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출품 '역사의 원'조각 최초 대상
추상조각 가치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미술사에 큰 획 남겨
마산서 초중고 졸업·홍익대로
사각- 원 결합 속에 성찰 담아
옛 마산시 중성동에서 태어난 조각가 박종배를 기억하는 사람은 다른 조각 거장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196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줄곧 미국에서 생활하고 활동한 데다 국내 전시는 어쩌다 한 번씩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차지하는 위상은 예사롭지 않다. 예술계에서 그는 '국전 대상 작가'와 '조각을 순수미술 장르에 안착시킨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1월 5일부터 21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 제1전시실에서 열린 '창원조각거장전'에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내려오는 자를 위하여' '강' '대지' '인고' '바다와 명상' '반석' 등 청동 작품이다.
사각과 원을 기본 틀로 구성한 청동으로 만든 추상 조각품. 어디서 본 듯해 기억을 더듬으면, 문신미술관 입구에 놓인 '못과 대지'가 떠오른다. 2010년 10월에 설치된 팽이 모양의 육중한 청동작품이다. 작품 앞에는 이런 설명이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은 팽이 모양의 유선형 볼륨과 그 안에 박힌 사각형의 입방체가 서로 결합된 형태의 구조물이다. 두 개의 다른 정체를 지닌 매스가 하나의 조형 작품으로 단일성을 이루는 그의 작업은 '두 개의 상반된 상황 안에 생존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설명은 박종배 작품의 대부분에 해당할 수도 있겠다. 도내에 있는 또 다른 박종배의 작품 '물과 대지의 인연'. 통영 남망산조각공원에 있는 이 작품 역시 원과 휘어진 사각 기둥을 결합해 하나의 조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외에도 그의 작품은 서울 상암동 노을공원, 서울 올림픽조각공원 등 몇몇 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다른 거장들에 비해 그다지 많지는 않다.
◇작가의 생애 = 박종배는 1935년생이다. 마산성호초, 마산동중, 마산상고를 거쳐 1956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1965년 제14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역사의 원'이라는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받는다.
조각이 순수미술로서 국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는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에서 순수미술로서 조각이 시작된 것은 1925년 김복진(1901~1940)이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에서 활동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김이순 미술평론가의 말이다. "이로써 조각은 회화와 나란히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러나 근대기에는 조각 전공자가 많지 않았던 탓에 회화에 비해 열세였고 작품의 내용도 다양성이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은 광복 이후에도 지속되었는데, 1965년 박종배의 '역사의 원'이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이런 상황이 타개된 것이다."
실은 '역사의 원'으로 미술계에 혜성같이 등장하기 이전 박종배는 석고 누드상을 오랫동안 제작했다. 대학 2년 때인 1957년 처음 국전에 입상했는데, 그때 작품이 일명 짝다리 자세라고 불리는 콘트라포스토 자세의 여성의 누드를 충실히 모델링한 석고상이다. 이듬해에도 박종배는 석고상인 '여인상'을 출품해 입선했고 1961년에도 여성 누드상을 두 점 출품했다. 그 중 하나가 특선을 받았다. 1962년 작품 역시 여성이 뒷짐을 지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는 석고 누드상으로 그때까지 표현상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 뿐 모두 석고로 제작된 구상작품이었다.
1963년 그의 조형세계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그해 국전에 '형'이라는 제목의 추상 작품을 2점 출품했는데, 하나는 기하학적인 구조의 철조 작품이고 또 하나는 유기적 형상의 목조 작품이다. 그중에서 철조 작품이 특선을 차지하면서 박종배는 철 용접조각가로서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는 1964년 주요 전시에는 철 용접조각만 출품했고 그해 둥근 덩어리 2개를 연결해 형상화한 '작품77'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철 용접조각으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1965년 국전 대상 작 '역사의 원'은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난 작품이다. 이는 한국미술사에서 조각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으로 평가되며 추상조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한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남게 되었다.
박종배는 1966년 미국 유학을 떠나 크랜브룩 미술대학에서 다시 조각 공부를 하면서 작품 경향에 변화를 보인다. 1967년 작품 '무제'는 알루미늄 주조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이후 청동 주조 작품 시대를 예고한 셈이다.
◇예술세계 = 김이순 평론가는 "박종배의 철 용접조각과 청동주조 작품은 조형적으로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모두 우주 만물에 대한 묵상이 내재되어 있다"고 표현했다. '역사의 원'이 전쟁으로 우주 만물이 초토화된 상태를 표현했다면, 청동주조 희망과 생명의 상징인 원형을 통해 위대한 권능의 섭리로 우주 만물이 소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박종배는 비정형(앵포르멜)적인 철 용접조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기하학적인 형상 간에 유기적 관계를 중시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제작했다. 그게 지금의 청동 작품이다. 그의 청동작품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을까. 김 평론가의 말이다.
"이처럼 형태적으로 상반되는 원반형과 사각기둥형의 조합은 조형적인 차원을 넘어서 상징성을 띤다. 동양 전통에서 원형은 하늘을 상징하고 사각형은 땅을 상징하며, 둥근 것과 각이 진 것,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 양과 음, 남자와 여자, 낮과 밤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박종배의 작품에서는 서로 교차하고 만나면서 유기적 통합을 이루고 있다."
이들 작품은 대개 이름을 갖고 있다. '춤추는 영혼' '기울어진 의식' '미문에 앉아' '풍랑을 이긴' '바다와 명상' '관철' '격노' '인고'…. 박종배는 긴 작업을 하면서 작품의 명제에 대해 묵상하고 제목을 붙이는데, 이는 작품 제목을 통해 창작의 영감과 작품에 깃든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고 나아가 관람자에게 작품이 지닌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서 나아가 작가의 생각과 미의식을 공유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