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표현 못하고 홀로 감당하는 사회
서로 관심 두고 관계 맺을 때 행복해져

이은문화살롱에서는 매주 한번 낭독극을 진행한다. 지금은 ‘경로당 폰팅 사건’을 연습하고 있다. 제목은 웃기지만 내용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담고 있다. 택배 배달을 왔다가 경로당 전화로 몰래 폰팅하는 30대 택배 기사도, 경로당에 나와 자식 자랑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외롭긴 매한가지. 외로운 할머니들은 자식 같은 젊은 남자들의 재롱에 빠져 건강식품을 사재기하고, 고객들의 닦달에 지친 택배 기사는 “오빠~ 외로우신가요? 제가 위로해 드릴 게요”라는 폰팅걸의 유혹에 빠져든다. 낭독을 하며 대본 속 주인공들의 외로움은 우리들의 외로움이 되었다.

외로움이 들어간 유행가 가사와 시구절은 또 얼마나 많은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로워 외로워 못 살겠어요’. 외로움은 지구별 전체에 전염병처럼 퍼져 있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왜 외롭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외로움에 대한 ‘낙인효과’ 때문일 것이다.

외로운 감정은 개인의 문제이고 특정 집단만의 것이라는 관념이 내재 되어 있기에 쉽사리 드러내지 못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초라해지고 초라함을 감당하느니 홀로 외롭고 만다.

며칠 전 고상한 분위기의 은퇴 부부가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다. 열심히 살았으니 즐겁게 여행도 다니고 처음엔 너무 평화롭고 좋았다는 부부. 그런데 쉬고 노는 것도 하루 이틀, 하루해는 길고 만날 사람도 달리 없는 일상이 답답하다고 했다. 아내와 운동하거나 혼자 막걸리를 만들고 산책도 하지만 재미가 없단다. 나는 물었다. “하루 중에 아내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은요?” 그는 외롭고 적적하지만 누군가에게 먼저 어떻게 전화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가까운 이웃이나 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행복감은 당연히 높다. 대인 관계의 질은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이 좋은 친구여서 둘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요즘은 가끔 명치 끝이 답답해서 자꾸 소리치고 싶다고. 부부는 안온하지만 스스로 만든 외로움에 갇혀 있었다. 우리 또한 수시로 고독한 섬이 되지만 외로움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을 사회적 위험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한 후 사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가고 있다. 장관 명이 약간 코믹하지만 외로움의 문제를 구체적, 제도적으로 해결해 가는 이 나라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안목이 부럽기만 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도 외로움을 사회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고독사’, ‘은둔형 고립 청년’ 등 외로움으로 인한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는 ‘연결된 사회’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지역사회, 개인-사회가 매끄럽게 연결돼 있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필수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따듯한 이웃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풀뿌리가 되어야 한다.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는 자연의 이치를,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한다. 관찰과 얽힘이 있을 때 양자는 존재한다. 관찰을 관심으로 바꿔 해석한다면 우리 인간도 서로 관심을 두고 관계를 맺을 때 외로움보다 행복에 가까워진다. 우주의 본질은 텅 비어 있고, 수많은 우주 속의 소우주인 우리가 텅 빈 존재라면 서로를 알아보고 끌어당기는 양자처럼 살면 어떨까. 외로운 우리에게 김재근 시인은 이렇게 유혹한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김재근 시인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이은혜 이은심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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