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의식' 검찰 쌈짓돈 된 특활비
법원 공개 명령 어기고 먹칠하는 등
기재부 지침에도 맞지 않게 사용해

"윤 정권 배경 된 검찰의 내로남불"
"특활비가 아니라 운영비로 쓸 돈"
법·제도 개선해 투명성 제고 시급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기획재정부 2023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

지난 9월 14일 보도를 시작한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이 기사에 수차례 인용했을 글귀입니다. 검찰이 특수활동비를 격려·포상금으로 밥값으로 썼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면 어김없이 언급됐습니다. 특수활동비 성격을 명료하게 정의한 기획재정부 지침을 마주할 때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검찰은 어떻게 정부가 정한 지침을 태연하게 어기고 발뺌할 수 있었을까요. 위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법기관을 만든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렇게 집행되고 있지 않고요. 미리 사전에 계획된 통상적인 수요에 맞춰 정기적으로 집행되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김성훈 창원지검장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국 지방·고등검찰청과 지방·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급여처럼 집행된 특수활동비가 있다는 지적에 이렇게 답했다.

문제를 제기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탄희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용인시 정)은 “1년 내내 4명이서 15만 원씩 딱딱 맞춰서 소요 경비를 똑같이 썼다는 게 이상하다”며 지적을 이어갔다. 김 지검장은 “다른 경우에도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집행하고 있다”며 “세부적인 내용은 말씀 못 드린다”고 답했다.

짧은 질의였고 원론적인 답변이었지만 공동취재단 보도 한 달여 만에 검찰 책임자 목소리가 육성으로 전파를 탔다. 다만 답변 내용은 그간 검찰이 주장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검찰은 어떤 생각으로 특수활동비를 썼을까.

이탄희 국회의원이 지난 20일 열린 전국 지방·고등검찰청과 지방·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성훈 창원지검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이탄희 국회의원이 지난 20일 열린 전국 지방·고등검찰청과 지방·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성훈 창원지검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권력의 상징, 특수활동비 = 그동안 특수활동비 사용처를 둘러싼 의혹은 청와대,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공돈, 쌈짓돈이라는 이름으로 읽히던 특수활동비 문제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사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특수활동비 상납·전용 사건으로 꼽힌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남재준(징역 1년 6월), 이병기(징역 3년), 이병호(징역 3년 6월) 전 국정원장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직 국정원장 3명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다. 당시 법원에서도 이들 범죄를 엄중하게 다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모두 국정원 예산 중 증빙이 필요 없는 특별사업비를 박 전 대통령 요구로 청와대에 전달해 국고를 손실했다”면서 “박 전 대통령 요구로 소극적으로 응한 것이고 개인적으로 유용하려는 부정한 목적은 없던 걸로 보이나, 국회에서 의결된 예산을 불법적으로 은밀하게 전달한 행위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들에 대한 수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던 시절 시작됐고 윤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모두 사면됐다.

검찰이 쌈짓돈처럼 특수활동비를 썼다는 증거가 일부 공개된 지금 윤석열 정부와 검찰에 이목이 쏠린다. 지금까지 검찰 잣대로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당장 수사가 시작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는 “검찰은 그동안 수사만 했지 다른 기관이 감히 우리를 수사할 수 있겠느냐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며 “이러한 특권의식은 수사·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보니 다른 권력 기관보다 더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검찰은 윤석열 정권 배경 같은 조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검찰이 사실상 불법을 저지르고 있던 것”이라며 “그야말로 불공정이고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먹칠된 검찰 자료…'그래도 되니까' = 검찰이 지난 6월 23일 특수활동비 등 일부 예산 자료를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함께하는시민행동)에 최초로 공개했다. 뉴스타파 등이 행정소송을 벌인 지 3년 7개월 만이다. 이후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한 5개 독립언론·공영방송(뉴스민·뉴스타파·뉴스하다·부산MBC·충청리뷰)이 공동취재단을 꾸려 전국 67개 검찰청 예산을 검증하고 있다.

공동취재단이 받은 예산 자료의 가장 큰 문제는 식별이 불가할 정도로 먹칠 등으로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수사에 직결되는 집행 명목이나 개인식별 정보가 아니면 모두 공개하라는 법원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이기도 하다. 검찰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 판결을 따랐다거나 수사 관련 내용이라 공개가 불가하다는 답만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일부 드러난 특수활동비 자료를 보면 검찰이 숨기려고 했던 내용이 정말 개인정보나 수사 기밀이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공기청정기 렌털비와 기념사진 비용, 휴대전화 요금, 국정감사 격려금, 밥값 등이 찍힌 영수증 내역을 보면 나머지 특수활동비 사용처에 대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채연하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특수활동비 내역이 일부 드러난 자료를 보면 이게 실제로 기밀이라고 볼 만큼 수사와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결국 대부분이 수사 격려비나 회식비 등으로 쓰이는 것인데 그렇게 쓰는 돈은 업무추진비나 운영경비 등의 명목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2023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을 보면 사업 추진에 특별히 소요되는 접대비, 연회비 및 기타 제경비는 업무추진비로, 격려금 등은 기타 운영비로 분류되어 있다.

이어 채 사무처장은 “특히 지역에 있는 지검이나 지청은 운영비가 적다는 이유로 특수활동비를 쓰기도 한다”며 “적은 돈이라도 분명한 규정이 있는데 이를 본인들 필요에 쓰고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지침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장혜영 국회의원이 지난 7월 26일 '검찰 등 정부특수활동비 정보공개와 진상규명 , 법안 발의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혜영 의원실
장혜영 국회의원이 지난 7월 26일 '검찰 등 정부특수활동비 정보공개와 진상규명, 법안 발의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혜영 의원실

◇특수활동비 관련 법·제도 개선으로 투명성 높여야 = 장혜영(정의당·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지난 7월 26일 특수활동비 지출 증빙 의무화와 집행지침 마련 등을 핵심으로 하는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장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국고금 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특수활동비를 사용할 때 현금을 지급하더라도 현금 수령자나 사용한 사람의 영수증을 반드시 증빙서류로 작성해 갖추도록 했다.

또 현재 아무 기준 없이 지급되는 특수활동비 관리를 위해 법무부 등 정부 기관 등은 집행지침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신설된 ‘특수활동비등심의위원회’에서 심의받도록 했다.

장 의원은 “해경이나 관세청 등도 특수활동비를 수사에 활용하지만 대부분 카드로 지급하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유독 특정 기관들만 현금 사용을 고집한다”며 “현금 지급은 수사 기밀성 유지 등을 위해 필요성이 인정될 때 최소한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14개 부처가 공식적으로 특수활동비를 운용하는데 특수활동비 내역뿐만 아니라 특수활동비 운용지침조차 내놓지 않는 곳은 대통령실, 법무부와 검찰, 감사원 딱 세 곳”이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기관 감시를 위해서는 특수활동비 자체의 전면적 공개와 축소, 감시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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