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예산 탐구생활’은 <경남도민일보>가 시작한 ‘검찰, 하얀 장부’ 기획 외전(外傳)입니다. 스핀오프(spin-off) 비슷한 것입니다. 방대한 예산 자료를 바탕으로 권력기관을 견제하는 묵직하고 복잡한 취재 과정과 내용을 독자에게 최대한 가볍고 알기 쉽게 전하겠습니다. 온라인 전용 기사인 ‘검찰 예산 탐구생활’ 구호는 “기자가 힘들어도 독자는 편하자”입니다.


 

“부장님, 자료를 받으면 뭐부터 체크할까요?”
“체크 매뉴얼이 있으니 숙지하시오.”

김다솜 기자가 몰라서 한 질문도 아니고 제가 알고 답한 것도 아닙니다. 2023년 7월 13일 오후 진주지청에 도착했습니다. 공동취재를 시작하고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가장 먼저 제출한 곳입니다. 진주지청 담당자는 연도별로 분류한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자료를 종이 상자에 담아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료를 확인하겠습니다.”
“청사 내에서는 곤란합니다.”
“민원실에서라도 하겠습니다.”
“따로 자리를 내어 줄 수 없습니다.”
“상관 없습니다.”

민원실 바닥에 자료를 펼치고 의자에 앉아 검수했습니다. 공동취재를 시작하기 전부터 <뉴스타파>가 지적했던 문제점이 그대로 확인됐습니다. 보도로만 봤던 하얗게 가리고 시커멓게 먹칠한 장부를 실물로 보면서 허탈했습니다. 김다솜 기자는 매뉴얼대로 야무지게 미흡한 부분을 따졌습니다. 모든 답은 단순했습니다.

모릅니다, 담당자가 없어서, 따로 절차를 밟아야…

진주지청을 제외한 다른 기관은 자료를 검수할 공간을 따로 내줬습니다. 부족하지만 담당자가 가능한 범위에서 의문 사항에 대한 설명도 했습니다. 사본만 봐서는 식별할 수 없는 영수증을 추려 원본 열람을 요청했을 때도 바로 받아들였습니다.  창원지검과 5개 지청을 모두 돌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주지청이 최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 생각이 짧고 또 짧았습니다.

 

진주지청 민원실에서 받은 자료를 검수했습니다. 저 엄청나게 빠른 손은 영상을 갈무리해서 그렇습니다. /최환석 기자

진주지청 진가는 자료를 스캔하고 전산 입력하는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검찰은 특수활동비 자료를 두 가지로 구성해 제출했습니다. △지출 내역서(언제 얼마 썼다) △지출 내역 확인서(얼마 쓴 거 맞다). 이를 제대로 썼는지 검증할 수 있는 다른 자료(대표적으로 영수증)가 아예 없습니다. 공개한 내용도 지출 일시와 금액뿐입니다. 나머지는 가리거나 칠했습니다. 전국 대부분 검찰청에서 제공한 자료가 그렇습니다.

그나마 내용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영수증은 업무추진비 자료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수활동비 자료 입력 과정에서 ‘지출 내역서+지출 내역 확인서’ 구성이 마치 기본값처럼 됐습니다. 점점 재미도 의미도 없는 단순 노동 함정에 빠져들려는 순간 최석환 기자가 느닷없이 질문합니다.

“부장님, 특수활동비 영수증은 어떻게 정리할까요? 업무추진비처럼 입력하면 되나요?”
“특수활동비에 영수증? 무슨 영수증?”
“네, 영수증이 있습니다.”
“몇 장?”
“여러 장요.”
“여러 장? 내용이 보여?”
“네, 많이 보입니다.”

놀랐습니다. 특수활동비 자료 사이 곳곳에 첨부된 영수증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게다가 상당수 영수증은 대략 내용 확인도 가능했습니다.

 

진주지청은 2021년 3월 2일 ‘피자헛’에서 특수활동비를 썼습니다. 물론 '아보카도 쉬림프(L)'를 던져 도망치는 범인을 제압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최석환 기자
진주지청은 2021년 3월 2일 ‘피자헛’에서 특수활동비를 썼습니다. 물론 '아보카도 쉬림프(L)'를 던져 도망치는 범인을 제압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최석환 기자

“석환아, 진주지청 영수증은 따로 정리하자. 별도로 기사 쓸 테니 야무지게 정리하고.”

최석환 기자가 정리한 진주지청 특수활동비 영수증 관련 보도는 10월 9·11일(경남도민일보 10·12일 게재) 두 차례에 걸쳐 나옵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더 일찍 공개할 수도 있었으나 내용을 보완하고자 시간을 들였습니다. 두 기사를 링크합니다. 특수활동비 영수증 관련해서 가장 날것에 가까운 보도일 듯합니다.

[검찰, 하얀 장부]진주지청 특수활동비 영수증 뜯어봤더니
[검찰, 하얀 장부] 패밀리 레스토랑·한정식집·한우 전문점에서도 기밀 수사?

보도 이후 공동취재단 안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진주지청이 보물이네요.”

 

그제야 어설프고 미숙한 기자들은 진주지청 자료에 담긴 깊은 뜻과 가치를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속삭임이 뒤늦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자료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그레이. 우리 자료가 제일 안 좋나? 친절, 응대 그 딴 거 필요없데이~”

네, 거듭 반성합니다.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진주지청 자료 앞에 바짝 다가가 앉았습니다. 제법 구색을 맞춘 특수활동비 영수증은 기대보다 많은 내용을 속삭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네, 여기서 한 번 끊겠습니다.

/시민사회부 종합

 


취재   김다솜 박신 이동욱 이승환 최석환
공동취재   뉴스타파 뉴스민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
공동기획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도움 주신 분   김남원 김연수 김태진 남석형 손유진 이창우 정종엽 조재영 주성희 최환석
특별히 고마운 분   김연수(유력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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