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임종 때 말기 환자·가족 아픔 절감
호스피스, 온전히 품고 푸는 시간이기를
외과 전공의 4년차 때 70대의 아버지가 뇌종양인 걸 알았습니다.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였죠. 아버지 포함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의료인인 집안에서 서로의 무심함에 각자 때늦은 후회를 새겼습니다. 다만, 당신의 60대 초반부터 늘 입버릇처럼 당신의 아버지도 삼촌도 형도 다들 70까지는 못 살더라며 미리 마음을 훈련해 주셨던지라 올 것이 왔구나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늘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갑자기 쓰러지더라도 절대 인공호흡기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고요. 저 또한 그러리라 여겼으므로 앞의 말씀보다 더 쉽게 생각했지요. 한데 정작 문제는 여기에서 생겼습니다.
진단 후 6개월여 지난 시점에 갑자기 폐렴이 왔고, 그로 헐떡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아버지를 또 제 자신을 속여가며 그토록 싫다시던 인공호흡기를 제 손으로 달았습니다. 하지만, 아빠도 저리 힘드니 차라리 달기를 원하실 거라는 제 이야기를 자르며 형이 단호히 그러더군요. 아버지의 뜻이라 포장하지는 말자고. 원래 가지신 뜻도 또 현재의 상태도 너도나도 잘 알고 있지 않으냐고. 당시에는 형의 그 말이 무척이나 섭섭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돌아가셨습니다. 헐떡이는 와중에도 제게 또 다른 가족들에게 가끔씩 고맙다고도 하셨는데 정작 마지막 말씀은 인공호흡기를 단 탓에 남기지조차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외과 전문의가 되었고 한동안 칼도 약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호스피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외과와 더불어 맡고자 10여 년 전 마산의료원으로 왔고요. 그리고 이제는 임종 후 남은 병동의 가족분들께 적어도 내 아버지보다는 편히 돌아가셨다고 웃으며 얘기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온전히 품고 또 푸는 시간이셨기를. 저 또한 아직도.
이제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사별 앞에 무엇을 한들 또 하지 않은들 아픔이 없겠습니까? 다만, 저와 같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환자분께도 또 보호자분들께도 최대한 자세히 또 정확히 현 상태를 공유하고 처방과 처치와 투약을 이해시키려 애씁니다. 때로 호스피스병동에 왔다는 자체로 치료를 포기한 게 아닌가 자책하는 가족분들이 있습니다. 환자분들도 거기는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냐고 아직은 멀었다며 꺼리시기도 하고요. 아닙니다. 오히려 완치만이 치료라 여기던 좁은 의료에서 완화까지 포괄하는 보다 넓은 선택지를 가지게 된 거라고, 낫지 않은 병이 앞으로 일으킬 여러 문제들을 보다 잘 치료하기 위해 오신 거라고 바로 잡아 드립니다. 하루를 더 살게 해 드릴 수는 없지만 그 하루를 더 편하게 보내시도록 가족분들과 함께 품어 보겠다고. 그리고 그 끝에 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의사라고 항상 의사는 아니고 자신이 아프면 환자 가족이 아프면 보호자이기도 하니 같은 입장에서 병뿐 아니라 당신까지 이해하려 애쓰겠다고.
이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막연히 남은 삶에서의 오늘 하루와 한 주 또는 며칠도 장담하기 힘든 때의 오늘 하루는 같은 무게일까요? 그게 당신의 마지막 남은 하루라면 어떨까요?
하지만, 병원 내에서도 이런 점은 종종 간과됩니다. 심지어 어차피 죽을 사람들에게 더 할 게 뭐 있느냐는 얘기도 듣곤 하죠. 얼핏 그래도 보입니다. 외과 환자의 사망이라면 병원 전체에 비상이 울리고 당장 저부터 헐레벌떡 뛰어갈 테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비상도 없고 저도 숨부터 고른 후 천천히 걸어가니까요. 이는 인력의 배치나 예산의 운영에서도 나타납니다. 간호사당 몇 명의 환자를 보고 환자당 몇 번의 주사를 놓고 혈압을 재는지가 인력 관리의 기준이니까요. 하지만, 해소될 수 없는 말기의 고통과 지극한 상실의 슬픔에 처한 환자와 보호자분들을 품고 또 푸는 일에 다른 가치는 없을까요? 해서 그 하루와 다른 하루를 달리 대하겠다면 오히려 특혜이고 역차별이니 공평하게 똑같은 효율로 감당해야만 옳을까요?
우리나라 암 환자의 임종 시 호스피스 이용률은 아직도 채 30%가 되지 않습니다. 경남 내 비교적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진 인구 100만의 특례시 창원에도 호스피스병동은 딱 두 개뿐이니 경남 전체로 보면 더욱 열악하겠고요. 참고로 경남 유일 의료원인 마산의료원의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은 9병상(침대 아홉 개 즉 최대 아홉 명까지 입원 가능)입니다. 10병상부터는 근무 당 간호인력이 두 명이어야 하거든요. 그러니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딱 9병상. 현재 경남 호스피스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병동이 다 차지 않으니 더욱 놀라울 따름이죠. 그 진입장벽이 무엇인지도 모르지 않고요. 말기의 환자와 가족분들을 품고 또 푸는 일에 그만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회로 점차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최원호 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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