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평화는 반성과 성찰로부터 나온다
일본의 조선인 학살 규명·사과는 언제쯤
“역사는 무릇 역사에서 이루어지고, 사실은 무릇 사실에서 이루어진다.(歷史就是歷史, 事實就是事實)” 이 글은 중국 남경대학살유적지 출구에 새겨진 결속문(結束文) 문장의 첫 구절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백골로 누운 자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 사실은 역사이고, 그 역사는 그 사실을 기억한다. 말없이 누운 백골은 천 마디 말보다 진실한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혹한의 추위가 몰아치는 두 달 동안 30만 명의 주검이 도시를 덮었다. 남자·여자·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죽였다.
기억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묻는다. 왜 그들은 이 사람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병든 이념의 깃발 아래 모여서 광기에 눈먼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인간은 어디까지 그렇게 악랄할 수가 있는지를. 인간이 서로를 죽이는 만행이 어디까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집단의 군중 심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를. 누가 누구를 왜 죽이고,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무엇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는지를. 천황의 나라를 세우려는 헛된 망상이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 몰아갔는지를.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도륙(屠戮) 낼 수 광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전시관의 바깥에는 화평(和平)이라는 글을 새긴 탑 위에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동상이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한 손에는 비둘기를 들고 서 있다. 화합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평화의 세계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화합은 반성과 성찰로부터 나오고, 용서와 화해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는데,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다. 화합이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반성하고,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일본은 동아시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학살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만주사변으로 일어난 간도 이주민 학살, 청산리 전투 이후 만주 민간인 학살, 성노예의 위안부, 관동군 731부대의 진실, 어느 것 하나 진실을 규명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자들에게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고 야스쿠니 신사에는 참배의 발길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남경학살 현장에는 참배하지 않는다. 언제 그들이 조선인 학살과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한 적이 있었던가? 여전히 그들은 욱일기가 다시 승천하는 날을 기다리면서 천황의 나라를 꿈꾸고 있지는 않은가? 자위대가 군국주의의 무기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우리들의 적이다. 일본의 심장에서 그들을 알아야 하고, 일본의 뼛속에서 그들을 알아야 한다. 박경리 선생은 <일본산고(日本散稿)>에서 일본은 영원히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우리의 이웃이라고 했다. 그들은 역사를 반성하고 성찰할 줄 모르는 나라라고 했다. 화평(和平)은 세계 인류가 나아가야 할 영원한 미래의 길이다. 남경대학살 유적지를 나오면서 아프로디테의 오른손 끝에서 날고 있는 비둘기가 하늘에 날아올라서 인류가 평화의 길을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해본다.
/황선열 인문학연구소 문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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