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분리해 농촌만의 마을 단위 자치
생명·사회가치 중시 미래 대안 공동체로

제11대 정기국회에서 1987년부터 단계적으로 지방자치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그 뒤로 이 과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1985년 여름, 서울의 한 계간지에서 '공동체와 지방자치'를 주제로 한 특집을 실었다. 김학준(서울대 정외과 교수), 한상범(동국대 헌법학 교수), 전지용(조선대 사학과 교수), 노경채(고려대 사학과 강사) 그리고 필자도 맨 뒤에 이름을 올렸다. '마을 단위 자치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기존 해 온 마을 단위 지방자치를 해보자는 매우 구체적인 제의였다. 도시 지역은 그 나름의 특징과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농촌은 도시와 분리해 저마다 역사성, 특성을 살려서 공존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농촌은 오롯이 마을 단위여야만 지방자치 본질이 실현되며, 도시와 농촌의 지방자치는 뒤섞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도시인들의 삶은 대체로 경제적 가치 중심이지만 농민들 삶은 생명 가치와 사회 가치를 더 소중하게 믿고 살아온 긴긴 역사를 제도적으로 도와주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보았다.

경제적 가치는 자본주의를 신앙처럼 받들면서 생겨났고, 생명·사회 가치를 가볍게 여기면서 희생양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결코 하나의 제도로 묶어서는 불행해질 거라 했다. 따라서 농촌과 도시는 정교하고 엄정하게 분리해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둘 다 불행해질 것이라 썼다.

내 글은 도대체 마을 단위 자치라는 것을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겠느냐며 냉소적인 외면을 당했다. 그 이듬해에 <이삭줍기>라는 시집을 펴냈다. 농촌 농민 앞에 밀어 닥쳐오는 자본주의 경제 논리 폭력에 속수무책 무너져가는 농촌 현실을 바라본 시집에는, 문명비평적 글쓰기로 세계적 명성을 듣는 김우창 교수가 해설을 해주었다.

시집 출판 얼마 뒤, 당시 매우 유명한 문학평론가로 알려진 서울대 모 교수가 이 시집을 두고 "문명의 흐름을 착각한 오판"이라 혹평했다. 인류 미래에 농촌 농민의 삶과 역사가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결론이었다. 그분은 내가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하자, 즉답을 회피했다. 내 반론은 이러했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인간성이 상실되며, 인간관계가 겉돌수록 돈에 집착하는 경제적 가치 중심의 도시 문명이야말로 인류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공동체(community)의 개념이 'com(서로) munus(선물)'를 나누는 관계인데, 농촌 농민은 사람과 사람의 친밀한 관계, 사람과 자연의 친밀한 관계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선물처럼 주고받는 역사를 지녀왔으므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려면 농촌 농민의 생명관과 사회의식이 더 소중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했었다. 그러나 그분은 내 반론에 대한 답은 들려주지 못하고 큰 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분께는 내가 정신적 짐을 드린 것 같아서 미안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너 같은 촌놈 말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고. 정말 그렇다면 참 불행한 사람이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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