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김해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수로문학회서 존재감 드러내
"김해 설화에 상상력 보탠 변주가 특징…'포만과 허기' 주제 두드러져"

그의 본명은 박수현. 지금까지 본명으로 시 창작 활동을 하다 이번에 첫 시집 <이방인의 길>을 내면서 이름만으로 필명을 쓰기로 했다. 수현 시인은 2006년 ‘김해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엔 수로문학회 직역작가조명에 선정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배한봉 시인이 수현 시인의 작품에 관해 소개했다. “수현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거주하는 김해의 설화를 다양한 상상력으로 변주하는 것, 그리고 삶의 여정을 육화하여 공감과 위로의 세계에 가 닿는 것, 자신만의 독특한 창조적 개성이 있는 문학적 공간으로서의 지역성과 결곡한 서정은 수현 시의 성취와 개성을 옹골지게 한다.”

김해시내에서 최근 수년 동안 지역민의 관심을 끄는 동네가 있다. ‘봉리단길’. 수현 시인은 이 곳을 어떻게 보았을까.

“신을 부르는 소리가/ 방울뱀의 꼬리로 흔들린다// 옥황상제 천상선녀 애기보살이 사는/ 회현동// 멀리서도 보이는/ 대나무 붉은 깃발이 신기루로 꽂혀 있다// 그녀의 눈 속에서/ 모래바람 소리가 난다/ 눈물 마를 사이도 없이/ 모래를 닦느라 눈가는 짓물러 있었다/ 사막으로 걸어간 흔적이 뚜렷하다// 골목은 언제나 안과 바깥의 경계를 허물며 이방인의 길을 걷는다// 봉황대와 패총이 있는,/ 켜켜이 쌓인 조개무지에 세워진 봉리단길/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리듯// 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수많은 신이 사는 골목으로 간다”(‘봉리단길’ 전문)

전통의 대표적 소재라 할 수 있는 설화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사막이 어울려 환상적인 장면이 만들어진다. 하긴 김해는 그러한 곳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화가 어울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곳.

“격랑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 지표로 묶었던 파사석탑처럼// 들고 온 캐리어에는/ 행선지가 뚜렷이 적혀 있었다// 여기는 아주 오래전 고향이었지// 아모르파티/ 그녀가 나르는 찻잔 속에는/ 고향의 붉은 피가 가라않아 있었다.// 황옥의 후예처럼, 고향 가까운 바다에서”(‘아모르파티’ 일부)

시집에는 총 60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것을 주제별로 1부 ‘아모르파티’, 2부 ‘사이버스페이스’, 3부 ‘봄을 두드리는 노래’, 4부 ‘포만과 허기’로 나누어 각 15편씩 편집해 수록했다.

문학평론가 오태호 경희대 교수는 수현 시인의 시 중에서 ‘포만과 허기’라는 주제에 대해 집중했다. “수현의 시는 ‘포만과 허기’ 사이에 놓여 있다. 허기로운 현재에서 포만한 내일을 지향하거나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만, 오늘의 허기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그 허기는 물리적 허기가 아니라 심리적 허기이기 때문이다.”

수현의 시는 표현과 의미 사이의 간격이 상당이 멀다. 어쩌면 기표와 기의가 끊어질 듯한 끈으로 이어진 채 시가 내달리는 인상을 준다.

“쥐똥나무 울타리를 따라 나는 풍선 같은 배를 안고 발을 구른다/ 허기와 포만감은 채움과 비움을 변론하는 사이, 한 톨의 열매가 필요한 그들은 숲을 흔들어 경작한다/ 넘침이 불안한 내가 이곳을 찾기 전부터/ 실버카를 잡고 가는 할머니와/ 강아지 태운 유모차 밀고 가는 여인이 흘린 이야기/ 초롱이끼가 먹고 자라서 길을 붙잡았다/ 유모차는 아이를 잃어버렸고 그네는 허공을 민다/ 실과 허의 이면에 깔린 깊이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나를 흔든다”(‘포만과 허기의 변수’ 일부) 127쪽. 한국문연. 1만 2000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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