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통해 성장 거듭해 온 학생들
산업 현장 중심에서 ‘경업락군’을

내내 학생들을 괴롭히던 더위가 학교 교정의 낙엽에 그 기세를 잃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기분을 들뜨게 하고, 높고 푸른 하늘과 불그스레 물드는 단풍까지 어느 것 하나 눈길을 붙잡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용접전공 교수의 시선은 늘 불꽃이 튀는 실습실 안에 머문다. 계절은 선선해졌지만, 용접 아크 불꽃 앞에 선 학생들의 이마에서는 여전히 땀이 흐른다. 철과 아크열, 그리고 사람을 이어주는 용접의 세계는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뜨겁다.

10월은 학생들에게도, 교수에게도 특별한 달이다. 봄에 새내기로 들어와 아직 용접 토치를 쥐는 것도 서툴던 학생들이 이제는 스스로 두 장의 강판을 잇는 용접비드(bead)를 만들어낸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언더컷이 생기기도 하고, 용입이 부족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거친 흔적 속에는 지난 몇 달간의 노력과 좌절, 다시 일어서려는 인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그들의 작품을 보며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용접은 단순히 금속을 잇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수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가을은 흔히 수확의 계절이라 한다. 하지만, 용접 현장에서의 수확은 단순히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 속에서 배우는 경험이 더 큰 결실이다. 불완전한 비드 외관, 하나의 기공(空洞), 하나의 크랙(균열)은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주지만, 이 과정은 백련성강(百鍊成鋼)의 기술자가 되기 위한 발판이 된다.

용접의 세계는 정직하다. 그 불꽃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작은 실수 하나도 비드 위에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마치 10월의 맑은 하늘처럼, 용접의 결과는 가감 없이 드러난다.

10월은 산업 현장에서도 분주한 달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중동 지역 전쟁 특수의 방산 분야와 AI 산업과 함께 재 호황인 원전과 전력산업, ‘트럼프 효과’로 활기를 되찾은 조선 및 플랜트 산업 등 경남의 산업 현장은 연말 납기를 맞추기 위해 바쁘게 돌아간다. 그리고 중심에는 여전히 숙련된 용접공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컨대 젊은 세대는 현장의 열기와 고됨을 기피하고, 숙련 세대는 은퇴를 맞이하며 하나 둘 자리를 비운다. 이 간극은 곧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래서 용접 전공 교수의 10월은 단순히 강의실 안의 교육에만 머물 수 없다.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강의실 안으로 불러올 것인가, 학생들을 어떻게 다시 현장으로 내보낼 것인가가 늘 고민이 된다.

또한, 10월은 ‘사람의 계절’이기도 하다.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에 열매를 맺듯, 학생들의 땀방울이 기술 역량으로, 자격증 등으로 결실을 맺는 시기다. 이들이 졸업 후 산업 현장에 나가면 또 다른 용접의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며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용접은 결국 사람이 있어야 완성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설비와 자동화 장비가 도입되어도, 사람의 눈과 손, 그리고 책임감이 빠진다면 진정한 용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되새김질 하듯 ‘경업락군(敬業樂群)’, 자신의 일에 경건히 임하고 사람과 더불어 즐거워한다는 상념에 젖어 본다. 그리고 용접 불꽃을 통해 세상을 잇는 이 길 위에 나와 학생들이 함께 걷고 있음을 느끼며, 홍해를 건너야 하는 마음을 오늘도 조용히 아크 불빛 아래에 담는다.

/신승묵 한국폴리텍VII대학 창원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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