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사들 진실 왜곡·조작 예사로 여겨
검찰청 폐지, 사법 정의 실현 축하연으로

구로자와 아키라(1920~1998) 감독의 1990년 명작 <꿈> 속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멸한 3중대 군인의 영혼들과 유일한 생존자(중대장) 사이의 대화가 나온다. ‘개 같은’ 죽음을 당해야 했던 병사들의 운명에 대한 중대장의 인간적 책임감과 더불어 무의미한 전쟁을 강요하는 국가주의의 무책임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영화를 떠올린 까닭은 최근 대한민국에서 검찰청이 폐지되고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거세게 조성되자 일부 정치 검사들이 보여준 무책임성 때문이다. 다른 말로, 검사 임용 시 맨 처음 하게 되는 양심선언인 ‘검사 선서’를 배신하는 일부 정치 검사들은 진실 왜곡, 증거 조작, 여론 조작, 고발 사주, 위증 교사 등을 예사로 저질러왔다.

가장 최근 예로, 쿠팡 관련 건이 있다. 검찰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 쿠팡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과 관련,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지난 4월 무혐의·불기소 처분했다. 처음에 이 사건을 수사한 문지석 검사는 10월 15일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자신과 주임검사 모두 쿠팡의 취업 변경 규칙이 불법이므로 기소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당시 지청장이었던 엄희준 검사와 김동희 당시 차장검사가 쿠팡에 무혐의 처분을 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폭로했다. 문 검사는 이를 상부에 보고했지만 김동희 검사는 “무혐의가 명백한 사건이고, 다른 청에서도 다 무혐의로 한다”, “괜히 힘 빼지 말라” 등 발언으로 회유했다 한다. 또 엄희준 검사가 지난 2월 새로 부임한 주임검사를 따로 불러 쿠팡 사건 무혐의 가이드라인을 줬다 했다. 이 정도면 검찰은 자기부정을 함과 동시에 사법정의를 스스로 짓밟은 것이다. 무책임한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1960년대의 한옥신 검사를 떠올린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에 따르면, 한옥신 검사는 1960년 3·15 마산의거 당시 있었던 ‘북마산파출소 방화 사건’의 왜곡 수사를 단칼에 바로 잡아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운 분이다. 당시 경찰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군중에게 총을 쏴 3월 15일 하루 사이에 9명의 시민을 죽였다. 그런데도 경찰이 ‘북마산파출소 방화 조작’(지나던 청년에게 방화죄를 뒤집어씌워 시민항쟁의 분위기를 반전시킴과 동시, 용공 사건으로 몰아감)이 이뤄지자 한옥신 검사 주도로 진실 규명이 이뤄졌다. 한 검사팀은 경찰이 증거물로 제시한 휘발유 바께스와 사이다병 6개, 광목천 등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바께스는 15일밤 경찰이 서성동 주유소에서 빼앗은 것이며, 사이다병과 광목천 또한 경찰이 이웃 식당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혔다.

당시 사건에서는 경찰의 진실 왜곡을 한옥신 검사가 바로 잡았다. 최근 쿠팡 사건에선 문지석 검사의 진실 수사를 상부에서 왜곡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검찰 안에서도 진실한 수사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특정 이해관계로 인해 ‘법과 양심’ 또는 ‘법과 원칙’이 왜곡되는 게 문제다.

앞서 나온 아키라 감독의 영화 <꿈> 마지막 장면에서는 103세의 노인이 마을에 찾아온 청년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인은 “우리 마을에서는 (장례식이)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오랜 삶의 평화로운 끝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일”이라 한다. 검찰청의 장례식도 사법 정의의 안타까운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축하연이 되길 빈다. 그것이 책임성 있는 자세다. 민주주의는 감동을 먹고 자라니까!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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