화마에 놓인 나라의 작곡가들이다. 덕분에 음악적 소양은 높아졌고 새로운 애청곡이 생겼다. 지휘자의 선곡 능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며 여타 오케스트라에도 곡을 선정하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12월의 테마는 '진노의 날'이었다. 이날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압권이었다. 영화 <적과의 동침>을 통해 소개했던 곡으로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작품의 매력이 창원시향의 울림으로 드러났다. 지휘자는 곡의 서사를 드라마틱하게 끌고 갔다. 곡에 대한 해석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공연이 좋았고 거론되지 않은 많은 연주 또한 언급되어 마땅하다. 하지만, 가장 앞에 두어야 할 업적이라면 역시 이번 2월 연주로 시벨리우스 전 7개의 교향곡 치클루스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스틸컷.
영화 스틸컷.

◇창원이라는 도시 자부심 느껴 = 국내, 아니 외국의 오케스트라를 포함하여도 이를 이루어낸 단체가 얼마나 될까? 해냈다는 것을 넘어 연주 또한 훌륭하였으니 더욱 놀랍다. 이번 참에 전곡 녹음을 하여 음반으로 남기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이다. 

어느 도시의 이름을 거론할 때 그 도시가 품은 오케스트라가 자연히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창원시향을 통해 창원이란 도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어떨까? 지금처럼이라면 분명히 부러워할 것이다. 시향의 단원 중 어느 한 바이올린 주자의 손을 본 적이 있다. 작은 손가락 하나하나에 굳은살이 박였다. 우연히 만난 클라리넷 주자는 음악에 진심이 묻어났다. 한 곡 한 곡 선곡에 애쓰며 좋은 연주를 전달하려 머리를 쥐어짠다는 지휘자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 모든 노력이 모여 클래식 공연임에도 매진사례가 이어지는 것이다.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23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지나온 길이 이러하니 앞으로의 길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까. 여운에 젖어 공연장을 나설 때 가끔 단원들과 마주치곤 한다. 그러면 인사를 건넨다. '오늘 연주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피곤했던 그들의 얼굴에 보람이라는 웃음이 지어진다. 이러한 격려는 앞으로의 공연에 힘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좋은 공연이란 지휘자와 단원들,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심광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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