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용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
20년 가까이 노숙자·노동자 등 사각지대 살펴
진주의료원 폐원 반대·밀양 송전탑 등 지역서 연대
의대 증원·공공병원 지원 등 국민 신뢰 얻는 의협 약속
"노동자 생존권 등 약자 권리 보장하는 사회 만들어야"

코로나19를 거치며 의료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응급실 뺑뺑이’처럼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도 공론화됐습니다. 자연스레 낡은 의료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부도 의료계와 각종 의료 현안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는 3월 20일 대한의사협회장(의협) 선거가 진행됩니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의료 정책이 바뀔 수 있는 만큼 이 선거를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서울시의사회장, 전 국회의원, 전 의협회장 등이 서둘러 출마를 밝힌 가운데 낯선 명함이 눈에 띕니다. ‘정운용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 그는 노숙인·이주민·파업 노동자를 진료하고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 반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의사입니다. 의료계보다는 시민사회, 약자와 더 가까웠던 그가 어떤 이유로 의협 회장직에 도전하게 됐을까요?

정운용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대표는 자신을 이제 막 60살 먹은 보통 의사라고 소개했다. 스스로 보통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남다르다. 의사 가운을 입고 파업 노동자가 있는 크레인에 오르고, 전국에 있는 노숙인들을 찾아다니는 일은 쉽지도 평범하지도 않다.

그런 그가 복잡한 의료 문제가 산적한 지금 의협 회장 출마를 선언했다. 사실 그의 당선을 예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간 의협 회장직은 광역시도 의사회 출신이거나 의협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던 이들 몫이기 때문이다. 인의협 의사가 의협 회장으로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그는 잔잔했던 의사 사회에 돌을 던지기로 했다. 인의협 소속 의사의 출마 자체도 의미하는 바가 크지만, 그가 그려온 삶의 궤적 역시 짙은 울림을 준다. 의사가 된 이래로 그가 대변하고자 했던 존재는 누구인지, 그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들어봤다.

정운용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
정운용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

◇돈 없어도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 꿈꾸던 청년 = 1992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운용(60) 대표는 의사로서 경상남도공보의협의회 부회장, 부산백병원 전공의협의회장, OK오병원 공동원장, 큐병원 공동원장 등을 지내며 외과 전문의로 20년 가까이 일했다.

병원 밖 진료도 적극적으로 다녔다. 2003년부터 부산 노숙인진료소장을 맡고 있고 2006년부터는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부산·경남 대표로 있는 인의협은 1987년 11월 21일 창립된 의사 단체로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 파업·이주 노동자 등 사회 약자들을 보살폈다.

인의협은 진주의료원 폐원 사태 때 의료원에 남은 환자들을 검진하고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와 윤성혜 복지보건국장, 박권범 직무대행을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고발한 바 있다. 또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건강을 살피고 치료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 때 진료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선배들이 산재 직업병 환자들을 위해 여러 활동을 벌이는 것을 봤다. 의사가 된 후 자연스레 인의협에 가입했다.

그가 의사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은 노동자들 산재 직업병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던 시기다. 수많은 노동자가 인의협에 연대를 요청했다.

“의사로 일하며 수많은 노숙인, 이주노동자, 파업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과 연대하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상황과 언어를 익혔습니다. 한국은 국민소득이 4만 불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건강을 담보로 살아갑니다. 의사와 한국 사회는 이들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는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309일 동안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일 때도 현장에 있었다.

“김진숙 위원이 고공농성을 끝내고 내려온 직후 부산 동아대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지요. 그랬더니 경찰에서 조사하겠다고 김 위원을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아무리 당장 건강에 이상에 없다고 해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인의협에서 성명을 내고 우리 병원으로 데려와 한동안 진료했습니다.”

그는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가 있는 굴뚝, 크레인을 직접 오르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무거운 마음으로 노동자를 진료했다.

“농성장에 올라 노동자들을 진료하면 육체적으로 지친 게 바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그들 눈은 늘 빛났습니다.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가 아니라 어떤 결기에 차 있던 눈으로 기억합니다. 그 눈을 볼 때마다 늘 부채 의식을 느낍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이지요.”

정운용(오른쪽 첫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 대표가 2013년 4월 10일 진주의료원을 방문해 진주의료원 폐업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정운용(오른쪽 첫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 대표가 2013년 4월 10일 진주의료원을 방문해 진주의료원 폐업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의협 회장으로 나서기까지 = 정운용 대표는 지금의 의료 체계는 지속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했다. 이대로면 필수의료·지방의료·공공의료 위기는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은 1차부터 3차 병원까지 무한 경쟁하는 상황입니다. 보험 자본이 의료를 규제하는 지금 체계로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이 같은 진단에 동의하는 의사들도 많습니다. 결국 의료 체계를 바꿔야 하는 상황인데, 의협은 지나치게 의사들 권익에만 편향돼 있습니다.”

그는 의협이 민주적인 전문가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이 회원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문가 단체라는 성격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면 국민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들 생각과 국민 여론 사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도 현 의협 집행부 의견과 달리 증원을 주장했다.

“지역에 최소한의 의료안전망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또한 의사 수를 늘려 3차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노동시간과 강도를 줄여 환자 안전도, 의사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확대된 정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하고 의협은 이를 방해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는 최근 경영난을 겪는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공공병원 노조위원장들이 국회 앞에서 코로나19 대응 이후 안정화 자금을 지급하라며 집단단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국민은 공공병원 의사와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 대응 잘했다고 말하는데 정부와 정치인들은 직원들 급여를 못 줄 정도로 경영 위기를 겪는 공공병원을 방치합니다. 이들의 천박한 인식부터 개선돼야 합니다.”

정 대표는 병원을 찾는 이들 대다수가 노동자와 그 가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이기 이전에 보통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로서 생존권을 주장하거나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것, 모두가 함께 사는 환경을 보호하고 훼손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적어도 한국처럼 발전한 나라에서는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라서 특별히 관심을 둔다기보다 모두가 관심을 둬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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