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면 마을 야산 중턱에 위치 합천댐 수몰지구 조사로 알려져
연말 도 지정문화재 지정 전망
봉토분 1·2구역서 총 86기 확인 목긴항아리·화로모양토기 출토
거창 중심 정치집단 존재 추측

'어? 걸어서 가기도 힘들어 보이는 길을 승용차로 올라간다고?'

햇볕이 따갑던 8월 26일 오후 3시 30분께 거창군 남하면 무릉마을. 구본용 거창박물관 관장은 마을을 에워싼 야산을 가리키며 거창 대표 가야유적이 '저곳'에 있다고 말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부터 유적에 관한 설명에 여념이 없었던 그는 마을에 들어서자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경사진 포장도로를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차에는 기자와 송영춘 거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포함해 모두 3명이 타고 있었다.

세 사람이 향한 목적지는 거창 무릉리고분군. 올 연말 지정문화재(기념물) 지정을 앞둔 비지정문화재다. 무릉리 야산 중턱에 있는 이 고분군을 만나려면 경사도 20%를 족히 넘는 급경사 길을 올라야 한다. 20대 청년이 올라가기에도 벅찰 만큼 가파른 경사길을 구 관장은 차를 타고 자주 다녔다며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 구본용 거창박물관장이 무릉리고분군이 있는 쪽을 가리키고 있다.  /최석환 기자
▲ 구본용 거창박물관장이 무릉리고분군이 있는 쪽을 가리키고 있다. /최석환 기자

마을에 들어선 지 5분여 만에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잘 올라가는가 싶던 차 바퀴가 경사진 구간에 들어서자 헛돌기 시작했다. 차는 뒤로 밀려 내려갔고, 엔진에서는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은 탓에 '부응' 소리가 크게 났다. 많이 밀리지는 않았지만,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 과정에서 도로이탈 방지 목적으로 세워놓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바퀴가 부딪쳤다. 심지어 왼쪽 바퀴가 도랑에 빠지기까지 했다.

뒷좌석에 있던 송 학예사가 "나 때문인가?"라고 혼잣말을 하며 차에서 내렸지만, 그 뒤에도 차는 쉽게 오르지 못했다. 세 사람은 모두 차에서 내려 공중에 떠 있는 바퀴 밑으로 커다란 돌을 끼워 넣고 온 힘을 다해 앞범퍼를 들었다. 구 관장이 후진기어를 넣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기자와 학예사는 앞범퍼를 힘껏 들어 올렸다. 10분가량 지났을 무렵,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바퀴가 도랑에서 벗어났다. 운전석 쪽 앞범퍼가 파손돼 있었다. 운행에는 지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구 관장은 혼자 평지까지 차를 끌고 내려가더니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위로 올라갔다. 두 번째 시도 만에 언덕까지 오르는 데 성공했다.

▲ 거창 무릉리고분군 M5호분 옆으로 길이 나 있다.  /최석환 기자
▲ 거창 무릉리고분군 M5호분 옆으로 길이 나 있다. /최석환 기자

마을 입구 앞 야산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에는 고분군 1지역, 오른쪽에는 고분군 2지역이 있다. 일행이 오른 곳은 2지역이다. 차가 올라갈 수 있는 포장도로를 기점으로 20~100m가량 더 올라야 무릉리고분군이 나온다.

산속 언덕배기에 들어섰더니 볼록한 땅이 드러나 보였다. 주변에 나무가 우뚝 솟아있었고, 수풀이 무성했다. 고분 위로 나무가 자란 모습이 보였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니 2018년 발굴조사된 대형 봉토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릉리고분군 M5호분이다. 이 봉토분 주변 역시 잡초가 무성했다. 밑으로는 민묘와 더불어 발굴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길이 나 있었다.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고분군 M49호분도 주변에 있었다. 이날 비 예보가 있어 발굴조사를 맡은 한화문물연구원 관계자들이 일찌감치 고분을 파란 천막으로 덮어놓은 상태였다. 토사 유실과 유적 훼손을 막으려는 조처다.

현장에서 만난 신용민 한화문물연구원장은 무릉리고분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무릉리고분군은 조사 과정에서 다곽식 고분군이라는 게 확인된 곳입니다. 거열국(삼국시대 거창지역에 있었던 나라)의 독특한 묘제는 물론이고 거창을 중심으로 하는 독자적인 정치집단이 과거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적이기도 하죠. 도굴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거열국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발판을 이번 조사를 통해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릉리고분군은 무릉마을 인근 야산 494m 능선 말단부에 조성된 가야유적이다. 형성 시기는 5~6세기다. <문화유적총람>(1977)을 통해 높이 2~3m, 지름 5~10m 규모 봉토분 50~60기가 분포된 고분군으로 소개됐다. 자료에는 "현재 남하면사무소 구릉지역에서부터 고분이 운집돼 있고, 그중 대형석실 고분이 많다. 전부 일제강점기 때 도굴돼 현재 도굴 안 된 고분은 거의 없는 것 같다"라고 적혔다.

▲ 무릉리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거창박물관
▲ 무릉리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거창박물관

1985년 합천댐 수몰지구 지표조사 때 무릉리고분군 실체가 처음 알려지게 됐다. 이후 1996년 대가야문화권 유적 정밀지표조사, 2006년 거창군 문화유적분포지도, 2014년 무릉리고분군 정밀지표 및 연구조사, 무릉리고분군 Ⅰ-M1~10호분·무릉리고분군 Ⅱ-M5호분 발굴조사 등이 잇따라 이뤄졌다. 이 과정을 거친 끝에 무릉리고분군은 거창지역 가야 유력자가 묻힌 무덤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밀지표 조사 결과를 보면 고분군 1구역에서 봉토분 34기, 2구역에서 52기가 각각 확인됐다. 발견된 고분은 지름 15~20m 규모 중형 봉토분, 지름 25m짜리 대형 봉토분 등이다. 앞서 발굴조사 때는 수혈식석곽묘(돌로 네 벽을 짠 무덤)와 굽다리접시(고배), 목긴항아리(장경호), 목짧은항아리(단경호), 발형기대(화로 모양의 토기) 등 토기류와 비늘갑옷, 철촉(쇠로 만든 화살촉) 등 철기류가 출토됐다. 양이부호(둥근고리 형태를 한 귀가 달린 항아리)와 철겸(쇠낫), 기대(그릇받침), 철도자도 나왔다. 장경호, 발형기대 등은 함양 백천리 1호분과 대가야계 지배자가 묻힌 것으로 알려진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분에서도 나오는 유물이다. 같은 5~6세기 축조된 거창지역 가야국 유력자가 묻힌 고분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무릉리 일대에 고분 400~500여 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거창지역 가야국의 지배계층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릉리고분군.  /거창박물관
▲ 거창지역 가야국의 지배계층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릉리고분군. /거창박물관

구 관장은 무릉리고분군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행정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늦어도 연말에는 경남도 지정문화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 지정 이후 추가로 유적 조사를 벌여 성격 규명에 나서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함양과 남원·고령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곳이 바로 거창이었다"며 "지리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무릉리고분군이 있지만, 지금까지 성격 규명이 잘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적 조성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많이 나온 게 아니어서 추후 추가 조사는 계속 진행돼야 한다"며 "유적이 있는 야산 마을 땅과 사유지를 사들인 뒤 문화재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성격 규명과 관리 체계를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비지정문화재여서 관리에 여러 한계가 있었다"면서 "도에서도 무릉리고분군을 문화재로 빨리 지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는 만큼 연내에는 지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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